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요리·연주로 말기환자와 ‘마지막 축제’ 벌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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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3.01.11 15:06:55
  • 조회: 721

 

ㆍ호스피스 요리사 된 플루티스트 용서해씨

 

플루티스트 용서해씨(50·사진)는 열일곱 살 때 음악 공부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20대를 파리지앵처럼 보낸 그는 한때 요리사를 꿈꾸기도 했다. 음악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24년 동안 국내외를 돌며 활동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음악가의 삶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연습과 공연밖에 모르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기도 했다. ‘음악가로서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스스로 아무 대답도 못하던 어느 날, 우연히 호스피스 센터를 방문한 뒤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말기암 환자의 임종을 함께하며 그를 위해 플루트 연주를 하게 됐어요. 단 한 사람을 위한 연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공연’이었죠. 연주하는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하고 특별한 느낌, 화려한 무대에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감정이었어요.”

그는 그때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찾았다고 했다. 그 이후 15년간 일주일에 한 차례씩 호스피스 센터를 찾아 음악 봉사를 했다. 말기암 환자들의 병실을 돌며 연주를 해주고, 임종하는 이에겐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좋아한 곡을 들려줬다. 호스피스 센터 방문이 거듭되면서 용씨는 환자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목욕을 거들거나 주방 일을 돕고, 병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
가족합창 속에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 복수가 차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애창곡 ‘사랑의 송가’를 부르던 간암 환자…. 눈을 감으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이 남긴 감동을 잊을 수 없어 용씨는 최근 <삶의 마지막 축제>(샨티)를 펴냈다.

“곧 세상과 작별할 사람이 내 연주를 들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어요.”

용씨는 문득 연주를 통해 환자들을 위로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음악 봉사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기암 환자들이 무엇보다 먹고 배설하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틀린 몸으로 평생을 누워 지내다시피 살아온 1급 지체장애인이 있었어요. 입맛은 살아있는데 혼자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죠. 대소변 문제를 봉사자의 손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식사량에 아주 민감했어요. 결국 마지막 며칠은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의 안타까움을 잊을 수 없었어요.”

용씨는 호스피스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유학 시절 꿈꾸던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20년 넘게 걸어온 플루트 연주자의 길을 미련없이 접었다. 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는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프랑스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분교에 입학했다. 요리사가 된 그는 문화 공간을 겸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삶의 마지막 축제’라는 행사를 벌였다. 말기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사랑과 감사, 용서와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죽음이 코앞에 와 있을지라도 살아있는 동안의 인연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용씨는 요즘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산다. 우리의 산야에서 자라난 재료들로 우리 몸에 더 적합한 호스피스 요리를 연구하고 만들기 위해서다. 그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용서해 야생 이플 농장’(이플은 풀잎의 순수한 우리말이다)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요리를 하면서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어떻게 하면 말기암 환자들의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음식, 치유의 기운이 깃든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와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면서 그는 신선한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 터라 우리 산야에서 자생하는 재료로 요리를 하고 싶다.

산 생활이라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밥상을 차려드리지는 못하지만, 환자나 그 가족들의 부름이 있을 때는 지금도 가끔씩 ‘삶의 마지막 축제’를 벌인다는 용씨는 이런 ‘축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밥상이 근사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정성으로 담근 시원한 물김치, 따끈한 누룽지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생의 마지막에 있는 분들께는 더없이 아름다운 순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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