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필름, 이젠 향수다… 디지털 물결 앞에 코닥 결국 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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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1.27 12: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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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개봉 앞둔 충무로 영화 중 필름 작품은 ‘코리아’ 한 편뿐

 

필름(FILM). 그것은 꿈의 기록지였고, 자전거에 실려 온 ‘시네마 천국’으로의 초대장이었다. 영화는 곧 필름이었고 필름은 곧 영화였다. 물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지난 19일 이스트만 코닥(이하 코닥)은 미국 연방 파산법 제11장에 따라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된 디지털의 맹공에 132년 역사를 가진 필름회사 코닥이 마침내 백기를 든 것이다. 코닥의 붕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몰락을 넘어 ‘필름 시대의 종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2012년 현재 충무로에서 촬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 가운데 배두나, 하지원 주연의 <코리아>를 제외하고 필름을 사용한 작품은 거의 드물다. 레드(RED)사가 영화 촬영을 위한 본격적인 디지털 카메라 ‘레드 원’(RED ONE)에 이어 ‘에픽’(EPIC) ‘스칼렛’(SCARLET)을 차례로 내놓고, 독일 아리(ARRI)사의 D20/D21이 알렉사(ALEXA)로 진화하면서 디지털 카메라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필름 특유의 감, 소위 ‘필름룩’을 근사치까지 따라잡았다. 결국 현재 필름을 촬영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기술의 우월성보다는 필름에 대한 미학적 선호나 여전히 디지털이 잡아내지 못하는 특정 톤을 위한 선택이 대부분이다.

올해 3월 개봉을 앞둔 <건축학 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필름은 이제 향수다”라고 말한다. 이용주 감독은 데뷔작 <불신지옥>을 아리사의 D21로 촬영했고 <건축학 개론>은 알렉사로 촬영했다. 이 감독은 “현재 영화 촬영에서 필름의 메리트(장점)는 더 이상 없다고 본다. 필름이 미디어로서 더 우월한 시대는 갔다. 그저 디지털이 흉내낼 수 없는 필름룩이 있듯이, 필름이 흉내낼 수 없는 디지털룩이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창작자들의 고민이 필름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라 디지털의 기능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필름이 영화의 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4분 정도를 담을 수 있는 400피트 필름 한 통이 대략 30만~40만원, 즉 배우가 여러 번 NG를 낸다는 것은 제작비를 실시간으로 까먹는 행위였다. 1990년대 초반 영화 한 편당 사용된 필름은 10만피트, 2000년대 들어서면서 평균 30만피트 정도가 소비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특수본> 등의 강승기 촬영 감독은 “고가의 필름을 사용하던 예전 현장에서는 촬영 전 수많은 리허설이 선행됐다. 하지만 디지털 촬영이 일반화된 최근엔 꼼꼼한 사전 콘티 작업보다는 현장의 즉흥성에 기대는 부분이 많아졌다. 일단 카메라를 돌려 찍어보는 ‘슛 테스트’라는 것이 생기면서 리허설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전한다. “필름처럼 돈이 드는 게 아니니까 일단 머리, 다리, 풀 샷, 다 찍어 놓고 보자는 식도 많다. 만약 현재 한 편의 영화에 소비되는 데이터의 양을 필름으로 환산한다면 예전의 10배는 될 것”이라며 “디지털의 자유가 가져온 방만함”을 지적했다.

한편 오는 3월 체코 프라하에서 크랭크인하는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설국열차>는 한국 송강호, 일본 가가와 데루유키, 영국 틸다 스윈턴, 미국 크리스 에번스 등 국제적 배우의 라인업 외에도 디지털이 아닌 35㎜ 필름을 선택한 것으로 관심을 끈다. <설국열차>를 공동 제작하는 오퍼스픽쳐스의 이태헌 대표는 “미래가 배경인 SF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질감을 구현하길 바라는 봉준호 감독의 의지였다”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필름을 선택하는 것이 제작비 상승 요인이라고 보겠지만 오히려 연출자의 작업 숙련도, 현장 진행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느냐”며 봉 감독이 필름을 선택한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또한 “물론 필름은 까다롭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볼 때는 필름만의 고유한 특성을 잃는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필름 작업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름 촬영과 비교해 대략 30%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디지털을 반길 수밖에 없다”는 심 대표의 말처럼 “기동력, 실험성 측면에서도 훨씬 유용하고 효율적인 방식이 분명”한 디지털 촬영은 이제 거부하기 힘든 물결이다.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표준화 논의가 촉발됐던 2004년 말, 전 세계 12만여개 스크린 가운데 디지털 영사 장비 도입률은 고작 0.5%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대한민국 극장의 디지털 상영관은 전체 상영관의 50%가량이다. 필름 상영관 역시 디지털 영사 장비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거의 전관에서 디지털 상영이 가능한 상태다. 1999년 조지 루커스가 디지털을 통한 전 세계 배급 상영을 선언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협> 이후 10여년간 영화 제작과 배급에 있어 디지털화는 가속도를 밟으며 진행되었다. 디지털 상영으로 프린트 비용을 현저히 줄였고, ‘산업공해’로까지 불렸던 셀룰로이드 필름은 극장에서 분리수거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디지털은 영화의 ‘대안’이 아니라 ‘개명(改名)’이다. 지난 100년간 어김없이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했던 선명한 코닥 로고는 이제는 영화의 시대를 구분짓는 표식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이끈 영화의 탄생을 목도 하지 못했다. 대신 2012년 1월19일, 코마(의식불명) 상태로 연명하던 필름 산업이 마침내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 날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자투리 필름을 엮어낸 키스신을 보며 울던 토토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필름과 함께한 유년의 기억을 가진 영화 역시 그렇다. 안녕, 알프레도 아저씨. 이제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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