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치킨집 열면 대박 터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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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7.17 14:50:58
  • 조회: 11985

 

가맹점 교육담당자 창신동에 직접 창업
몇 집 건너 또 치킨집… 하루 20마리밖에 못 팔아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유명 치킨점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주들에게 마케팅을 강의해온 터였다. 자리만 깔면 돈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창업교육장에서의 얘기였다. 실제는 전혀 달랐다. 자영업의 현장은 ‘벼랑 끝’이었다. 이웃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이민규씨. 33세 총각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교육을 담당했다. 주로 강조했던 건 마케팅 비법과 업종의 경쟁력이다. 그는 교육장에서 초벌구이를 미리 해 진열대에 내놓으라고 줄곧 강조했다. “손님들이 가게 진열대의 치킨을 보면 사지 않고 못 배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늘 주문이 폭주하는 상황만 가정했다. “치킨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잠깐 생겼다가 마는 여느 아이템과는 다르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믿었다. 직접 가게를 열어도 되겠다 싶었다. 월 200만원 정도였던 급여도 성에 차지 않았다. 전문대 졸업장만으로는 마음에 드는 일자리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젊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라는 아버지에게 “월급쟁이보다 나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며 회사를 나왔다.


평소 서울 종로구 창신동 상권을 눈여겨봤다. 우선 유동인구가 많았다. 창신동 아파트 주민들과 봉제공장 사람들은 퇴근길에 치킨과 맥주 한잔을 빠뜨리지 않는다. 맛이라면 물론 자신 있다. 결론은 났다. 창신동에 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개점행사 등으로 괜찮은 듯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엇보다 경기침체의 악영향을 간과했다. 서민 장사는 경기가 나빠지면 손님이 확 줄어든다. 요즘은 주말에도 밤 11시면 거리가 조용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킨집은 점점 늘어났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치킨집만 4군데가 더 생겼다. 이씨는 이웃 경쟁자 10곳까지는 기억하지만 이제 더 세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느낄 정도라고 했다.

치킨집은 ‘손님 나눠먹기’ 장사다. 치킨집이 급증하다보니 버틸 재간이 없다. 이씨는 최근 하루 판매량 20마리 정도를 기록하는 일을 심심찮게 경험한다. 기존의 평일 판매량인 30~40마리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이다. 홀에는 자정 전 손님이 끊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날엔 새벽 2시에 셔터를 내린다.

이씨는 “치킨과 맥주를 주력으로 하는 터라, 겨울엔 매출이 반으로 줄어든다”며 “여름에 팔아 겨울을 나야 하는 구조인데 이런 식이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맞은편 치킨집을 지켜보곤 한다. 주변엔 장사가 잘되는 치킨집이 없어 보였다. 맞은편 가게도 평소보다 1시간 이른 밤 11시에 문을 닫는 일이 잦아졌다.

판매량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가파르게 오른다. 도매가 2500원 하던 8호짜리 생닭 한 마리는 1000원 이상 올랐다. 2만8000원이던 18ℓ 식용유 한 통은 3만8000원이 됐다. 치킨 한 마리 판매가격은 작년이나 올해나 여전히 8000원이다. 가뜩이나 매상이 줄어드는 판에 혼자 가격을 올릴 수는 없었다. 올해 들어선 아르바이트생도 그만두도록 했다. 그런데도 월세 180만원과 전기·가스료 50만~60만원을 제하면 월 200만원 가져가기가 빠듯하다. 주 5일 근무하며 박봉을 탓하던 치킨점 본사 월급과 비슷해진 셈이다. 오히려 창업 후 하루 12시간 근무에 휴일마저 없어졌다. 이씨는 지난해 총 닷새 쉬었다. 그는 “놀 시간이 없으니 돈을 덜 쓴다는 점이 위안거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손님 수는 뻔한데 여러 치킨집이 달려드니 모두들 배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씨는 두 달 전부터 삼선동, 황학동, 종로 5~6가까지 배달을 다닌다. 그 동네 치킨집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 멀리 제기동에서 창신동으로 배달오는 치킨집도 있다. 이제는 동네 간 영역까지 넘어 수많은 치킨집이 경쟁을 하는 꼴이 됐다.

이씨를 취재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인근 쌍용아파트에 치킨 두 마리를 배달해달라는 주문전화였다. 그는 배달길에 습관처럼 옆집 가게를 쳐다본다. 얼마나 팔았을까. 진열대에 놓인 치킨 마릿수를 훑는다. 20마리 안팎. 자신과 차이가 없다.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씨가 창신동에 가게를 연 뒤에도 치킨집 두어 곳이 문을 닫았다. 다음번이 ‘내 차례’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씨의 올해 목표는 ‘대박’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는 “문 닫지 않고 살아남으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말로 최근의 상황을 자위한다. “결혼요? 지금 농담하세요?” 그는 ‘버티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 자신도 궁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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