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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문학대상 2013 투고합니다.
  • 글쓴이 : cse9476 (esc9476@hanmail.net, 010--****-****)
  • 13.11.29 1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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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함사진은 첨부파일로 붙이겠습니다.

이름 : 우 태원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논골길 12 고운별원룸 205호

성별 : 남성

연락전화 : 010-3119-9245

직업 : 허갈닭강정 안동대점 사환

 

가래를 끓이다 .

 

 

 

빛살 고운 아침에 일어나면 신체도 찌뿌둥하거니와 잠결 뒤척임에 헝클어진 머리칼 하며 꼴이 흡사 원시시대 사람처럼 볼품없어지고 만다 . 그러한 중에 가장 추잡한 일이 있으니 수면 중 호흡을 하다가 목 안에 쌓인 티끌들을 게워내는 토악질 , 가래를 뱉어내는 일이 그것이다 . 혹여 감기의 기운이 있을 적이면 가래는 더욱 오심 ( 惡心 ) 이 나는 빛깔과 냄새를 지닌 채 웅크리고 있게 되니 토해내고 난 뒤에도 기분이 영 찜찜한 것이 결코 유쾌할 수 없다 .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어찌 가래라는 것을 지어내셨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마냥 꺼려지기까지 한다 .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께서 이러한 흉물스런 존재를 지으신 까닭을 고찰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가래를 머금은 청년은 하릴없이 고뇌에 빠져들게 되었다 .

가래 , 그의 역할은 단순하다 . 병균이 몸에 침투하였을 때나 건강에 좋지 않은 증상이 발발했을 때 자기면역체계의 일환으로 호흡기 최전선에 서서 바깥의 병균들이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게끔 , 내부의 전후처리를 밖으로 배출하게끔 하는 일종의 5 분대기조의 역할을 맡아내는 것이다 . 그가 전선을 지키는 동안 적군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들이쳐 내려오고 아군 진영에서는 기침이라는 고약한 장교를 보내어 자꾸만 위로 진격하라고 닦달하니 말이다 . 어찌 보면 이는 다소 고달프고 쓸쓸한 책임을 지녔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전투가 지속될수록 그의 행색은 차마 목도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지고 전시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여 악취가 코를 찌르게 되니 주위 신체기관들은 그들의 존재를 여간 볼썽사납게 보는 게 아니다 . 기침이 며칠 밤낮 지속되기라도 하면 인후와 편도가 부어오르고 횡격막에 자극이 되어 흉부에 무리가 오거나 고막이 먹먹해지는 증상까지 도래하게 되어 가래의 존재는 더욱 못마땅해지고 만다 . ‘ 너 때문이야 . 너만 없으면 이 모든 상황은 정리되고 말거야 하고 핀잔과 멸시를 오롯이 받게 된다 . 전투가 어느 정도 지지부진해지노라면 외부에서 파병 온 항생제와 각종 의약물질들이 지원을 하게 되어 어느덧 전세는 역전되고 파죽지세로 병이 치료되어 가게 되는데 , 어느 누구도 초라하고 불결한 가래에게 포상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결국 그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선고받게 되어 신체 밖으로의 추방을 선고 받는다 . 그들이 추방된 곳은 단물 빠진 껌과 같은 화장지 사이나 길바닥 , 그들이 충성한 조국은 그들을 다시는 송환하지 않고 그럴 예정도 애초에 없었다 .

이렇게 놓고 보면 가래의 존재가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 그간 알아채지 못하던 무언가가 이 가래처럼 홀대받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 어쩌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고락간에 낙 ( ) 만을 취하고 고 ( ) 는 책망하던 이치가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 좁게는 나 자신이 느끼는 심사변화에 그러한 것이 있겠고 , 더 나아가서는 타인과의 소통과정에서도 이러한 것이 있을 터이다 . 이에 따라 너울치듯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가래의 처지처럼 순작용은 애써 묵과한 채 역작용 만을 힘껏 타박하며 지내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 작은 병균들에도 흥망성쇠가 있듯이 우리 몸에도 생리적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고 , 확장하면 내면의 마음가짐에서조차 얼마나 큰 폭의 일렁임이 있는가 . 굳이 일체유심조 ( 一切唯心造 ) 처럼 심오한 이치를 들추지 않더라도 이런 현상은 오척동자의 마음에도 분명 있으리라 . 무언가를 위하여 혼신을 다하였지만 그에 따른 결과가 절망으로 나타났을 때에도 낙심하기 전에 가래 를 떠올려 보자 . 정작 가래 , 그는 자신이 전력투구하여도 끝내 팽 당할 운명이었음을 정녕 모르고 있었는지 . 그에게 면역의 사명이 곧 시련이었다면 그 시련은 결국에는 신체의 건강을 위해 한 덩이 소진하였다는 점 하나만으로 영광을 누린 것이 아니겠는가 . 가릉가릉 끓어오르는 불쾌한 가래처럼 시시때때 거슬리는 무수한 역경들 또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역시나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

