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소외된 곳 찾아 '천상의 소리' 기부하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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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뉴시스 [www.newsis.co.kr]
  • 14.01.15 14:18:23
  • 조회: 2363

 

 

눈을 감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클라리넷을 분다. 무대 위에는 지휘자도, 악보와 보면대도 보이지 않는다. 연주 도중 다른 단원의 눈을 보며 호흡을 맞출 수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청각에만 의존해 웅장한 합주곡을 완성해낸다.
단원 대다수가 시각장애인인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2011년 10월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600여명의 청중이 일제히 일어나 네 번이나 기립 박수를 쏟아냈다. 준비한 앙코르곡 3곡을 모두 연주하고도 "준비한 곡이 더 없어 미안하다"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이들은 '기적의 오케스트라', '천상의 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2시간이 넘는 단독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크고 화려한 무대에만 서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무대를 우리나라의 한 노인정에 고스란히 가져와 무료 공연을 펼친다. 고전 영화 음악을 연주하기 전 오케스트라 단장은 옛 연사처럼 구수한 설명을 곁들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입에서는 절로 '아 좋다!', '어이구마~ 어째'와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트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콘트라베이스, 바순 등 시각장애인 연주자가 국내에 없는 일부 파트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시각장애인 단원이 11명 비장애인 8명이다. 이상재(47) 단장(나사렛 대학 관현악과 교수)과 김종훈 악장(숭실대 겸임교수)도 시각장애인이다.
이 단장은 2007년 3월1일 시각장애인 14명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1997년 미국 유학길에서 돌아온 이 단장이 수백 차례 자선음악회를 열며 알게 된 지인으로 단원을 꾸렸다. 모두 음악을 공부했지만 시각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묵혀두던 사람들이었다.
"시각장애가 있으면 일반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가 힘들어요. 일단 지휘를 못 보고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도 없으니까요. 음악을 전공하고 직업을 가지려면 대부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거죠.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서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이들은 첫 해 지방 순회공연을 포함해 10여 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해가 갈수록 공연 횟수가 늘어 지난해에는 50차례 넘게 연주했다. 7년 동안 활동하며 217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이들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무료 공연'을 주로 연다. 특히 장애인과 노인, 노숙인, 열악한 환경에 사는 청소년 등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역 곳곳의 복지관과 보육시설, 노인과 장애인 보호시설, 노숙인 쉼터를 순회하며 바이올린을 켜고 피콜로를 분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특히 재정난이 심했다. 고정으로 지원받는 예산 없이 연주를 하려니 기본 식비와 교통비, 단원들의 개런티 등 나가는 돈만 있고 들어오는 돈이 없었던 것이다. 첫 해에는 5000만~6000만원 적자가 났다. 결성 7년째인 지난해에도 2500여만원이 비었다.
"매년 12월31일에 내가 단원들에게 얘기하는 게 있어요. '야. 그래도 우리 올해도 문 안 닫고 왔네.' 올해는 적자가 얼마나 났나 연말마다 계산을 해봐요(웃음)."
이 단장은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직업 연주가로 살아가려면 최소한 생계를 꾸릴 만큼의 돈은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회기금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싶은 마음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3년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 하는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할 때도 그랬다. 이 단장은 2억여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 4곳을 찾아 호소했다. 그러나 이 단장 손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었다. 결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다. 여전히 부족한 4000만원은 이 단장이 개인 공연을 하며 번 돈으로 메웠다.
'차라리 안마라도 해야겠다'며 오케스트라를 빠져나간 단원도 6명이나 된다. 이 오케스트라에서 직업 연주가로 살기엔 도저히 '밥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두 달 뒤에 결혼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월세조차도 못 내 당장 생계가 절박한 단원도 있었다. 이 단장이 나가지 말라고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매년 '무사히 보내자'는 얘기를 나눌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공연을 고수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 단장은 "우리가 음악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눈이 돼 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료 하나를 찾을 때도 눈이 필요하고 악보도 눈으로 봐야 해요. 심지어 전화비용 청구서 하나 처리하는 간단한 것도 눈으로 봐야 알 수 있어요. 대학에 다닐 때 내 친구들은 점심 식사 시간마다 식판을 매일 갖다 줬어요. 국을 더 달라고 하면 갖다 줬고, 반찬도 대신 날라줬어요. 이게 작은 일 같아도 정말 귀찮은 일이거든…."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6년을 공부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단장은 미국 피바디 음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 가장 행복하면서도 괴로웠던 일로 '공정한 경쟁'을 꼽았다. 수업 도우미가 칠판에 적힌 글씨를 모두 적어서 불러주게 하는 대신,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로 평가에 선처를 바라지 말라는 학교 측의 당부가 있었던 것. 이 단장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공부해 140년 학교 역사상 첫 시각장애인 졸업자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 단장은 "'너는 이걸 해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이걸 할 수 있었어' 하면서 일일이 인사해야 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대신,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왔듯 나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곳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늘도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지역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을 찾는다. 이 단장은 음악을 듣고 함께 즐기며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올해도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연주를 계속 할 거예요.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다보면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더 밝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 오케스트라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작지만 큰' 오케스트라가 되면 좋겠어요."
이 단장은 '올해도 무사히'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꾸려나가기를 희망했다. 음악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연주도 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힐링'하는 주체가 되는,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힘이 있는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새해 소망을 밝혔다.
그는 "우리를 찾아오는 청중들의 마음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가 음악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당일 오후 전체 연습 때 이 단장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활기찼다.
<뉴시스 기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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