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되니, 유서 비슷한 게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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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9.17 13: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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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 자전적 에세이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76)의 신간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지적 여정’이란 부제를 단 에세이다. 외형으로는 1970년과 1980년 두 차례 도쿄대에 외국인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렀던 경험과 성과를 기록한 일본 체류기이자 그의 역작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를 쓰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나 8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현장비평과 문학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그의 사상과 삶을 망라한 자서전으로 읽힌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유서 비슷한 게 아니겠소.”

 

그는 자신의 학문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과의 만남을 회고한다. 게오르그 루카치,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모리 아리마사, 루스 베네딕트, 리처드 미첼이 그들이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미첼의 <일제하의 사상통제>는 김 교수가 직접 번역한 책이기도 하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김 교수의 문학관을 형성했다. 그는 1970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도쿄대 앞 서점에서 독일어 원서를 발견하고, 가슴 설레며 밤새워 읽던 순간을 떠올린다.“루카치는 부르주아의 서사양식인 소설이 근대 자본주의를 설명한다고 생각했소. 소설은 단순한 문학 장르가 아니라 세계를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도구인 셈이지요.”

문학으로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를 수행하려던 일제시대 카프는 이렇게 해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확대한 저작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1973)의 주제가 된다. 문예비평의 원조인 고바야시 히데오와의 만남은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를 경유한다. 1970년 미시마는 일본 재무장을 요구하며 자위대 총감실에서 할복자살해 큰 충격을 던졌고, 당시 일본 체류 중이던 김 교수는 국내 문예지에 그의 죽음에 대한 글을 썼다.

 

“아, 에토 준, 글쓰기에 미친 사람. 유일한 가족이던 자기 마누라가 죽는 과정까지 글로 쓰고,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자살한 사람.”

 

자신과 동시대인인 에토 준에 대해서는 논리에 앞서 깊은 감정을 토로한다. 일본 근대를 ‘잉여(서양과의 차이)에 대한 치욕감’으로, 전후 일본을 ‘상실의 시대’로 명명했던 비평가 에토는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집필했고,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일본문학의 기원을 탐구하는 한편 일본 소설이 ‘서브컬처’로 전락하기 전까지 20년간 소설 월평을 썼던 에토의 글쓰기는 미수를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소설 월평을 쓰는 김 교수의 삶과 닮았다.

 

모리 아리마사는 1980년 두 번째 일본 체류 당시 만난 인물이다. 이미 4년 전 유명을 달리했던 그는 데카르트 연구자로 일본에서의 지위와 가정을 모두 버리고 파리로 가서 프랑스 여인과의 재혼, 이혼을 반복하며 야인으로 삶을 마쳤다. 김 교수는 모리의 에세이가 구사하는 수사학에 매혹되는 한편, 파리에 살면서 고구려사를 연구한 이옥 교수(초대 법무부 장관 이인의 아들)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파리에서 자살한 모리의 딸을 만나기도 한다. 이들에게서 김 교수는 일본이란 대타자 앞에서 조선의 민족의식을 형성하고 지키는 한편 부정해야 했던 이광수로 건너가는 다리를 찾는다.

처음부터 김 교수의 끌림은 이광수를 향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국학’을 설립하라는 사명이 주어진 1960년대의 젊은 연구자로서 그는 1970년 첫 도일 당시 일제강점기 유학생의 근대체험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이광수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을 향한 1980년 그의 가방에는 10권짜리 이광수 전집이 들어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3대 천재가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인데 홍명희는 대지주에다 유명한 친일가문이었고 최남선의 집안 역시 황실보다 돈이 많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가난한 40대 파락호가 삼취인 무당 딸에게 얻은 아들인 이광수는 11살에 고아가 됐단 말이오. 가진 것이라곤 달랑 붓 한 자루뿐이었던 그의 삶은 아비를 찾는 고아에서 스스로 아비가 되는 과정이었어요.”

 

1981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하기 시작한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5년에 걸쳐 원고지 4600장으로 마감된다. 그가 첫 도일기에 발견한 이광수의 유학생 시절 일본어 작품 ‘사랑인가’부터 근대소설의 효시인 <무정>,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 쓴 ‘만영감의 죽음’을 비롯한 단편의 세계가 통일되면서 사상에서 문학으로 침잠한 인간 이광수의 면모가 드러난다. 결국 미시마 유키오가 그랬듯이 한 작가에게 글쓰기란 세계와의 관계 맺기이고 글과 인간, 시대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렇게 흘러간 책은 자신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고향인 경남 진영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까마귀와 붕어, 메뚜기, 솔개를 속이고 등에 몇 권의 책을 짊어지고 길을 떠난” 뒤 “머리에 서리가 얹힌 채 다리 절름거리며 그 의의를 찾아 헤매는” 현재에 이른다. 이 책은 지금까지 180여권의 책을 낸 김 교수의 통렬한 자기고백이다. 또한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살아온 그가 “빈 바랑을 메고 길 떠나는 군에게”(머리말) 주는 선배로서의 조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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