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기구한 삶·사연… 아홉 할머니의 ‘한지붕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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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11.29 14: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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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평균 78세…옥인동 ‘노인의 집’ 가보니

 

27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4층짜리 빌라 301호. 진영임 할머니(80)가 부엌으로 걸어가자 이용분 할머니(80)가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나도 커피 좀 타줘!” 진 할머니는 슬며시 뒤를 돌아보며 알듯말듯한 미소로 대꾸했다. “네가 타 먹어!” 할머니는 투덜거리면서도 살뜰히 챙겨준다. 두 사람은 이 집에 함께 사는 동거인이다.

이 집은 서울시와 종로구가 독거노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 수 있도록 마련한 ‘노인의 집’이다.

방 3개와 거실과 부엌, 욕실이 있는 빌라 2·3·4층의 집 3채에 각각 3명의 할머니들이 함께 살고 있다. 전체 할머니 9명의 평균연령은 77.8세다.

 

▲ 애 못 낳는다고 쫓겨나
수십년 타향살이 전전

▲ 전쟁 통에 옌볜 갔다가
천신만고 다시 귀국…
서로 보듬고 ‘따뜻한 일상’

 

2009년 이곳으로 온 진 할머니는 그전까지 서울 종로5가의 단칸방에서 홀로 살았다. 자식을 못 낳은 죄로 35세가 되던 해에 ‘소박’을 맞았다고 한다.

“내가 애를 못 낳는다고 시댁에서 구박을 많이 했어. 서른이 넘어가면서 신랑이 집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 어느 날 친구가 찾아오더니 자기랑 어디를 좀 가자는 거야. 그래서 그 길로 따라나섰는데 친구가 어떤 집 창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라 하더라고. 내가 ‘미쳤어, 남의 집을 왜 들여다봐’ 했는데 거기에 신랑이 어떤 여자랑 있었어.” 하지만 남편은 당당했다. “애 못 낳는 여자는 필요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진 할머니는 그 길로 상경했다. 친정집에서도 출가외인이라며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 종로에서 옷 만드는 공장을 다니다 쉰 살이 넘은 후로 식당일을 하며 홀로 살았다. 할머니의 표현대로라면 “그저 목숨이 붙어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집’으로 온 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웃음도 많아졌다. 진 할머니는 이제 이곳에서 ‘남자 밝히는 할멈’으로 통한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쫓겨난 이후 단 한번도 다른 남자와 살을 비비며 살아본 적이 없기에 자식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이다. 건장한 젊은이들을 보면 ‘나도 저런 자식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말을 거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게 우스갯소리로 ‘남자 밝히는 할멈’이 된 이유다.

 

이곳의 다른 할머니들도 다 제각각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오다 하나둘씩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종로구에서 이 집을 임차해 관리한다. 보증금은 서울시가 내준다. 집세는 1인당 매달 8만원으로 시세에 비해 매우 싸다. 할머니들은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연금으로 방세를 충당한다. 남는 돈은 병원비와 밥값, 전기요금, 가스비 등으로 쓴다. 반찬은 ‘우리 모두’라는 시민단체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가져다준다. 서울시가 1996년부터 연 ‘노인의 집’은 종로구를 포함해 서울 전역에 20여곳이 있다.

 

중국 옌볜에서 온 박분자 할머니(75)는 401호에 산다. 여관을 전전해오던 박 할머니는 3년 전 이곳을 찾았다. 박 할머니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소금장수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교사인 남편을 만났지만 할머니가 35세 되던 해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남편이 죽음을 당했다. 어떻게든 자식을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소련을 넘나들며 보따리장사까지 했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56세 되던 해 심장이 좋지 않은 외손자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돈을 벌러와 지금까지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공사장 식당일, 부잣집 가정부, 사찰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의 무릎은 너덜너덜해졌고, 지금은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다. 박 할머니는 “내 고향은 강원도 속초”라고 했다.

 

각자 혼자 산 세월이 오래된 할머니들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방문을 닫은 채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서먹했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서로에게 피를 나눈 가족보다 소중한 존재가 됐다. 박분자 할머니는 같이 사는 이기옥 할머니(85)의 간병인까지 자처하고 있다. 지난 6월 이곳에 온 이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다 내 언니고 동생이고 가족이지….”

박 할머니는 301호 진 할머니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친언니 이상의 존재다. “이제는 언니를 하루라도 안 보면 막 기분이 이상해지고 그래. 언니가 정말 좋아.” 유난히 춥다는 올겨울. 이제 할머니들은 가족이 있어 덜 외롭고 덜 추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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