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도시락 점심·재능기부… 가족·이웃과 함께 ‘소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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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11.30 16: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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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가 온다](4) 2021년 구보씨가 사는 법

 

2021년 5월. 저성장에 돌입한 지 10년째다. ‘1%대 경제성장’은 이제 일상이 됐다.

저성장을 맞고보니 마냥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저성장이 본격화된 이후 구보씨는 비로소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다니는 회사의 매출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일하는 양’이 줄었다. 수당이 줄면서 임금은 줄었지만, 노는 날은 많아진 것이다.

출근은 아침 9시, 퇴근은 5시다. 이른바 ‘9 to 5’다. 점심 외식은 옛 얘기가 됐다. 대부분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식사 뒤에는 사내에 설치된 5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찾는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커피전문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보씨는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간다. 친구나 회사동료들과의 회식 풍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회식비를 줄였고, 주머니가 헐거워진 직장인들이 제 주머니를 털어 술 한잔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

구보씨는 늘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 공부를 봐준다. 경영대를 나온 구보씨는 수학을, 국문학과를 나온 구보씨 아내는 논술을 봐준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주말에는 가끔씩 가족 나들이를 나간다. 서울의 양재천, 중랑천, 부산의 수영천 등 도심 곳곳에는 수변공원이 많다. 아니면 어린이대공원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한다. 이용료가 없거나 있어도 부담이 되지 않는 곳이다. 하루 노는 데 40만∼50만원이 들던 대형놀이공원은 찾지 않은 지 오래다.

이번 주말엔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가기로 했다. 점심은 아내가 싸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승용차 대신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다.

구보씨 가정은 통신료도 줄였다. 구보씨를 제외한 가족들은 한 달에 1만원만 쓸 수 있는 정액제 상품에 들었다. 급한 전화가 아니라면 공중전화를 쓴다. 구보씨 아내는 평일 낮 주민센터에서 월 3만원을 주고 홈패션을 배운다. 간단한 재단이나 손수건, 베개 정도는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다. 인문학 강의도 월 3만원에 이곳에서 듣는다.

지역공동체도 활발해졌다. 금융권에 다니는 구보씨는 이달 수요일 저녁에는 주민센터에서 ‘주식투자 잘하는 법’을 강연한다. 재능기부, 그러니까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자원봉사다. 다음달에는 중국어 회화 수업이 계획돼 있다.

이웃에 사는 조선족인 류시앙씨가 수업을 진행한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구씨는 교재비 1만원을 주고 반드시 청강할 작정이다. 주민센터에는 일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보씨 처제는 이곳에서 2살배기가 탈 유모차를 구입했다. 구보씨는 태백산맥 전집을 3만원에 구입했고 토지 전집을 3만원에 내놨다.

술은 줄이고 담배는 끊었더니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어제자 신문에는 ‘국민건강도가 높아져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재정이 탄탄해졌다’는 소식이 실렸다. 교통량이 줄어드니 출퇴근길이 빨라졌다. 공기는 그만큼 맑아졌다.

많이 벌되 흥청망청 썼던 10년 전의 고성장시대. 그때는 돈을 벌고 쓰느라 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저성장은 가족, 이웃과 함께할 시간을 줬다. 구보씨는 비로소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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