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농촌환경 그대로 살린 화폭… 여름숲속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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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8.05 09:46:27
  • 조회: 672
강원 횡성군 우천면 하대리에는 요즘 전봇대마다 손수건만한 깃발이 펄럭인다. 깃발에도, 길가에 걸린 플래카드에도 ‘제2회 여름숲속 미술제’란 글씨가 적혀 있다. 볏짚·보릿단에 분뇨를 섞어 삭혀 퇴비를 만드는 퇴비사 벽엔 마을 풍경이 그려져 있다. 육묘장 문틈으로는 조각작품이 살짝 보인다. 입구에 붙어있는 작은 쪽지. ‘관람을 원하시면 전화주세요.’

전화번호를 누르면 김주환(30)·이하림(31)씨 부부가 털털거리는 흰색 트럭을 몰고 나타난다. 지난달 17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여름숲속 미술제 기획자이자 안내원, 동시에 작가다. 마을 입구 퇴비사와 맞은편 육묘장에 조각 20여점을 전시했다. 500m쯤 떨어진 부부의 살림집 옆에 천막을 쳐서 곤충관을 만들고 대형 곤충 모형을 설치했다. 집앞 텃밭 옆엔 옥수수를 심어 미로를 만들었다. 작가를 섭외하고 방문객에겐 작품을 설명해준다. 그런 틈틈이 작품을 제작한다.



“농촌 환경을 그대로 살린 미술제예요. 마을 창고에 조각을 전시하고 그 벽에다 그림을 채우고, 마을사람 얼굴 그리고…. 저희가 살고있는 이곳을 문화마을로 만드는 게 꿈이거든요.”

하대리엔 지난해 3월 내려왔다. 남편 김씨의 부모님이 살고있는 곳. 그 전까지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살았다. 전업작가인 주환씨가 2002년 8월 육묘장 근처 버려진 공장을 사서 작업실로 개조했다.

한달에도 수십개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대신 문화적으로 빈약한 시골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생각을 구체화하면서 꿈이 커졌다. 작가를 모아 매년 미술제를 개최해 한 마을을 문화마을로 바꾸는 일. 노력하기에 따라 가능할 것 같았다.

소를 놓아 기르던 언덕 700여평을 샀다. 흙을 파내 평지로 만들고 관리사를 고쳐 살림집으로 꾸몄다. 농업진흥청에서 씨앗 얻어 접시꽃 심고 잔디를 깔았다. 집앞 텃밭에선 고추·토마토·감자·가지를 키웠다. 지난해 여름 미술제를 치르고, 가을·겨울엔 2회 행사를 기획했다. 1회는 퇴비사와 육묘장에서 전시하는 데 그쳤지만, 2회는 곤충관과 옥수수 미로를 추가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작가 공모하고, 수차례 서울과 하대리를 오가며 작가들을 만났다.



시간 나는 대로 인테리어용 조각소품을 만들고 학교 선후배의 작업을 도와 돈을 만들었다. 유학자금은 작업실·살림집 구하고, 지난해 미술제를 치르면서 바닥났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해 입을 것 안입고, 먹을 것 안먹고, 데이트 한번 안하고 모은 돈이었다. 미술제를 진행하는 데는 깃발·플래카드·포스터·리플릿·재료비까지 적잖은 돈이 들었다. 작가들이 작품비 한푼 받지 않고 참가해주는 게 다행스럽고 고맙다.

“지난해엔 학과 선후배가 작품을 내주셨어요. 올해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젊은 작가 30여명이 참가합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벽화미술모임 ‘거리의 미술 동호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퇴비사 벽에 벽화를 그려주셨고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 온몸에 페인트 묻히며 그림 그리는 이들에게 부부가 해줄 수 있는 건 약간의 재료비와 밥, 잠자리밖에 없다. 텃밭에서 캔 감자와 토마토를 한아름 들려주며 “언제라도 찾아오면 먹여주고 재워주겠다”고 약속할 뿐이다. 작업실과 부부의 살림집에서 부대끼며 먹고 자야 하지만, 작가들은 “누나와 형의 뜻에 공감한다” “갤러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전시하는 게 좋다”며 재미있어 한다. 하대리에 올 땐 빵이며 피자 같은 ‘서울’ 음식을 챙겨오는 걸 잊지 않는다.

올해엔 옆집 아저씨가 밭 600평을 빌려줬다. 옥수수 8,000그루를 심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형태의 ‘화엄일승법계도’를 옥수수로 그려냈다. ‘한송이 들꽃에서 우주를 보다’라는 미술제 주제에 맞춰 옥수수 한 알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지난달엔 작가 15명이 하대리에 다녀갔다. 마을 입구 다리에다 꽃무늬 그리고, 동네 아이들 앉혀놓고 얼굴을 그려줬다. 전시장인 육묘장에서 연극하고, 동네사람 사진을 종이에 새겨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품뿐 아니라 작품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미술제 행사의 하나다. 개막식 땐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작은 잔치를 열었다. 퇴비사 한편엔 경운기와 트랙터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조각작품들이 놓여 있다.

“젊은 나이에 서울을 버리고 온 건 치열하게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진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예요. 현실에서 도피해 ‘귀농’한 게 아닙니다. 하대리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3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요.”

부부의 명함엔 ‘여름숲속 미술관 대표·조각가’라고 찍혀 있다. ‘여름숲’은 아내 하림(夏林)씨의 이름이다. 여름숲속 미술관(cafe.dau m.net/studioharim)은 아직 현실에 없다. 생긴다면 하대리 전체가 될 것이다. 마을 곳곳에 조각과 벽화가 있고 문화가 물처럼 흐르는 곳. 문화마을을 만드는 과정이 미술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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