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 막춤을 무대에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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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뉴시스 [http://www.newsis.com]
  • 13.02.15 16: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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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몸뻬바지에 박박머리 무용가 안은미…

 한국인의 몸과 몸짓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몸뻬 바지를 입은 무용가가 동영상 카메라를 들었다. 40대부터 60대까지의 아저씨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해수욕장, 공원, 등산로, 식당과 술집…. 넉살 좋게 그들과 친구가 되면 카메라를 들이대고 춤을 추라고 부탁했다. 어떤 이는 “에구 춤은 무슨…”이라며 쭈뼛거렸고, 또 어떤 이는 “이래 봐도 내가 한춤 한당께” 하며 신나게 막춤을 추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차례 흘러갔다.

무용가 안은미(사진)의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는 ‘현장주의’의 산물이다. “일상에 가리어진 아저씨들의 진정한 몸”을 1년간 카메라로 더듬었던 안은미는 “몸은 절대 거짓말을 못해요. 그 생명체를 한곳에 모아놓으면 한 시대의 역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죠”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의 연습실에서 공연을 한창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빡빡머리에 초록색 털모자, 알록달록한 스카프, 짝짝이 양말, 노상 입고 다니는 몸뻬 바지에 빨간 담요까지 두른 모습이 영락없는 ‘궤도 이탈자’다. 물론 그 키치적 외모는 무용가 안은미의 ‘자기표현’일 것이다.

▲ “책임감에 짓눌린 중년… 그들 몸에는 역사가 담겨있죠”
안무도 없는 20명의 춤 통해 삶과 정서를 보여줄 것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아저씨들의 공통점은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었죠. 게다가 지금의 40대부터 60대까지는 사회적 캐릭터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잖아요.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세대죠. 그러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아주 많아요. 억압적인 사회에서 성장해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왔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 그 아저씨들의 몸에는 50년의 역사가 담겼죠. 제가 의식적으로 안무를 짤 필요도 없이 그 시간을 무대 위에 그냥 펼쳐놓을 겁니다. 몸은 이미 말하고 있거든요.”

니체도 말했듯이, 인간은 ‘놀 때’ 가장 ‘인간적’이다. 물론 그것은 생산성이나 효용성과는 무관한 ‘놀이’다. 하지만 안은미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저씨들은 책임감에 짓눌려” 놀이(춤)를 잊었다. 공연의 제목에 ‘무책임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그런 까닭이다.

안은미는 “무책임하게 논다는 것”을 아저씨들의 ‘인간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봤다. 아울러 “아저씨들의 몸과 몸짓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겠다”는 말도 했다.

“공연되는 춤, 양식화된 춤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춤을 보여주자는 거죠. 며칠 전에 무대에 오를 20여명의 아저씨들을 오디션을 통해 뽑았거든요. 앞으로 3주 동안 몸풀기와 스트레칭 등의 수업을 하고 무대에 설 겁니다. 관객들은 아저씨들의 춤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춤출까, 어떻게 해서 저런 몸짓을 갖게 됐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겠죠. 또 객석에 앉은 아저씨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겠죠. 그러다가 신명이 오르면 무대로 나와 같이 춤춰도 돼요.”
공연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10년이었다. 무용단 ‘안은미컴퍼니’가 두산아트센터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되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동시대인들의 몸과 몸짓을 탐구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2011년에 첫 작품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가 공연됐다. 식민지시대에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온 여성들, 그러니까 ‘할머니들’을 주체로 등장시킨 공연이었다. 현대사의 곡절을 견뎌온 여성의 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이 첫 번째 공연에 담긴 화두였고, 할머니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허우적거림’에는 의외의 호평이 쏟아졌다. 연극평론가 김방옥은 “삶에 대한, 땅과 몸에 서린 우리의 정서에 대한, 한국의 여인들에 대한, 격렬한 통증과 치유와 긍정의 환희를 담고 있다”며 “근래 그 어떤 연극이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몸에 담아 이처럼 단순 명료하게 정곡을 강타했던가?”라고 썼다.

이듬해에는 10대들의 몸을 탐구한 <사심없는 땐스>가 무대에 올려졌고 그 역시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공연하는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안은미는 3년에 걸쳐 이뤄진 일련의 공연에 대해 “한국인의 몸과 몸짓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젠 좀 지쳤다”고 했다.

춤에 대한 그의 지론은 “이 세상에 몸치는 없다”로 모아진다. “아기들도 할머니도 누구나 출 수 있는 것이 춤이며, 춤을 출 때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춤출 수 없는 것일까. “춤은 이러저러하게 춰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은 강요된 겁니다. 그 강요받은 문법을 벗어던지면 누구나 춤출 수 있어요.”

안은미는 “스물아홉 살이던 1992년에 삭발”을 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과 결별했다”고 했다. “거추장스러운 게 뭐였냐?”고 묻자 “아주 복잡해서 한두 마디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어쨌든 “1㎝를 밀어내는 데 5년이 걸릴 만큼 갈등”했으니,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는 선택이 쉬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삭발이 또 다른 에너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옛날엔 별 걸 다 고민했지만, 이제는 자질구레한 것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3월1일부터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16일에는 대전 문화예술의전당으로 옮겨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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