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헌혈로 삼성 백혈병 노동자 돕자” 팔 걷은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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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1.12.15 14: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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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드라큘라’ 모임 활동 나서

 

“헌혈은 11년 만에 처음 합니다. 사실 주사 맞기가 싫어 병원에도 잘 안 가거든요.”

지난 9일 오후 7시 서울지하철 신림역 앞 ‘헌혈의 집’. 간호사가 꺼내든 주사기를 보는 순간 이관택씨(31)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조금 아플 거예요.” 간호사가 알코올을 적신 솜으로 이씨의 팔뚝을 문지르며 말을 건넸다. 주삿바늘이 그의 팔뚝을 찔렀다. 침대에 누워 있던 이씨는 눈을 찌푸리는 것으로는 모자랐던지 다리까지 살짝 버둥거렸다.
“아프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씨는 벌개진 얼굴로 “엄청 아프다”고 답했다. 20분쯤 지나자 400㎖ 짜리 혈액봉투가 거의 꽉 찼다. 이씨는 그때서야 희미하게 웃었다. 주삿바늘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씨가 헌혈에 나선 이유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을 돕기 위함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헌혈증을 모으면 그분들이 수혈받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헌혈을 통해 이들을 돕고,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친척 동생이 전자업체에 취업한 것도 이씨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씨는 “내 동생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일단 사람들 목숨을 살리는 것이 첫 번째고, 이를 계기로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를 더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드라큘라’ 모임의 회원으로 헌혈에 참여했다. 헌혈을 통해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를 돕고, 이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높이자며 만든 모임이다. 이날은 처음으로 공식 활동에 나선 날이다.

모임을 제안한 사람은 한국기독교청년학생연합(한기연)에서 활동하는 서울대 종교학과 대학원생 김민아씨(29)다. 김씨는 “두 달 전 시민단체 ‘반올림’ 활동가들로부터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가운데 꼭 수혈을 받아야만 하는 악성 빈혈이나 림프종 환자들이 큰 비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바쁘고 돈이 없는 대학생들도 헌혈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돼 모임을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반올림’과의 자리에 함께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즉석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다소 엽기적인 모임 이름도 그 자리에서 지었다. 이후 입소문을 내 함께할 사람들을 찾았다. 한 달 보름 만에 10여명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헌혈증도 30장 가까이 모았다.

이날 신림역 앞 헌혈의 집에는 7명이 모였다. 하지만 헌혈에 성공한 사람은 2명뿐이었다.

철분 수치가 낮아 헌혈을 못한 중앙대 4학년 최아리씨(23)는 “평소에 우유와 달걀만 먹었는데 왜…”라며 아쉬워했다. 서울산업대 최대한씨(21)는 말라리아 위험지역인 화천에서 군복무한 이력 때문에 헌혈을 못했다. 최씨는 “내가 산업재해 위험이 높은 금형과에 다니기 때문에 (산재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이 자리에 왔다”며 “(헌혈을 못해) 허탈하지만 친구들을 북돋아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드라큘라’는 앞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행동하는 모임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헌혈도 계속하고, 모임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다음 헌혈행사는 내년 1월13일 오후 5시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다. 드라큘라는 헌혈한 뒤 마침 그날 열리는 ‘반올림’ 일일호프를 찾아 그동안 모은 헌혈증을 전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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