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증오범죄는 세상을 향한 극단적 복수… 경쟁 강요 사회구조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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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8.31 12: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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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범죄심리 전문가 강덕지 - 영화감독 연상호 대담

지하철 1호선 전동차 내부와 수원 정자동 가정집, 서울 여의도 한복판까지….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증오범죄’에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평범한 이웃인 줄 알았던 이들이 흉기를 휘둘렀다. 이들이 밝힌 범행동기는 간단했다. 침을 뱉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술집에서 거스름돈 2만원을 받지 못해 화가 나서, 혼자 죽기 억울해서였다.

강덕지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61)과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의 연상호 감독(34)이 2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묻지마 범죄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묻지마 범죄는 세상을 향한 복수”라며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 강덕지
“왕따·가정폭력 경험자 트라우마에 지배당해… 약자 배려가 ‘안전망’”

▲ 연상호
“조직이 주는 스트레스 크면 클수록 ‘폭탄’ 늘어… 사회적 책임 고민해야”

 

 

- 연일 묻지마 증오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나.

 

강덕지 전 과장(이하 강덕지)=묻지마 범죄는 학술적으로 증오범죄라고 부른다. ‘반응인간’이라는 의미인데 20세기 들어 나타난 신종 범죄다. 구체적인 대상과 나의 감정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나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범죄라고 특별한 행동, 특별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으로 보면 안된다. 모든 범죄는 숨어서 하는 게 상식인데, 묻지마 범죄는 대낮에 보란 듯이 일어나기도 한다. 범죄의 원인이 사회에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복수나 처절한 응징이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이하 연상호)=한국 사회가 개인에게 어떠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많은 책임을 지운다. 사회가 책임지는 부분은 극소수다. 주변 환경이 안 좋아서 성공을 못했다고 이야기하면 ‘왜 너는 사회 탓만 하느냐’고 하지 않느냐. 요즘 올림픽이 끝나고 메달을 딴 선수들이 TV에 나와서 힘겨운 과정을 견디고 성공한 이야기를 한다. 그걸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누구는 저렇게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섰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못할까’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문제가 포함돼 있는 개인문제를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거다. 또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조직이든 개인에게 영혼을 바치기를 바라지 않나. 그러다 보니 개인의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이게 묻지마 범죄로 폭발되거나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 자신을 무너뜨리면서 사회에 복수한다는 것인가.

 

강덕지=자살과 묻지마 범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왜 우리 사회에 자살이 많으냐, 묻지마 범죄가 많으냐는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범인들은 외부 자극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리고 철저히 내성적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속으로 쌓아놓기만 하는 거다. 밥을 먹으면 대변을 봐야 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분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빼내지 못하는 거다.

 

연상호=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보면 주인공이 공개 자살을 한다. 그러면서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공개 자살을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관객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과연 이게 복수일까라고. 그런데 관객 대부분이 이해하더라. 과격한 방식으로, 그게 자신을 파괴하더라도 사회에 복수하는 주인공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더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크다는 거다.

 

 

-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있나.

 

연상호=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 계급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는데 상위계급은 연대가 쉽다. 그러나 하위계급으로 갈수록 연대하기가 힘들다. 계급사회는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다. 위로 갈수록 인원이 적어지니 이해관계도 단순하다. 하위계급은 그 반대다. 가령 상위계급인 ㄱ그룹의 인원 10명 중 3명하고만 친구가 돼야 한다고 가정할 때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위계급인 ㄴ그룹의 인원 100명 중 3명과 연대를 하려고 했을 때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하부로 갈수록 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강덕지=이들은 여리기 때문에 자기 범죄에 대한 합리화나 변명을 못한다. 여의도 사건의 범인이 흐느끼며 현장검증을 제대로 못하지 않았나. 이 엄청난 결과에 자기도 놀라고 있는 거다. 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된 대인관계를 맺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면서 대화상대가 없다는 거다. 심리상담을 해 보니 범인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왕따였거나 가정폭력을 당했다. 그때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콤플렉스로 남아 자신을 지배하는 거다. 또 신체적인 열등의식이 강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거기다 남도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할 거라고 믿고, 그렇게 분노를 만들면서 또 혼자가 되는 것이다.

