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임진왜란 때 사용 ‘글자 새겨진 총통’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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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11.29 14: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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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조 일자·장소 등 음각 ‘소소승자총통’ 3점
ㆍ진도 오류리 전라우수영 해역서 처음 나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과 최상급 고려청자 등이 전남 진도군 오류리 해역에서 발굴됐다. 이 해역은 1597년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울돌목(명량·鳴梁)과 인접한 곳으로, 전라우수영 해역에서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발굴되기는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수중발굴조사 결과, 명문(銘文)이 있는 소소승자총통 3점과 석제 포환, 양질의 청자향로를 포함한 고려청자 등 92점의 유물을 인양했다고 28일 밝혔다. 임진왜란(1592년) 발발 420주년인 올해 발굴된 총통 3점은 길이 58㎝, 최대 지름 3㎝, 무게 2㎏ 안팎으로 크기와 무게가 거의 같다. 각각 “만력무자(萬曆戊子·1588년) 3·4·5월에 전라좌수영에서 장인 윤덕영(尹德永)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총통을 발굴한 지점 주변에선 지름 8.6㎝, 무게 715g의 석환(石丸)도 함께 나왔다. 이 역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소소승자총통은 조선 중기의 개인용 화기인 승자총통류에 속하는 것으로 문헌에 나오지 않는 종류가 실물로 확인됐다.

 

 임경희 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화기도감의궤>에 ‘승자총통이 있다. 거기에는 소(小)가 있다’고 간단하게 전할 뿐 소소승자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며 “소승자총통처럼 마디가 없지만 안지름이 좀 더 좁아서 사정거리가 600보(120m 안팎) 정도인 소승자총통보다 더 멀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연구사는 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총포가 전라우수영 앞바다에서 발견된 것은 <난중일기> 등의 기록처럼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해전 패전 후에 전라좌수영 군사들이 전라우수영 해역으로 옮겨와 싸운 정황을 뒷받침한다”며 “총포가 명량해전에서 사용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도 오류리 해역은 고려시대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의 주요 운반 항로였다. 이번 1차 발굴조사에선 국보 제65호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에 못지않은 최고급품인 ‘청자 기린형 향로 뚜껑’ ‘청자 오리형 향로 뚜껑’ ‘청자 투각 붓꽂이’ 등 다양한 기종의 청자가 발굴됐다.

김영원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기린형 향로 뚜껑의 경우 말아올려진 꼬리가 독창적이고 혀도 세심하게 표현되었다. 오리 모양 향로의 뚜껑 안쪽에는 향이 빠져나가게 꽃모양 투창을 냈는데 내부까지 유약을 정성들여 발랐다”며 “고려시대 청자의 절정기였던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후반까지 제작된 것으로 왕실과 귀족층에서 사용했을 수준의 최고급품”이라고 말했다.

 

진도 오류리 수중문화재는 지난해 11월 이 해역에서 고려청자를 도굴한 일당을 붙잡으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발굴단장인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이 해역은 고려청자의 주요 운반 항로였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연관되어 중요한 지역”이라며 “조사 해역(9만㎡)을 사적으로 가지정하고 실시한 1차 발굴조사의 진척률이 0.8%에 불과해 수온이 상승하는 내년 5월에 2차 수중발굴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 임진왜란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승자총통 3점에 쓰인 명문들. ‘四月日左營 造小小勝字’(왼쪽 사진) 등 승자총통의 제조된 일시와 장소를 나타내는 명문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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