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잘나가는 뮤지컬은 그녀의 옷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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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3.09 1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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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관객 사로잡는 무대의상 디자이너 한정임

 

“무대의상이 기성복과 가장 다른 점은 등장인물의 희로애락을 의상에 담을 수 있다는 거예요. 관객들을 해당 인물과 이야기에 몰입케 해 감동을 증폭시키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흥망과 더불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황후 엘리자벳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엘리자벳>이 흥행 중이다. 인기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시대상을 반영한 400여벌에 달하는 화려한 의상. 특히 외모 치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엘리자벳의 의상을 재현한 다양한 드레스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100여년 전 인물들을 의상을 통해 생생하게 무대 위로 불러내는 이가 있다. 한정임씨(44). 요즘 뮤지컬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다. <삼총사> <살인마 잭>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키스 미 케이트> <피맛골 연가> 등 최근 몇 년 동안 공연된 중세·근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에는 거의 어김없이 그의 손길이 닿았다. 지난 2월29일 <엘리자벳>이 공연 중인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한씨를 만났다. 그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극은 시대와 인물에 대한 연구가 필수”라며 “엘리자벳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일본 도서관을 뒤져 자료를 찾았다”고 말했다.
“저는 엘리자벳의 의상에 당대에 유행한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했어요. 엘리자벳이 황후가 되기까지 과정과 그녀가 시어머니인 소피와 대립한 이유, 또 아들 루돌프 자살 후 검정 드레스만 입은 사연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폈지요. 그래야만 해당 인물들의 내면을 옷을 통해 표현할 수 있거든요.”

한씨가 의상에 눈을 뜬 건 중학생 때. 우연히 본 일본 패션잡지에서 고정관념을 깬 의상들을 접하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모자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삼촌을 졸라 원단을 얻었다. 잡지에 설명된 대로 옷을 디자인하고 재단했다. 고교 졸업 때까지 원피스와 볼레로, 손토시, 가방 등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게 취미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의 2년제 대학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1990년 일본 최고의 패션스쿨인 일본문화패션칼리지에 입학했다. 4년간 수학하면서 이탈리아 코모 주최 패션콘테스트 등 유수 패션대회에 참가해 입상했다. 1998년 일본 패션기업인 아이아컴퍼니에 입사해 수석디자이너까지 올랐다.

뮤지컬과의 인연은 2006년 출장차 한국에 왔다가 본 뮤지컬 <드라큘라>가 계기가 됐다. 그는 “무대의상에는 스토리가 스며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2007년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로 날아가 <오페라의 유령> 등 세계적 뮤지컬들을 섭렵했다. 공연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보면서 무대의상 디자이너로서 새삶을 시작하겠다는 자신의 결단이 옳았음을 재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자료 조사 후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본격 작업에 필요한 기간은 보통 3개월이다. 장면별 의상 콘셉트 짜기부터 시작해 디자인, 공장 지시서 작성, 원단 준비, 가봉과 재단을 거쳐 각종 디테일을 넣는 손작업까지 하면 한 벌의 옷이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는 팀워크다. 콘셉트를 짤 때부터 연출자와 수시로 논의하는 것은 기본이고, 조명이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스태프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조명이나 메이크업에 따라 의상이 돋보일 수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열정을 담아 만든 옷을 배우가 입고 맡은 배역을 120% 표현해냈을 때, 관객들이 그 캐릭터와 작품에 감동받았을 때 무대의상 디자이너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이지나씨 연출의 신작 <락카지오폴>을 비롯해 <루돌프> <투란도트>의 의상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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