 

 

-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원인 중 하나로 경쟁 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강덕지=농사지을 때 모판에서 비실비실하던 모는 논으로 옮겨도 비실하다. 모판이 건강해야 한다. 옛날에는 노래대결 프로그램에도 패자부활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떨어지면 끝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최소한 내가 실직을 하더라도 구걸하지 않고 밥은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환위기 전에는 직장에서 쫓겨날 걱정은 안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승자독식 사회가 되지 않았나. 더 이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없다.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불안으로 병들어 있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원을 건강하게 만들겠는가.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니 어떤 행동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연상호=개인이 접하는 사회나 세계가 너무 좁다.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직장인들에게는 회사가 전부다. 접할 수 있는 사회가 하나이다 보니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소할 방법이 없는 거다. 묻지마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게 군대 아닌가. 어떤 조직이 개인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강할수록 터질 수 있는 폭탄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반대로 개인이 접하는 사회가 다양해지면 각 사회에서 나는 각기 다른 인격으로, 다른 위치를 만들 수 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도 다른 모임에서 리더가 되면 그 스트레스가 상쇄될 수 있지 않겠는가.

 

 

- 검찰이 묻지마 범죄의 대책으로 내놓은 중형 구형과 보호수용제 도입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연상호=내 영화 <창>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군대 고참과 고문관 이등병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며 군대 조직이 문제의 사건을 봉합하는 과정을 담았다. 어느 날 이등병이 자살기도를 하는데, 대대장이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급하게 알아보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것도 보고를 위해서 급조한 거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내무실에 창문이 없어서 자살기도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해결책도 창문을 뚫으면 되고 그렇게 빨리 사건을 봉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도 그렇고 한국에서 스캔들 되는 사건은 다 그런 식으로 봉합되지 않나.

 

강덕지=검찰이 내놓은 대책도 필요하기는 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리가 엄격할수록 좋다. 다음 범죄를 예방한다는 상징적인 효과는 있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는 의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형량을 계산하고 하나?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때는 아무 생각을 안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만드는 게 대책이다.

 

 

- 최근의 힐링 열풍과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에도 관련성이 있을 것 같다. 묻지마 범죄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연상호=1990년대 중반부터 정보화·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브랜드라는 것이 양산됐다. 과거엔 인간이 가진 욕구가 단순했다. 생필품만 있으면 됐다. 그것을 인간이 가진 욕구 자체를 늘리며 판매할 물품을 늘린 것이다.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돈이 없고 욕구와 현실의 간극이 커지면 상처를 받게 된다. 현재 사람들이 느끼는 공허는 전쟁을 겪은 이들보다 크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힐링은 상품화된 또 하나의 욕구일 뿐이다. 상처의 원인을 냉정하게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왜 상처받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은 사회가 개인을 책임지려는 태도다. 그리고 개인이 만날 수 있는 세계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강덕지=모든 일에는 조짐이 있다. TV 프로그램이나 서점가는 그 시대 상황과 맞물려 가는 것이다. 힐링, 참선, 명상, 템플스테이 등이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묻지마 범죄를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대도시 위주로 각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를 늘려 소외된 욕구불만의 이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야기할 대상만 있었으면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교도소 수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치료를 꼭 해줘야 한다. 그들의 병든 인격을 치료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 사회의 경쟁논리를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마라톤식 경쟁을 해야 한다. 세계신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도 혼자 뛰면 그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거창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제도적 대책에만 급급할 게 아니다. 치열한 사회에서는 제도가 필요 없다. 주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신호등이 100개 있으면 뭐하나. 신호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지. 그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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