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초졸·노동자·파리 길거리 화가… 야생처럼 영화찍는 ‘이단아’… 김기덕 감독은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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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9.10 14:22:14
  • 조회: 629

 

ㆍ‘날것’ 그대로 이미지로 작품 발표 때마다 논란
ㆍ해외 평단서 열렬한 지지, 국내 영화계·언론과 갈등

 

김기덕 감독(52)은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한국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충무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던 시절 김 감독의 등장은 ‘사고’에 가까웠다. 충무로 조감독 생활과 영화아카데미에서 기본기를 연마한 봉준호, 영화광이자 평론가 출신의 박찬욱,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홍상수 감독에 대해 ‘발견’ 혹은 ‘발굴’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원류도 근본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김 감독은 한국 영화계가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감독이었다. 또한 동시대에 데뷔한 이들의 영화적 숙성도와는 달리 그의 영화는 너무나 ‘날것’이었다. 1996년 데뷔작 <악어>의 편집실에서는 “감독이 콘티(continuity·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연속성) 개념이 없어서 촬영해온 그림으로는 편집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영화를 찍는 ‘야생동물’ 같은 감독의 출현이었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경기도 일산에서 가족의 벼농사를 도우며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학업을 멈추고 15살 때부터 단추공장, 폐차장, 전자공장 등에서 일했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5년간 복무한 후 서른 살 나이에 연고도 없는 프랑스로 떠났다. “예술의 도시는 파리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라는 막연한 이유였다. 파리 남부의 캠핑장에서 텐트생활을 하며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을 유지했고 그림을 등에 짊어지고 유럽 전역을 돌며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 등을 보며 영화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었던 그는 무작정 시나리오를 써댔고 3년 후 한국으로 들어와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18번째 작품 <피에타>에 이르기까지 김 감독은 왕성한 창작력과 생산력을 보여준 성실한 감독이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감독이기도 했다. 이 ‘무학의 아웃사이더’가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 이미지는 실로 생경했다. 사회적인 약속으로서의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미지와 상징이 정면승부했다. 하지만 선도 높은 표현력과 마술적 영화세계에 대한 지지층의 반대편에는 여성 영화평론가들의 맹공이 존재했다. 심영섭, 유지나씨 등 여성 영화평론가들은 김 감독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고 평론가 주유신씨는 “김기덕의 영화는 여성에 대한 성적 테러리즘”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다. 생살을 베어 입에 문 것 같은 표현은 비릿한 불쾌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올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 이전에도 김 감독은 칸, 베를린 등 해외영화제와 평단의 지지를 열렬히 받아왔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온도는 달랐다. <나쁜 남자>가 30만 관객을 동원했던 것을 제외하면 국내 관객들의 관심은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특히 언론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해도 기자나 데스크에서 보는 시각이 강조돼서 편집이 되고… 자학적인 헤드라인을 짜깁기해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준” 언론에 대한 그의 불신은 점점 소통거부로 이어졌다. 영화 속 상징과 은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보도자료 나와 있으니 읽어보라”고 했던 불친절한 대답은 유명하다. 2005년 <활>은 개봉 전 기자 시사회 없이 바로 개봉관으로 직행했고, “앞으로 내 영화를 국내에 개봉하지 않겠다” “국내 언론과는 더 이상 인터뷰하지 않겠다”며 소통을 전면 거부하기도 했다. 2011년 <아리랑>으로 칸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도 국내 언론 앞에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피에타>는 여전히 김기덕표 영화다. 피 흘리는 닭, 꿈틀거리는 장어, 아스팔트 위의 토끼 같은 김 감독 특유의 직접적인 상징과 표현이 난무한다. 폭력과 구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도 여전하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김기덕을 짐작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토크쇼(KBS <두드림>)·예능(SBS <강심장>)에 출연해 <피에타>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김 감독은 지난 3년간 수행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홍천 사이 작은 오두막에 혼자 기거하며 외부와의 소통과 지원을 끊고 태양전지를 설치해 최소한의 전기와 물로만 생활하며 밭을 일구며 살았다. 김 감독은 “(은둔하며 지냈던) 3년의 시간은 자신을 다시 한번 단련시키는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16년 전, 충무로에 뚝 떨어진 외계인 같던 감독은 생애 첫 교신을 시도하고 있다. 8일 베니스에서는 ‘웅대한 답변’이 날아왔다. 이제 그는 국내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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