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주부 조윤미씨 “육아 걱정 덜었으면” 50대 김영주씨 “아들 공부 잘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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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2.01.02 17: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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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 선술집 풍경

 

“서운했던 거 다 말해보자.” “결혼하고 ‘민서 엄마’로는 여행을 가 봤지만 ‘개인 조윤미’로서는 여행을 한번도 못 가봤어. 회사 동료들과 부산으로 새해 여행 떠나면 안될까?” 조윤미씨(35)가 갑작스럽게 여행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 김경태씨(38)는 몹시 당황해하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남편 친구 김문배씨(39)도 “부인 말이 맞다”며 거들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8시30분 서울 동작구의 ‘상도 실내포장마차’. 테이블 3곳에서 7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5살 먹은 딸 민서를 둔 결혼 7년차 김경태씨 부부는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가족이 상도동 본가를 찾았다가 포장마차에 들른 터였다.

 

부인 조씨는 새해 고민 겸 소망으로 육아 문제를 꼽았다. 2011년 조씨의 출근길은 전쟁 같았다. 오전 8시,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가슴을 졸여야 했다. 직장을 옮긴 지 얼마 안돼 상사들 눈치가 더 보였다.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딸아이한테 동생이 있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둘째가 생기면 여러 가지로 빠듯해질 것 같아요. 직장일도 잘하고 싶어서 고민돼요.” 아내의 고민을 듣고 있던 남편은 멋쩍게 “새해에는 좀 더 대화하고 살자”며 건배를 제안했다.

남편 친구 김문배씨의 새해 소망은 ‘결혼’이었다. 그는 김경태씨 부부를 부러운 듯 바라보더니 “사는 모습이 예쁘다. 새해엔 꼭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후 9시. 옆자리에 앉은 사업가 김영주씨(53)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함께 온 동료가 만취한 터라 김영주씨도 술잔을 들고 김경태씨 부부 자리로 옮겨 앉았다. 탱화, 불상, 제기 등 불교 관련 기구 유통업을 하는 김씨는 사업이 조금 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은행에서 대출받아 회사가 세들어 살고 있던 7층 건물을 사들였다. 은행 이자가 월 900만원이지만 건물에서 받는 세가 700만원이니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사정이 돌아가진 않았다.

“경기가 나빠진 게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정부의 종교 편향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저도 이명박 대통령 찍었는데….” 14명이던 직원이 지난해 10명으로 줄었다.

“25년간 이 일을 했어요. 월급이 하루 이틀 밀린 적은 있었지만 결국엔 다 줬지요. 가족까지 합치면 30~40명의 생계가 제게 달려 있잖아요. 너무 어려워서 4년 만에 처음으로 ‘미수금을 달라’고 협력업체를 닦달하기도 했지요. 오래 같이 일하던 사인데….”

김영주씨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과 경찰대 진학을 꿈꾸는 중학생 아들이 공부를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도 비쳤다.

“2012년은 흑룡띠라고 하잖아요. 다들 하시는 일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건배사는 ‘새해에는 흑룡’이에요.” 사업가 김씨의 제안에 포장마차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잔을 들고 경쾌하게 부딪쳤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60대 3명에게도 새해 희망을 물었지만 손사래를 치더니 잔만 치켜들었다.

포장마차 주인 조해숙씨(53)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부인이다. 조씨의 새해 바람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다. 조씨는 2009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때 남편과 함께 77일간의 파업에 참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가 장기화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려던 고등학생 딸이 학원을 그만두고 대학생 아들이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게 될지 몰랐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만나며, 부대끼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씨는 지난해 말 남편 친구 박상석씨(53)와 함께 포장마차를 열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한다. 아직은 장사가 서툴러 재료비가 음식값보다 더 든다.

조씨는 “혼자 지낼 때는 내팽개쳐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이 행복하다”며 “새해엔 고마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꼭 웃으면서 살려고 한다”고 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데 징징거리고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엔 회사원 박성준씨(47)가 조씨를 응원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찾아왔다. 박씨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희망버스와 김진숙씨 싸움을 계기로 내년에는 노동권 문제에 모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포장마차를 찾은 소시민들의 새해 소원은 거창하지 않았다. “웃을 일이 조금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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