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13분마다 판결문, 하루내내 토론… 대법관·헌법재판관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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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8.31 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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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이 대거 바뀌고 있다. 지난 7월 퇴임한 대법관 4명의 후임 중 3자리가 국회임명 동의를 얻어 채워졌다. 김병화 인천지검장이 낙마한 자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다시 제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대법관 제청 실패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오히려 검찰 몫이 사라져 잘 됐다는 반응뿐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런 상황에 자신감을 얻어 최근 헌법재판관에 이진성 광주고법원장 등을 지명했다.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다가 여러번 탈락한 이 법원장은 사법연수원 10기다. 유력한 차기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꼽히는 목영준 재판관의 동기다. 그는 다음달에 퇴임한다. 양 대법원장의 인선은 헌재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법원장 몫의 헌법재판관에 헌법연구관을 거쳐 헌법에 이해가 깊은 유남석, 서기석 법원장 등을 배제한 이유를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 사이에 알게 모르게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과 재판관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단 법률상 지위는 같다. 헌재법 15조는 ‘헌법재판소장의 대우와 보수는 대법원장의 예에 따르며, 재판관은 정무직으로 하고 그 대우와 보수는 대법관의 예에 따른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같은 점을 찾기가 힘들다.

 

‘대법관’ 12인이 사는 법… 13분마다 판결문 1개 ‘중노동’

“취임식 하루만 좋고 6년 동안은 생지옥”
방에도 서열 ‘함께 이사’… 점심은 함께 ‘사건 얘기’

 

 대법관들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7~10층에 방이 있다. 층마다 3명씩 나뉘어 있다. 가장 좋은 자리는 가운데 방이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이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그래서 대법관들이 퇴임하면 서열에 맞춰 이사를 한다. 지난달 10일 대법관 4명의 퇴임식 전후로 다른 대법관실에서도 짐을 쌌는데, 이런 이유다.

 대법관실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는 모두 4개다. 이 중 서쪽 2개는 대법관 전용이다. 동쪽 2개가 재판연구관(판사)과 법원행정처 심의관(판사)용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점심 시간에 서쪽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는 대법관들에게 둘러싸여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대법관들은 낮 12시25분에 3층 대법관식당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다소 늦게 하는 이유는 바로 옆 직원용 식당 때문이다. 이곳에 오는 직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한 관례다.

 식사는 오후 1시5분쯤 끝난다. 식사시간 동안 사건 얘기가 많이 오간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더러 대법원 옆 몽마르뜨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도 한다.

 대법관들은 임기 6년 동안 기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대법원은 2010년에 3만5168건을 처리했다. 대법관 1인당 2930건이다. 주말을 제외하면 하루 11건씩을 처리했다. 대법관 4명이 소부를 이뤄 합의하게 돼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한명이 처리하는 사건은 하루 44건씩이다. 하루에 10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13분마다 1개씩 판결문이 나와야 한다. 원칙대로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법원이 이런 업무량을 소화해낼 수 있는 이유는 2가지다.

 우선 최정예 재판연구관들이 있다. 대법관실 바로 위 11층에 대법원장실이 있고, 12~15층에는 공동조 재판연구관 70여명이 있다. 이름이 공동조인 이유는 어느 대법관의 일이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있다. 그리고 대법관마다 3명씩인 전속연구관이 있다. 특정 대법관과 함께하면서 사건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재판연구관은 110명 정도다.

지난해 11~12월 김능환 대법관은 두툼한 보고서를 받았다. 일제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공동연구관 검토보고서였다.

 

 A등급으로 분류된 문서는 도표와 각주를 동원해 국내외 법률과 사례를 치밀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연구관들의 토론 내용을 적고 원고 일부 승소 의견을 올렸다. 하지만 김 대법관은 재검토를 지시했고, 결국 지난 5월 원고 전부 승소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역사적인 이 판결도 재판연구관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내려지기 힘들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도움만으로 하루에 사건 44개씩을 처리하지는 못한다. 대법원 소부 재판은 대법관 4명 가운데 1명이 도맡아 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건마다 주심이 있는데, 주심이 아닌 대법관이 사전에 소부 사건을 검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연구관이 보고서와 판결문 초고를 함께 올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법원 재판에 ‘연구관 재판’ 또는 ‘주심 재판’이란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동조 재판연구관들은 엄청난 양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실력을 키워 로펌의 스카우트 표적이 된다.

