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사회칼럼] 비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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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운영자
  • 07.11.22 14: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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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서 본격적인 겨울을 예고하는 절기인 소설(小雪·23일)이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8일)을 전후해서 한낮에 더위를 느낄 정도로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이번 주 들어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서울에 첫 눈이 내려 절기 값을 톡톡히 한다. 예전엔 24절기가 농사 일정의 참고서였다. 망종(芒種) 무렵이면 씨를 뿌리고, 하지(夏至)를 전후해 모내기를 했으며 한로(寒露)무렵에 벼 수확을 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계절의 전환점인 24절기마저 뒤죽박죽이 되었다.
봄,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다. 사계절의 경계마저 무너지고 있어 환경의 빠른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지난 여름에는 장마철이 지난 뒤 오히려 많은 비가 내려 아열대기후 조짐이 나타났다. 이제는 우기와 건기로 구분해야한다는 성급한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지구온난화가 두렵다.
이맘때면 농사일도 대부분 끝나고 김장을 담그며 겨울채비를 서두른다. 김장을 담근 뒤 무청으로 시래기를 널거나 무말랭이나 호박 오가리를 만들어 널었다. 올해는 김장배추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서민들은 이래저래 살아가기가 더 팍팍해지고 가계의 주름살만 깊어진다.
아직은 가을의 끝자락이다. 낙엽비가 작은 바람결에도 우수수 내린다. 나무도 가을을 떨쳐버리고 겨울채비를 한다. 문득 낙엽을 밟고 싶어 동네에서 가까운 약수터 오솔길을 찾았다. 가을의 화사함이 사라진 자리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차분한 느낌으로 채색된다.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걸으니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참나무 밑 둥에서 도토리를 갉아먹던 다람쥐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의 계절이면 늘 떠오르는 구르몽의 시구에 새록새록 정감이 묻어난다. ‘바람이 몸에 스민다’는 이 맘 때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허전하게 시려오기 마련이다. 낙엽을 태우며 ‘잘 익은 커피 냄새가 난다’는 이효석의 순도 높은 상상력도 잘 볶은 원두커피의 향기로 가슴에 스며든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김광균 시인은 쓸모 없는 낙엽의 허무를 노래했지만 낙엽의 생애는 희생적이다. 나무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초록으로 빛나던 봄, 짙푸른 엽록소로 나무를 살찌우던 윤기 흐르던 여름, 온 몸을 활활 불태우며 아름다움을 채색하던 가을의 기억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돌아가고 해야 할 때와 해야 할 역할을 안다. 낙엽의 희생은 부엽토로 산화하여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준비한다.
낙엽 길을 걸으니 비우기 보다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날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옷 벗는 겨울나무들처럼 세속적인 허욕뿐 아니라 어줍잖은 잡동사니 지식들마저 모두 떨쳐버리고 싶다. 비움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채우려는 관성이 더 강하니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비움에서 채움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여백의 예술이듯이, 우리들의 삶도 채우기 보다 비움의 미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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