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놀이조차 등수 매기는 사회, 1등 외엔 모두 열등감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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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7.06 14: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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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참여한 청소년들

 

경향신문과 ‘고래가그랬어 교육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기성세대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지’라며 아이를 경쟁 속으로 밀어넣었던 어른들이 한 번 멈춰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기획이었다.

그런데 이 약속에 ‘아이들’까지도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경쟁 만능의 교육에서 질식하고 있거나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는 이들이 지난달 24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틀에 짜인 듯한 교육현실의 한복판에 갇혀 있는 답답함과 이 같은 교육현실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경향신문 정환보 기자가 이날 대화를 이끌었다.

 

▲ 김연우 “학교… 학원… 매일 반복, 선생님들도 성적만 관심”
▲ 박소정 “‘너희 때는 다 그래’란 말 행복과 멀어지는 길이죠”
▲ 하나래 “‘지금 행복해야 …’ 공감 부모님부터 실천했으면”

 

- 요즘 어떻게들 생활하고 있는지부터 들어볼까요.

강병진 = 저는 고3이라 수업을 마치면 학교 도서관이나 집에서 자습이나 동영상 강의 듣는 것을 반복합니다. 거의 매일 새벽 1시30분까지는 공부를 하는데 그렇게 한 달 정도 하다보면 머리가 텅비는 느낌입니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되는 것 같아요.

김연우 = 매일 아침 7시4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요. 집에 도착하면 11시쯤 되고요. 아주 잠깐 텔레비전을 보거나 뭘 먹거나 하면 하루가 끝나요.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원래 뭘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나상인 = 저는 아직 중학생이고 사교육을 하지 않아서 시간은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제가 사춘기라서 그런지 공부가 너무 귀찮고 안 하고 싶어요(웃음). 공부하고픈 욕망이 있긴 한데 책상에만 앉으면 막상 싫어집니다.

조은혜 = 아르바이트를 하는 금요일과 토요일 말고는 늦게 일어나고 싶으면 늦게 일어나고, 여행가고 싶으면 가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압박이 스트레스가 돼요.

박소정 = 저는 꿈을 일찍 찾은 경우예요. 교사인 엄마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선뜻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학교를 나왔고 요리가 좋아서 ‘영셰프’라는 일종의 교육프로그램을 받고 있어요. 보통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나가 요리 배우고 실습하고 주말에도 행사 나가고 집에 돌아오면 무척 피곤하죠.

- 학교를 안 다니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다들 바쁘네요. 7가지 약속의 어떤 점에 특히 공감을 했나요.

강병진 = ‘성적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것과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성공’이라는 두 항목이죠. 전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기업에 취직할 수 있고 그래야 성공이라고 말하는 게 인간을 상품화, 서열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대학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해 학생들 인권을 무시하는 거잖아요. 실제론 하고 싶은 일 자체가 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있다 해도 의사, 변호사같이 가식적인 대답뿐이고 자신의 미래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상인 =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와닿았는데 대부분의 10대 청소년들이 학교는 물론 학원 공부에 매달려서 행복없이 살지 않을까요. 어릴 때 상처를 입는다면 어른이 돼서도 행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해요. 또 커서 행복한 게 어릴 때의 행복보다 가치가 높지도 않은데 지금 행복해야 미래에 행복할 확률도 더 높을 것 같아요.

김연우 = 저는 ‘대학은 선택일 뿐’이라는 것에 크게 공감해서 서명을 하게 됐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만 하면 성공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것 같아요. 공부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것처럼. 그런데 사회에 나가서 하는 일이 공부만은 아니잖아요. 대학에 가는 것도 그렇고 너무 한가지 방향으로만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조은혜 = 그렇지만 간단하게 대학을 거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몰랐는데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력서를 받을 때부터 대학교 졸업자, 전문대학 나온 사람, 고졸자 등으로 사람을 나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학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돼 있는 것이죠.

하나래 = 전 초등학교 1학년 이후 줄곧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보통 대안학교 다닌다고 하면 ‘너넨 참 좋겠다. 교복도 없고 부모님도 좋지?’라는 식의 말을 듣곤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물론 시험 스트레스 없는 건 굉장히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17~18살 되니 주위에서 ‘대학은 그래도 가야지’라는 압박이 들어와요. 갑자기 검정고시나 수능 준비한다며 안 나오는 아이들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대안학교라고 대학입시에서 예외는 아닌 것 같아요.

- 주변 친구들이나 학교 안팎의 생활은 어떤가요.

김연우 =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공부만 해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자신의 적성을 찾아야 하는데, 그건 못하고 공부만 하면 성공하는 줄 아는 거 같아요. 전학가면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그 자리를 메울까봐 ‘너는 전학가지마’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하지만 그게 장난으로 보이지 않아요. (밑에) 깔려주는 애가 있어야 자기가 밟고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들이죠.

강병진 =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3년간 실제 실험을 한 기억이 두 번밖에 없어요. 글로만 배우는 게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진 않지만, 친구들 사이에도 내신 때문에 서로 등급을 비교하고 그렇게 되거든요. 점점 이기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나상인 = 고등학생보다는 적을 것 같지만 중학생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워낙 경쟁 위주의 학교 안에서 살다보니까 매번 1등을 하지 않는 이상 자기보다 성적 좋은 학생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우 = 선생님들이 아이들 인성보다 성적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시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도서실 선생님이 좋았는데, 수업시간에 배우는 거 말고 다른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 제도권 학교에서 벗어나 있는 친구들의 상황은 조금 다른가요.

하나래 = 대안학교도 다양한데요. 초등학교 때 다녔던 대안학교에서 돈이 주제였는데 돈에 관한 시를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수업이 진행됐거든요. 체험 위주로 진행한 수업들이 즐거웠던 게 기억납니다.

조은혜 = 제가 다닌 대안학교에는 선생님을 길잡이라고 불러요. 열 살 많은 친구들이라 여기고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는 게 제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조은혜 = 왜 우리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을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거기에 제일 큰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대학을 안 나와도 가끔 여행도 가고, 데이트도 하고 영화도 볼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래 = 부모님부터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항목을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살리는 약속도 중요하지만 자식을 본인의 아바타쯤으로 생각하면서 ‘탄탄대로를 가야 네가 행복해진다’는 말을 하는 부모님들이 많잖아요. 이 말이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텐데 어른들부터 살려야 아이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정 = 부모님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너희들 때는 다 그런 거니까 기다려’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건 행복과 멀어지는 길이지 않나요.

나상인 = 열정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좋은 대학, 스펙을 쌓을 필요가 굳이 없을 것 같거든요. 틀에 짜인 거를 강요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할 테니 그냥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김연우 = 자식을 위해서라도 공부만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해 주어야지요. 공부도 학과 공부 하나만 있는 게 아닐 텐데, 학과 공부만 강요하고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그런 현실을 변화시킬 책임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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