아무리 연구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대법관의 업무는 대단히 많다. 대법관들은 정규 출근시간인 오전 9시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거나, 오후 6시 이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도 기록을 검토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출근한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아침 일찍 출근해 김밥을 먹고 기록을 봤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검토하던 기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다고 한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지난달 10일 퇴임을 앞두고 한 사석에서 “충분히 일했다.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든 뭐든 일은 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에는 ‘대법관은 취임식 하루만 좋고 6년 동안은 생지옥’이란 말이 당연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헌법재판관’ 9인이 사는 법… 하루내내 토론… 고성도 잦아

“생각 비슷한 판사보다 다양한 외부충원 필요”
사무실엔 초대형 책장… 북촌마을 사색 분위기

 

 지난달 19일 헌법재판소 303호 재판관회의실. 4기 헌법재판소의 마지막 평의가 열렸다. 재판관들은 오랫동안 검토해온 인터넷 실명제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마무리한 사건들은 결정문 작업을 거쳐 지난 23일 선고됐다. 이제 오는 9월 재판관 4명이 물러나고 내년 1월 이강국 소장이 퇴임하면 재판소는 5기로 바뀐다.

재판소와 대법원의 핵심적인 차이는 ‘토론’이다. 전면적이고 수평적이다. 헌재는 사건 모두를 전원합의체에서 처리한다. 대법원이 전원합의부에서 다루는 사건은 전체의 0.2% 정도에 불과하다.

재판관들의 지위도 동등하다. 이강국 소장도 결정문에 ‘재판관 이강국’이라고 적는다. 헌법상 헌재소장도 재판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재소장이 소수의견에 서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 소장은 사석에서 “소장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소수의견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대법원 판결문에는 ‘대법원장 양승태’라고 적혀 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과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법원장은 항상 다수의견에 선다.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에 서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본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임기 6년간 소수의견을 낸 적이 없다.

이런 분위기는 인사와 관련이 깊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된다. 처음부터 신세를 지는 관계라는 얘기다.

  헌법재판소는 서울 재동 북촌마을에 있다. 재판관실은 3~4층, 연구관실은 1~5층에 있다. 대법원과 달리 직급별 층구분이 없다. 대신 재판관실 입구에는 카펫이 깔려 있다.

승강기 4개 가운데 절반은 재판관용이다. 이는 대법원과 비슷하다.

재판관실도 대법관실과 규모가 비슷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재판관실에는 초대형 책장이 있다. 실제로 사건 기록보다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느 재판관은 연초에 받은 연하장을 책들 앞에 늘어놓았는데 100장은 너끈하게 올라갈 정도였다. 소형 물레방아를 가져다 놓은 재판관도 있다. 전면에 세계지도를 펼쳐놓은 재판관실도 있다. 전체적으로 사색적인 분위기다. 사무실에서는 북촌 한옥 기와나 재판소의 명물인 재동 백송이 보인다.

 

 재판관들은 목요일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둘째 목요일에는 공개변론을 하고, 넷째 목요일은 선고일이다. 한 달에 20~30건 정도 선고한다. 이를 위해 첫째와 셋째 목요일에는 재판관 평의를 연다. 하루 내내 토론이 이어진다. 토론의 강도는 고성이 오가는 경우가 많을 만큼 치열하다.

점심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한다. 감정까지 상하기 십상인 평의를 마치고는 저녁을 함께하면서 앙금을 풀기도 한다. 가끔 참석하지 않는 재판관도 있다. 대체로 일과시간 이후까지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재판관을 돕는 헌법연구관은 80명 정도다. 전속연구관과 공동연구관으로 나뉜다. 전속연구관은 접수된 사건이 헌법재판 대상이 맞는지만 검토한다. 주로 신입연구관들의 일이다. 해마다 3~4명 정도 선발하는데 올해 경쟁률은 51 대 1이었다. 업무량이 대법원에 비하면 적고, 지방근무가 없는 것이 좋은 점이다.

대신 승진제도가 없고 헌법이 전문이어서 변호사 개업도 어려운 것은 단점이다. 대체로 학구적인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상당수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의 다양성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뽑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는 않는다. 외부의 다양성 요구를 ‘업무량이 많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대법원과는 반대다. 과거 민정당 의원 출신의 한병채, 평민당 의원 출신의 조승형 재판관이 있던 시절에 새로운 시각의 의견이 많았다는 평가가 최근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법원장 출신을 포함한 여러 재판관들은 “생각이 비슷비슷한 판사 출신들이 많아서는 헌법재판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이론이나 판례는 연구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헌법재판소는 다른 생각이 부닥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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