아무리 행복한 나날 속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후에서 가래라도 끓을작시면 불쾌는 필연적으로 닥쳐오기 마련이므로 , 이따금 가벼운 목감기에 의한 일시적 가래현상이어도 느끼는 바가 괴롭기 짝이 없음도 이에 귀결된다 . 어떤 이가 아직 경험 없고 극한의 아픔도 겪어 본 적 없었다 하더라도 그 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 위기는 매 순간이 지옥이리라 . 위기의 대소 ( 大小 ) 는 상관이 없다 . 스스로가 겪고 있는 그 순간이 최악 그 자체라고 그것을 인정하지 아니 하면 서로를 이해함과 위로함의 본질은 위선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 당장 자신의 기도 ( 氣道 ) 를 막아 선 가래를 이해해줄 자가 누가 있겠는가 ? 설령 내과전문의에게 찾아가 하소연한다 하여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아픔을 이해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니 , 하물며 누가 그대의 역경을 이해해주겠는가 . ‘ 카악 하는 단말마의 소리를 내지르고 뱉은 한 덩이 가래뭉치라도 그 안에 필사의 전투가 감추어져 있기 마련일진대 인간이 생득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시련들이야 얼마나 큰 격전의 산물일는지 굳이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의 고됨은 모두 과거의 기회들과 행운들이 상호작용을 하여 얻게 된 결과이고 그것을 발판 삼아 진일보 , 일약 발전하기 위한 가능성이 된다 . 미래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됨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끝내 인생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비는 시간들 , 회복을 기원하며 몸 밖으로 배출되어지는 가래의 염원 또한 그것과 별반 다름없다 .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은 백자타호 ( 白磁唾壺 ) 라고 작은 병을 만들어 지니시면서 목 안에 끓는 가래 한 방울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으셨던 바도 이러한 맥락일 터 . 심지어 그 타호를 세척하는 임무를 맡았던 시동 ( 侍童 ) 은 과연 무슨 생각에 잠기어 물로 헹구고 닦아내었을 지에까지 미친다면 가히 짐작할 만하다 . 작은 것에서도 소홀하지 않고 성찰함이 퇴계 선생의 자세였다면 우리가 성현을 따를 때 어떤 모습을 따라야하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 흔히 일컫는 우주의 먼지 같은 우리 존재라지만 , 우리는 우리만의 의미가 있고 삶의 내용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먼지처럼 여기는 미물들 또한 그러할 것은 자명하다 . 하찮게 여기던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쓸 때 비로소 보편타당하다고 여겨왔던 것에서 숨겨진 이면이 도출되기 시작하니 이것이 문명이 여기까지 이룩된 원초적 기회들이 된 것이다 . 사막에서 바늘 찾기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지만 가래의 모습 속에서 이면을 보는 것은 무척 쉽다 . 가래가 기회를 찾아 잡균들과 투쟁했던 전력 ( 戰歷 ) 이 있었던 것을 찾는 것보다 내 가족 , 내 친구 , 내 동료들의 이면을 찾아내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이다 . 적어도 그들은 가래와는 달리 소중히 여김을 받는 존재들이고 서로 소통까지 가능하니 말이다 .

과연 그러했다 . 청년은 외마디 탄성을 지르며 조물주의 의도를 일각이라도 살펴보는데 성공하였다 . 가래는 흉물스러우라고 만들어두신 것임을 . 마치 삶의 고통을 아름답게 생각하려 인격을 도야 ( 陶冶 ) 하여도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점은 변하지 아니 하는 것처럼 . 가래의 존재가 신체의 건강을 위해 제 몸 바쳐 흉물로 변했다 해도 흉물은 흉물일 뿐 그것이 아름다워지지는 아니 한다 . 이처럼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 , 살아가는 데에 대한 불확실 , 청년이 겪어야 하는 생전 처음 겪는 육체의 고단함 등은 모두 그러하라고 만들어 두신 것이 분명하다 . 다만 그 모든 불쾌한 요소들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긍정적 효과들을 우리가 모르고 마냥 타박하고 지내는 것이며 , 조물주는 피조물들이 항상 괴로워하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내달리게 만들려는 큰 뜻이 담겨져 있음에 틀림없다 . 끓는 가래를 머금은 사람들이 끓는 가슴을 하나씩 갖고 뜨거운 마음을 끓이고 있음은 무언가 좀더 나은 미래를 삶아내려는 것이리라 . 냉수 한 잔으로 가래를 진정시키면서도 변하지 않는 끓는점은 원동력이 될 것이고 , 그 원동력들이 모여 주변 사람들과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같다 . 가래 뱉는 소리가 출발 신호탄이 되어 아침을 열어주면 또 다시 조물주의 운행을 따라 나서게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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