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노인 전용 ‘서대문아트홀’ 호텔 신축으로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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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7.13 11: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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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옛 화양극장… 48년 자리지켜


ㆍ마지막 상영날 찾은 노인들“우리 같은 사람들 어디 가나”

11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역 8번 출구 앞. 한 노인은 긴 우산을 들고 극장 앞에 섰다. 건물이 낡았지만 극장 입구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1층으로 올라가면 벽 한쪽에 걸린 할리우드 배우들의 젊은 시절 사진들도 보였다. 이 벽을 지나는 노인의 발걸음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650석)인 서대문아트홀(옛 화양극장)이 이날 문을 닫았다. 1964년 ‘화양극장’으로 개관한 지 48년 만이다. 이곳은 1980년대 인기 홍콩영화 <영웅본색> <천녀유혼>을 상영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천녀유혼>의 주연배우 왕쭈셴(王祖賢)과 장궈룽(張國榮)이 이곳에서 직접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1990년대 복합상영관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은 화양극장은 1998년 시사회 전용극장인 ‘드림시네마’로 이름을 바꿨다. 2007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재개발이 취소되면서 살아남아 2009년 ‘서대문아트홀’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이 ‘청춘극장’으로서 거듭난 건 2010년이다. 소일거리가 별로 없는 노인들을 상대로 영화 한편에 2000원을 받는 노인 전용극장으로 변신했다. 하루 2회 상영 기준으로 300~500명의 노인이 다녀갔다.

그러나 지난해 건물주가 관광호텔 건축계획을 내놓고 서울시가 수용하면서 극장은 결국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날 오전 영화를 보러 온 송등용씨(66)는 “마지막이라 섭섭하다”고 했다. 그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오갈 데가 많지 않다”며 “여기는 휴식 공간이 잘돼 있어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친구들과 얘기도 나눴다”고 했다. 송씨는 “수입이 많지 않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기서 점심 먹고 영화보고 7000원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극장에서 일주일에 2~3편씩의 영화를 봤다는 김학분씨(65)는 “이 극장에서 <로마의 휴일> <무기여 잘 있거라>를 다 봤다. 제임스 딘 같은 고인이 된 배우를 보러 청춘극장을 자주 왔다”며 “영화를 좋아했는데 아쉽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 상영작은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가난 앞에서 자전거 도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피폐한 현실을 담담하게 고발한 영화다.

지난 3년간 극장을 운영한 ‘서대문아트홀’ 측은 이날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서대문아트홀의 김은주 대표(38)는 오후 12시30분쯤 극장에서 ‘삭발식’을 했다. “어르신들의 문화를 지켜달라”고 호소해온 그였다.

김 대표는 “어르신들이 이 문화를 소망한 것에 내가 부응하지 못해서 아쉽다”며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너무 힘든데 지켜내기도 너무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구에 있는 ‘허리우드극장’도 실버전용극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후 2시30분 영화가 끝났다. 이날 하루 오전과 오후에 걸쳐 500여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에휴 마지막이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를 들고 영화관 곳곳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굿바이네 굿바이!” “진짜 마지막이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우진씨(70)는 “재개발, 호텔도 필요하지만 이런 곳도 필요하다는 걸 서울시에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극장을 나서며 관객들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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