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고통겪는 사람에게 무조건 긍정하라는 건 치유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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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9.11 11: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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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마음치유 참여 3인 대담

 

“왜 나한테 잘해주지? 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김지은씨(26·가명)는 남자친구가 잘 대해줄 때면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김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지켜보며 “남자를 못 믿게 됐다”고 말했다. 연애는 보통 3~4개월, 길어야 1년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서울에 혼자 살게 됐는데 외로움이 더 심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사귀던 사람에게 너무 집착했어요. 헤어졌는데도 계속 매달렸어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뭘 해도 눈물이 났어요. 정말 생존을 위해 ‘힐링’(치유) 카페에서 전문 상담사에게 심리치유 상담을 시작했어요.”

아프고 힘들 때 마음치유는 그들 곁에 있었다. 김씨는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젠 “남자친구가 잘해주면 그냥 감사하게 받는다”고도 했다.

동국대 평생교육원 ‘마음치유사’ 1기 수강생인 윤정빈씨(51)와 권영란씨(49)도 ‘힐링’ 덕분에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졌다”는 경우다.

윤씨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8년간 우울증을 앓았고, 권씨는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아 수년간 병수발을 들며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고통을 겪고 나서 마음치유를 찾게 됐다.

세 사람이 김씨가 상담을 받고 있는 서울 합정동 심리치유카페 ‘멘토’에 모였다. 이들은 “마음치유란 고통의 본질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라며 “무조건적 긍정은 마음치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0대 김지은씨
“긍정만 하고는 못 살죠… 때론 부정도 인정하고 고통의 본질 들여다봐야”

▲ 40대 권영란씨
“남편 암 진단에 절망, 나와의 소통으로 극복… 이게 치유 핵심 아닐까”

▲ 50대 윤정빈씨
“남편 사업실패로 우울증… 내 감정 자각하고부터 마음 편해지고 여유도”

 

■ 나는 왜 마음치유를 찾았나

윤정빈(이하 윤) = 주위에서 ‘너 같은 사람 없다’고 인정할 정도로 가족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일도 접고 친구들도 잘 안 만났어요. 그런데 남편이 2002년에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잘 안됐어요. 우등생이던 딸은 대학에 떨어졌고요. 남편과 자식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결과가 이건가 싶고, 8년간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정신과 상담도 소용없어서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대학 때 공부하던 불교 경전을 다시 보면서 마음치유 강좌도 듣게 됐죠.

권영란(이하 권) = 결혼 3년 만에 남편이 시한부 암 진단을 받았어요. 남편도 내가 살려야 하고, 두 아들도 내가 키워야 하고, 그렇다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았죠. 너무 힘드니 마음속에 원망이 많았어요. 그러다 남편이 완치되고 애들도 어느 정도 크니까 비로소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상처 입었을 때 주변의 위로가 힘이 됐거든요.

김지은(이하 김) = 전 굉장히 가부장적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서 여성차별을 겪었고 항상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자랐어요. 늘 ‘저 사람이 날 버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때문에 인간관계도 깊게 맺지 못했죠. 직장에 남자들이 90%인데 그들이 하는 장난 섞인 말도 여성비하로 들렸어요.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그렇게 되고, 너무나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은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정신과 상담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힐링’ 상담을 받게 됐죠.

 

■ 물질 위주 사회가 마음치유 불러

권 = 그동안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다 보니 ‘마음’은 뒤로 가 있었어요.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을 원하다 보니 자기만족이 없는 것이죠. 목표를 이뤄도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사람들이 그런 것에 한계를 느끼고 ‘정신적 만족’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김 = 맞아요. 성과 위주의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어요.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잖아요. 학생들에겐 SKY 대학, 직장인들에겐 삼성, LG 아니면 소용없다고 하니까 다들 자기 모습을 잃어가요. 제가 상담을 받은 이유 중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쟁에 대한 압박도 있었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이겨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 무조건적 긍정은 마음치유 아니다

윤 =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마음치유가 아니에요. 그런 긍정은 고통을 줘요. 제가 생각하는 긍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좋은 것은 좋다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인정해야 해요. 좋은 마음치유는 내 감정을 자각하는 것,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는 알자는 거죠.

권 = 긍정을 강조하는 건 사회가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시해서 그래요. 그런 건 수박 겉핥기식 치유예요. 저는 치유의 핵심이 ‘나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나한테도 무슨 문제가 있지 않을까’ 돌이켜 보는 거죠.

김 = 맞아요. 요즘엔 긍정도 능력이 되는 것 같아요.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은 안 좋은 것처럼 비치고, 서로 ‘내가 더 긍정적이야’ 하고 다투는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 보면 자꾸 긍정하라고 하잖아요. 사람이 절대 그렇게 못 살아요. 부정도 인정해야죠. 좋은 마음치유는 사람답게 살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예요.

 

■ 사회구조 탓할 방법도 시간도 없다

김 = 개인적 마음치유로 구조적 문제를 바꿀 순 없겠지만 힘들 때 위안을 주는 진통제가 될 순 있겠죠. 사실 자본주의 사회는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체제는 바뀔 수 없거나 바꾸려 해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하지만 구조적 문제도 버티다 보면 언젠간 바뀌겠죠. 그 과정에서 마음치유는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 = 개인의 욕심이 계속 쌓이다 보니까 이런 사회구조가 만들어진 것 아닌가요. 전 개인적 마음치유로 저마다 조금씩 욕심을 놓게 된다면 구조도 변한다고 생각해요.

권 = 외부적인 조건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전체 흐름을 바꾸진 못해요. 그걸 탓하면 ‘힐링’을 못해요. 내가 치유하면서 스스로 행복해지고, 소집단이 행복해지면서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힐링

‘힐링’(마음치유)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유럽에서 서양 의학의 한계를 벗어난 명상, 기 치료 등에 ‘힐링’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종교단체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심영섭 아트테라피센터 소장 역시 “ ‘힐링’은 심리학 교과서에도 없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존 임상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테라피, 카운슬링 등은 일반인에게 어렵거나 거리감을 주기 때문에 ‘치유’라는 의미의 ‘힐링’ 개념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심 소장은 2006년부터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힐링 시네마’ 10편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 역시 상담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결국 힐링은 전문적인 느낌이 나는 치료, 상담 등의 용어를 대중이 받아들이기 좋게 포장한 개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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