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발레리나 강수진 “K팝만큼 ‘발레 한류’도 가능… 제 모든 것 바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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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6.13 14: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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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레이디’로 한국 무대서 4년 만의 전막공연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수진을 만난 지난 6일 아침, 서울 남산의 햇살은 유난히 투명하고 싱그러웠다.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 원피스 차림에 흑단같이 검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의 동양적 분위기가 한층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오는 15~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까멜리아 레이디>에서 비운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를 연기한다.

한국 무대에서의 전막공연은 4년 만이고 <까멜리아 레이디>는 2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2002년 공연 이후 10년 만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원작소설을 쇼팽의 멜로디로 풀어낸 이 작품은 1999년 강수진에게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제 마흔다섯, 발레리나라면 은퇴설이 오가도 남을 나이다. “전막으로 펼쳐지는 <까멜리아 레이디> 한국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또렷이 들린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예의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그의 표정이 나왔다.

 

- 고급 창녀인 마르그리트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떠난 후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이야기인데요. 실제 절절한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예술가들은 자기도 몰랐던 풍부한 감정들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요. 그걸 작품을 통해 끄집어낼 줄 알죠. 1997년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처음 했을 때예요. 이전까지만 해도 저 스스로 희극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를 하다보니, 제 안에도 코믹한 기질이 있더라고요. 섹시한 악녀 역을 맡았을 때도 그랬고요. 참 신기해요. 살아오면서 저와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은 남자는 남편뿐이에요. 그러니 비극적 사랑의 경험은 없었죠. 음… 짝사랑은 해봤어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다니던 열일곱살 때였는데, 외로움이 컸던 때라 따뜻하게 대해준 프랑스 남자애가 좋았어요. 수줍음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는데 눈치챈 그 애가 제게 오더니 그러더라고요. ‘나도 너 좋아해. 근데 난 게이야.’(웃음)”

그는 현재 국제무용계에서 최고령 발레리나다. 한국팬들이 가장 궁금한 건 그의 은퇴 시점이다. 그리고 은퇴 후 귀국해 한국 발레를 위해 일할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남아 예술감독이나 지도자가 될지도 관심사다. 사실 마흔이 넘도록 은퇴하지 않은 무용수는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발레단 시스템이 그런 데다가 무용수 스스로도 신체적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저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어요. 젊었을 땐 마흔살을 못 넘기고 그만둘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마흔이 넘으니까 예전보다 발레를 더 즐기게 되더라고요. 제 몸을 어떻게 조절해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지 요령도 생겼고요. 은퇴는 언젠가 하겠지만 중요한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즐기면서 연습하고 공연한다는 사실이에요. 제게 중요한 건 언제나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늘’이거든요. 매일 열심히 사는 게 제 삶의 철학이고 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은퇴는 제게 특별하지 않아요. 해보고 싶은 모든 배역도 다 해봤고요. 사실 제 꿈은 굉장히 작은 것들이에요. 어릴 때 꿈은 무대에 서서 무용을 하는 것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랑까지 받게 됐어요. 지금은 저나 남편이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보내는 거예요. 그걸 실천해서 하루를 잘 살면 제 꿈이 이뤄진 거죠.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은 건 마흔이 넘어서예요. 어려선 뭘 모르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았던 거고요.”

 

- 작은 꿈을 위한 실천, 그게 말처럼 쉬울 거 같진 않은데요.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 자신을 밀어붙이죠.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기 때문에 자칫 꾀를 부릴 수 있거든요. 보통 아침 5시30분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는데 커피를 마신 후 남편이 강아지 부부인 킹콩과 캔디를 산책시키러 나가면 1시간30분가량 개인연습을 해요. 그러곤 극장에 가서 연습을 하죠. 저녁에 공연이 있으면 보통 밤 11시에 퇴근해요. 스케줄이 빡빡한 데다 늘 관절이 시큰거려요. 하지만 무대 뒤의 이런 고통은 무대 위에서의 단 한번의 공연으로 싹 잊어버리죠. 그만큼 공연에서 얻는 희열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해봤을 텐데….

“물론이죠. 후배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것이고, 한국 발레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의무감도 느끼고요. 몇 년 전부턴 한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요. 남편도 한국을 좋아해요. 또 제2의 고향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도 도움을 요청받았어요. 여러 개의 문 중 뭘 선택할지는 은퇴 시점에 결정하기로 했어요. 전 아직 무용수니까요.”

강수진은 선화예중 시절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 마리카 베소브라소바에게 픽업돼 열다섯살이던 예고 1학년 때 유학을 떠났다.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뒤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였다. 그리고 1993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주역 데뷔했다.

올해로 해외생활 30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몸담은 지는 26년째다. 이 발레단의 유일한 ‘종신단원’이기도 하다. 2007년 독일 정부는 그를 ‘카머텐처린(궁중무용수)’으로 등극시켰다. 이 상은 정부가 노후까지 보장해준다. 지독한 연습 벌레가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들이다. 그는 2000년 다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의료진은 “다시는 토슈즈를 신을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2년 만에 보란듯이 이겨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고비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요즘 한국 무용수들의 콩쿠르 수상과 해외 주요 발레단 진출이 늘고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해외 투어 공연이 잇따르면서 발레 한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한국 발레나 무용수에 대한 유럽의 평가는 어떤가요.

“여러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자주 참석하는데, 한국 무용수들의 신체 조건과 기량이 놀랍도록 좋아졌어요. 그래서 유럽의 전문가들도 한국 발레의 수준을 굉장히 높게 보죠. 정말 자랑스럽고 기특해요. 국내 발레단의 해외 투어 공연도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글로벌 시대잖아요. 이 추세로 계속 발전하면 K팝만큼의 발레 한류도 가능하다고 봐요.”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는 2004년 입단한 강효정씨도 수석 무용수로 있잖아요. 이번 <까멜리아 레이디>에도 마르그리트가 좋아하는 공연의 주인공 마농 역할로 출연하죠. 평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효정이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용기를 북돋아준 것 외에는 특별히 도움 준 거 없어요. 예술뿐 아니라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잖아요. 어떤 무용수든지 홀로 견뎌내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발레도 공부와 똑같이 예습, 복습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또 전 세계적으로 테크닉은 다 좋아졌으니 무엇보다 자기 개성을 살려야 살아남는다는 점도요. 잘하는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누가 제 것과 같은 것이 있으면 제 것을 버렸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발레단 선배에서 8년 만에 연인, 그리고 그로부터 7년 만에 남편으로 발전한 터키 태생의 툰치 소크멘(52)의 이야기를 했다. 벌써 10년차 부부임에도 그의 말속에는 사랑이 차고 넘쳤다. 조심스럽게 2세 계획에 대해 물었다.

“서른살 무렵엔 아기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컸고 남편과 노력도 많이 했어요. 때가 아니었는지 안되길래 ‘에라 모르겠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말았죠. 그러다가 강아지들과 고양이를 키웠는데 신기하게 2세에 대한 압박감이 사라지더라고요. 먹고 싸고 자고 사랑하는 주인만 있으면 행복해하는 동물의 단순한 삶을 지켜보면서 우리 부부는 많은 걸 배워요. 생각이 많은 인간은 그 생각들로 인해 스스로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잖아요. 머리가 복잡해지면 전 습관적으로 ‘단순하게’를 반복적으로 되뇌요.”

그는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했다. 지혜로움, 그로 인해 생긴 삶을 바라보는 여유 있는 시선이야말로 세월이 주는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이 내린 발레리나’ 강수진, 그의 당당한 나이듦에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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