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한국 노동구조의 한계…‘사내하청’은 법적 보호 못 받는 나쁜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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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3.01.31 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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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의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최병승씨가 8년간 벌인 법정 다툼은 ‘누가 진짜 사용자인가’를 찾는 과정이었다. 현대차는 최씨가 사내하청업체 직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현대차가 최씨를 불법파견 형태로 사용한 실질적 사용자라고 판결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맞물린 노사 갈등과 법정 다툼은 ‘사용자 숨바꼭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노동전문가인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주가 소작을 부리는데 마름이 중간에 끼어든 모양새”라고 말한다. 사용자(지주)와 노동자(소작)가 직접적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 중간에 사내하청업체(마름)가 끼어들어 사실상 인력을 사고파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기간제나 파견 등 여타 비정규직과 같이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차별과 해고 등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나쁜 일자리’인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싼 임금에 쉽게 자를 수 있는 인력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빈곤을 확산시키고 사회통합을 해친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고, 실업 등에 대한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저임금-실업-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비정규직 차별을 전제로 만들어진 한국의 고용구조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양산하고, 극단적인 노사 갈등만 심화시키는 상황이다.

 

▲ 60~70년대 중공업 육성 때 철강·조선업에 중점 도입
차별·해고 보호막 없어 ‘저임금·실업·빈곤’ 악순환

 

사내하청은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정부의 중공업 지원 정책 속에서 조선·철강업을 중심으로 도입됐다. 1997년 외환위기 후 제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서비스업까지 전 산업에 걸쳐 확산됐다. 2010년 고용노동부의 사내하도급 실태조사를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 중 41.2%가 사내하청을 활용하고 있고, 하청근로자 비율은 32.6%에 달했다. 사내하청 활용 비율은 2008년 28%보다 13.2%포인트나 증가했다. 모든 업체가 사내하청을 쓰는 조선업은 정규직 노동자(5만3600명)보다 하청노동자(8만5000명)가 58.7%나 더 많다. 철강산업도 하청노동자 비율이 77.6%에 달한다.

은수미 의원은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나쁜 고용모델을 대기업이 선도해 전 산업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며 “정부도 민간위탁이라는 이름 아래 사내하청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고 인천공항의 경우 만들 때부터 정규직 700명, 사내하청 3500명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병원에서도 사내하청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사내하청이 전 산업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나라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사내하청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규직보다 싼 인건비로 사용하면서도 직접고용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실질적인 임금이나 노동조건, 직무수행 과정을 원청이 결정하면서도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원청과 사내하청 업체 사이에 계약이 존재할 뿐 사내하청 노동자와는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기 때문에 하청업체와의 계약만 해지하면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며 법적 책임과 퇴직금 지급 등의 부담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이 뒤로 숨으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기간제나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보호를 받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조차도 받지 못한다. 실제 대기업은 사내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로 노동자들을 손쉽게 해고한다. 노조가 생겨 정규직화를 요구할 경우 업체를 폐업해 해고하는 일들도 빈번히 일어난다. 비정규직 중에서 사내하청이 최악의 형태로 지목되는 이유다. 2011년 노동부가 만든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상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사내하청의 노사 갈등은 장기화되고 격렬해지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이후 전체적 노사쟁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사내하청 관련 노동쟁의는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2007년 11월 기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0.4%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동쟁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1에 가까운 27.8%를 차지했다. 은 의원은 “사내하청 노동쟁의는 기존의 노사관계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단체협상이나 노동쟁의는 노사 간 자율적 해결이 어렵다”며 “법의 부재에 따른 사회적 효과는 길고 격렬한 노동쟁의로 나타나고 많은 노동자들이 각종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사내하청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용불안에 처해 있다. 노동부 조사 결과를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임금의 74.5%밖에 받지 못하지만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쉬며 근속연수도 짧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216.4시간)보다 4시간가량 더 길게 일했고, 휴일도 정규직(27일)보다 9일이나 짧았다. 근속연수도 정규직(12.24년)보다 훨씬 짧은 3.38년으로 고용불안도 심각했다.

나쁜 일자리인 사내하청의 증가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사내하청 사용 증가는 단기적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력 약화, 일자리 질 저하 등 고용성과의 악화로 귀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내하청의 확산은 박근혜 당선인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 약속과도 배치된다. 박 당선인은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보장해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법의 빈틈을 이용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활용해 대기업의 이윤을 늘리고, 원·하청 근로자 간 임금과 근로조건 격차가 확대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와도 배치된다.

사내하청은 대기업의 고용률을 낮추고 나쁜 고용을 확산시키는 점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전문가들은 불법파견에 대한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사내하청 활용을 제한하고, 보다 큰 틀에서 상시적 업무는 정규직 직접고용의 원칙이 사회적으로 확립돼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과 해고자의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조돈문 교수는 “서구와 같이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립하는 게 우선이며, 비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을 허용하되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 고용보장과 소득안정성을 책임져야 한다”며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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