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여섯평 삶의 피신처 “외로움을 즐깁니다” 홍천 내촌 김기덕 감독 작업실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5.08 09:23:32
  • 추천 : 0
  • 조회: 1381
영화 ‘섬’의 저수지 낚시터,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사계의 풍광들, ‘파란대문’에서의 적요한 바닷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김기덕 영화감독의 작업실을 찾아가면서 그가 만든 영화 속의 ‘아주 특별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의 집’은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홍천방향 국도에서 인제 방향으로 빠진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 도로 좌우에는 산벚꽃·복사꽃·배꽃·개나리 등이 화사하게 이어졌다. 햇살은 밝고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김감독의 작업실은 비포장 산길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작년 5월 집을 완성했어요. 처음부터 집짓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버스를 놓고 그 안에서 살았는데 원두막 짓다가 집까지 짓게 됐죠. 책보고 지은 거 아니고, 그냥 지으면서 배워갔어요. 꼭 배워야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영화를 만드는 거나 집짓는 거나 마음 가는 대로 하죠.”

그의 작업실은 6평이다.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농사용 움막으로만 허가가 났기에 6평이 한도다. 현관이자 방문인 나무문을 열자 바로 방이었다. 그게 이 집의 시작이자 끝이다. 방 한쪽엔 잠자는 매트리스와 이불이 있다. 다른 한편엔 겨울 난방용 벽난로, 작은 텔레비전, 간단한 취사도구, 작은 밥상, 그 위에 노트북이 알뜰하게 놓여 있다. 화장실은 없다고 했다. 주변 숲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단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기와를 얹는 작업을 지난해 5월과 6월, 꼬박 두달 동안 매달려 혼자 해냈다. 집짓는 법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머리와 가슴과 손이 움직이는 대로 하나씩 만들어 갔다. 조금씩 집이 지어지는 희열은 참 특별했다. 기둥 하나가 제대로 올라가면 기쁨에 들떠 집 앞 개울로 뛰어들어 멱을 감았다.

그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노동으로 땀을 흘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희열을 얻는다.

집 앞엔 작은 개울엔 쓰지 않는 작은 나룻배도 걸쳐져 있다. 눈에 익었다. 그의 영화 ‘사마리아’의 후반부에 나오는 장소였다. 그의 작업실도 사마리아의 ‘여진’과 그의 아빠가 하룻밤 머문 곳이다. 그러고 보니 작업실 주변엔 그의 영화에 등장했던 소품들이 많았다. 자동차가 생기기 전까지 타던 모터바이크는 그의 영화 ‘해안선’에서 배우 장동건이 타고 나왔다. 지금은 집앞에 장식물처럼 서 있다.

집 근처에 세워져 있는 빨간색 중형차는 그가 3년 정도 살았던 이동식 집. 영화 ‘수취인불명’에서 배우 양동근이 탔다. 작업실 건너편 노부부 집의 할아버지는 ‘사마리아’에 출연했다.



“1주일에 두세 번 이곳에 옵니다. 작업실이라기보다 쉬러 오는 거예요. 아침에 6~7시쯤 닭우는 소리에 잠을 깨요. 집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포클레인으로 돌집도 짓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시나리오도 쓰고 더우면 한 잠 자고. 저녁되면 깜깜해져 정말 심심해지고 그게 진해지면 외롭죠. 근데 도시에선 외롭기도 힘들잖아요. 외로운 걸 즐기러 여기 오죠.”

집 짓는데 든 비용은 6백만원. 아파트 한 평 건축비와 맞먹는 돈이다.

“서울 개념으로 보면 정말 싼 거지만 여기서 사는 부가가치는 엄청 커요.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건 정서적 감정입니다. 어떤 사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적은 돈도 큰 정서적 부가가치를 준다고 생각해요.”

그는 감성이 풍부했고 정이 많았다. 지금 작업실도 원래는 딸을 위해 지은 것이다. 나중에 머리 식히고 싶을 때마다 와서 쉬어가라고. 아직 열살밖에 안된 딸은 당장 필요가 없어 빌려 쓰는 셈이란다. ‘다은이의 생각’이라고 방문 앞 받침대에 써있다. 집 앞 작은 의자에도 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은 영화를 만들면서 받은 상처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게 보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영화는 굉장히 많은 시비를 일으켰어요.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것 같지 않고. 내가 왜 그런 사람들한테 영화를 보여주고 욕을 먹나 하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만든 게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었죠. 나도 인생이 뭔지 이해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변했어요. ‘인간은 자연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집 주위엔 내 나이보다 많은 밤나무가 많아요. 주변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저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나도 내 자신을 놓아보자 생각했죠.”

외로움을 참아가며 견뎌야 할 것이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지내보니 새로운 매력들이 보였다. 마음을 열기에 따라 피는 꽃, 날아다니는 나비, 나무 등이 외로움을 채워줬다.



“사람은 굉장히 무섭고 잔인하고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생각을 해요.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을 때 아름다운게 인간이라는 역설적인 이미지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인간을 끊임없이 비유해 또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습관이 있는 편입니다.”

“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가 위악적·악마적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사마리아, 악어, 나쁜남자, 섬…’ 이런 영화들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는 이기고 하나는 지는 액션 만들면 되는데, 세상이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김기덕 감독(44)은 1996년 영화 ‘악어’로 데뷔했다. 이후 ‘야생동물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섬’(1999) ‘실제상황’(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남자’(2002) ‘해안선’(2002)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사마리아’(2004)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안의 폭력성과 엽기적 장면 등으로 국내 영화계에서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계에서는 호평을 받아왔다.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글쓰기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