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이병헌은 누구인가, 그 물음의 ‘종합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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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9.14 10: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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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뉴시스 [http://www.newsis.com]

ㆍ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1인2역 열연

이병헌(42·사진)은 누구인가. TV와 스크린을 모두 점령한 슈퍼스타, 멜로, 코미디, 액션을 오가는 유연한 배우, 한류 스타 ‘뵨사마’,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한국인. 어떤 이에게 그는 끊임없이 연예면을 장식하는 ‘스캔들 메이커’로 인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1991년 대중 앞에 나선 이후 21년간, 이병헌은 다양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 많은 수식 속에 정작 배우 이병헌에 대한 조명이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병헌은 천재성으로 시대를 뒤흔드는 예술가도, 동물 같은 본능의 승부사도 아니다. 그보다는 타고난 재능을 꾸준한 노력으로 갈고 닦아 연기라는 세공품을 빚어내는 장인(匠人)형 배우에 가깝다. “저는 연기로 완벽히 그 인물이 된다는 걸 믿지 않아요. 무당도 아니고 배우는 그저 역할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방법밖엔 없어요. 몇달을 한 인물에 젖어 살고, 촬영 내내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호흡이나 제스처, 표정들이 나올 수 있는 거죠.”

13일 개봉하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에서도 이병헌은 취향과 호불호를 잠식하는 정확한 연기를 펼친다. 역사가 폭군으로 기록한 비운의 임금 광해, 왕과 닮은 외모 때문에 용상에 앉혀진 광대, 이 상반된 인물을 동시에 연기한 그는 “1인 2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장치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관객의 눈에 광해와 광대가 번갈아 보이듯 저 역시 빠른 시간에 두 인물을 오가며 연기해야 했어요. 온전하게 한 인물에만 집중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에게는 두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폭군의 이미지와 함께 백성을 소중하게 여긴 왕, 광해의 이 두 면을 영화에서는 광대 하선과 광해라는 캐릭터로 나눠 해석하니까 좀 더 수월해졌죠.”


▲ 절대 권력의 음산함부터 광대 몸짓, 소년 미소까지
21년 연기 인생 고스란히

 

<광해…>는 이병헌 연기의 종합판 같은 영화다. “끊임없는 불안감과 주변에 항상 촉이 든 살아 있는 예민함,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나른하고 축축 늘어지는 느낌을 살렸다”는 임금 광해의 모습에서는 <놈놈놈> <달콤한 인생>에서 목격한 어둠의 기사가 고개를 든다. “자, 엿드시오”라며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키득거리고, 용변을 참지 못해 허둥대는 광대 하선의 모습에는 희극배우 이병헌이 오랜만에 인사를 건넨다. “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신하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목소리에서는 지난 20년 연기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중전(한효주)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궁을 내달리는 순간엔 <번지 점프를 하다> <그 해 여름> 혹은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사랑받았던 ‘멜로의 제왕’이 부활한다. 연기 인생 첫 사극에, 가장 무거운 복식을 갖추어 입었지만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분방하게 몸을 움직인다.

 

얼굴 끝까지 닿을 듯 시원하게 퍼지는 미소와 가지런한 치아,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임에도 이병헌의 인상이 사납기보다는 다정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순전히 좋은 비율로 정리된 반듯한 이목구비 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얼굴과 크지 않은 체구, 안정적인 연기 톤과 부드러운 목소리는 한때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방송국 공채 출신의 드라마에나 적합한 탤런트’로 폄하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내일은 사랑> 같은 청춘 드라마의 환호를 안고 달려나간 영화계에서 이병헌은 매번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고 “시청률은 올리지만 관객 동원력은 없는 배우”라는 치욕적인 평가 속에 꽤 오래 충무로 벤치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런어웨이> <그들만의 세상> <지상만가> 등 쉬지 않고 찍어 내려간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세상의 편견을 의식한 듯 너무 과장되거나 너무 심각했다. 하지만 전도연과 함께 연기한 <내 마음의 풍금>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던 그가 곧 이어 날린 장외 홈런이 있었으니,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2000)였다. 송강호, 신하균, 이영애와 함께 놀라운 하모니를 만들어낸 이 영화를 통해 이병헌은 비로소 긴 충무로 울렁증에서 벗어났다. 약간은 어설프고, 적당히 장난기 있고, 정 많고, 눈물 많은 남자 이병헌이 그려낸 남한 병사 이수혁은 특별할 것 없는, 오히려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남자의 초상이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까칠하고 완벽한 실장님이나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비밀스러운 플레이보이, 비장하게 죽어가던 <달콤한 인생>의 이지적인 깡패에서, <놈놈놈>의 ‘나쁜놈’, 임무와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던 <아이리스>의 요원까지, 이병헌은 왕자나 악인, 영웅처럼 자칫 스테레오 타입화되기 쉬운 전형적인 캐릭터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위 좋게 소화해낸다.

그것은 전형적인 캐릭터 속에 이병헌만의 독특한 연기 톤을 심어 넣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현장 스태프는 이병헌을 보며 “쌈마이(3류) 이상, 니마이(2류) 이하 연기의 최고봉”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밑바닥과 상부 사이에 걸쳐 있는 캐릭터를 축조해내는 이병헌만의 기막힌 균형감에 대한 말이다. 가진 건 몸뚱아리와 순정밖에 없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의 ‘헝그리 복서’나 엉덩이를 흔들며 잔치판을 휘어잡는 <광해…>의 광대, 세상이 3류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이병헌은 조잡하게 까불대지 않는다. 대신 그의 연기 중심엔 ‘능청스러움’이 있다. 물론 이 능청을 결코 능글맞지 않게 만드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유지하고 있는 풋풋함이다. 여관방에서 긴장감에 딸꾹질을 해대던 <번지점프를 하다>의 순수한 청년, <내 마음의 풍금>의 어설픈 선생님, <그 해 여름>에서 시골아가씨에게 반해 어쩔 줄 모르던 서울 대학생까지 사랑과 인생의 초년생들이 가진 풋풋한 인상을 이병헌은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광해>에서 첫눈에 반한 중전(한효주)이 자신을 쳐다보자 부끄러움에 담장 아래 몸을 숨기는 모습에서도 잠시 그는 소년이 된다. 주저하는 듯 말을 떼고 속도감 있게 몇 마디를 늘어놓다 결국엔 끝을 조금씩 흐리는 독특한 말투 역시 풋풋함을 배가시키는데 한몫 한다. 결국 이런 능청스러움과 풋풋함을 적절하게 배합해내는 이병헌의 연기는 전형적인 캐릭터도, 어딘가 모자라는 캐릭터도 관객들이 결국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고야 만다. ‘3류 이상 2류 이하’의 캐릭터를 그 누구보다 감칠맛 나게 연기해냈던 남자. 그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1류 배우’ 이병헌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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