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2차 가자” “내가 쏜다”가 사라진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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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 11.12.14 14: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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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불경기 여파… 택시비도 부담, 지하철 끊기기 전 귀가

 

“내 주머니나 네 주머니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잖아요. 사람 수대로 나눠서 내야죠.”

지난 8일 저녁 서울 강남역 근처 숯불갈비집에서 한 유명 대학 동문 송년회가 열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끼어있을 법했지만 “내가 쏜다”고 외치는 이는 없었다. “요즘 같은 때 어떻게 한 사람이 부담하느냐”며 지갑을 열던 유종문씨(38)는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2차’를 잘 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동창모임이라 밥만 먹고 끝내기 아쉬워 2차를 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씩 한 뒤 집으로 향했다.

송년회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1차 식사, 2차 술자리, 3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던 자리는 요즘 대부분 ‘식사 겸 술자리’로 단순해졌다. 2차를 가더라도 간단히 ‘입가심’하는 수준이다. 1차만 하든, 2차를 가든 지하철이 끊기기 전 자리를 마치는 건 불문율이 됐다. 얇아진 지갑 사정 때문이다.
이날 밤 강북구 수유역 근처 곱창집에서 만난 무역회사 직원 임승도씨(31)는 “해물탕이나 고기를 먹으며 밥과 술을 한꺼번에 해결하면 여러 가지로 편하다”고 말했다.

 동대문 의류업체에서 일한다는 양지연씨(31)는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회식 때 사장님한테 술 한 잔 더 하러 가자고 얘기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직장인들은 “송년회가 일찍 끝나는 데는 택시비 부담도 한 몫 한다”고 입을 모았다. 건대 입구에서 만난 회사원 안만준씨(29)는 “지하철 끊기기 전에 파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장사를 하는 김미화씨(62)는 “손님들이 거의 자정 전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주문하는 모습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호기롭게 주문하는 손님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게 업소 주인들의 전언이다. 강북구의 갈비집 주인 박우성씨(41)는 “예전에는 고기건 술이건 일단 푸짐하게 시키고 봤는데 요즘엔 먹을 만큼 시키고 모자랄 때만 추가로 주문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신림동에서 포장마차형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선동씨(26)는 “대부분 손님들이 밥을 먹고 와서 소주 한 병에 마른안주 정도 시킨다. 1만3000원짜리 두부김치와 1만원짜리 마른안주가 가장 잘 나간다”고 했다.

한 사람이 술값을 ‘쏘는’ 풍경도 보기 드물어졌다. 신림동 조개구이집 주인 송모씨(49)는 “예전에는 사람이 새로 오면 무조건 안주를 더 시키고, 계산할 때는 누군가 나서서 ‘내가 낼게’라고 하는 모습이 흔했다”며 “그런데 요즘엔 서로 눈치보다 각자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고 달라진 풍속도를 전했다.

상인들은 하나 같이 “불경기 속에서 연말 송년모임 때라도 매상이 오르기를 기대했는데 김이 빠진다”고 말했다. 강남역 근처 호프집 주인 최대원씨(35)는 “호프집에선 안주가 매상의 70%를 차지하는데, 손님도 줄고 오는 손님도 간단하게 맥주만 시키니 타격이 크다”며 우울해했다.

직장인들은 그러나 달라진 송년회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학로에서 만난 회사원 윤봉진씨(46)는 “예전에는 허세가 있어서 다음날 몇 차까지 갔는지 세어보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허세보다 합리를 추구하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역 근처에서 만난 회사원 김성진씨(29)는 “요즘은 회식을 해도 1차가 끝나면 4분의 3은 빠져나간다. 상사들이 술을 많이 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신입사원들에게도 별로 강요하지 않는다. 가정에 더 충실할 수 있어서 대부분 좋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세대 신입사원이라는 그도 아쉬워하는 부분은 있다. “동료들끼리 친해질 기회가 줄어드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젊은 사원들의 이직률이 높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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