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 부서진 집 80% 복구했지만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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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11.21 16: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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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불면증 시달리는 환자 늘어
ㆍ일부 청년 아예 섬 떠나기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주민들은 생업으로 돌아왔고, 복구공사는 마무리돼가고 있었다. 불에 탄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묘목을 새로 심은 마을 뒷산은 아직 흙빛이었지만, 섬에서 포격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평온 사이, 미세한 불안의 냄새가 났다. 주민들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다시 ‘그날’ 생각이 난다고 했다. 23일이면 인천 옹진군 연평도가 포격을 당한 지 1년이 된다. 지난 17~18일 연평도를 찾았다.

 

■ 일상을 찾아가는 섬

1년 사이 연평도의 인구는 늘었다. 지난해 포격 당시 1750명이던 인구는 지난 18일 기준으로 1898명이 됐다. 복구 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이 주민등록을 옮겼다. 섬 주민은 뱃삯을 할인해주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들어온 군인 수도 늘었다. 최철영 연평면 산업팀장(44)은 “연평도 주민들은 대개 어업에 종사하는데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위험을 피해 잠시 나갔다 해도 다시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거리에는 주민들보다 인부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서 공사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과 포클레인, 레미콘 등 공사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녔다. 옹진군은 기존 대피소 19곳 중 침수되고 균열이 생긴 6곳을 폐쇄하고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7곳의 대피소를 추가로 짓고 있다.

포격으로 부서진 집을 복구하는 공사는 80% 이상 완료됐다. 완파된 주택 32채 중 1차로 13채 공사가 끝나 입주를 마쳤다. 나머지 19채도 이달 말 완공된다. 부분 파손된 239채 중 226채도 제 모습을 찾았다.

새집에 입주한 김영길씨(50)는 “이제 이삿짐을 절반 정도 옮겼다. 포격 이후 불안해하던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나 역시 잃어버렸던 집을 찾으니 비로소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했다. 임시주택에서 지내며 새집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는 이홍현씨(61)는 “5평이 조금 넘는 임시주택은 너무 좁다. 집이 완공되기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너진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 일부러 길을 돌아 피해다닌다”고 했다.

 

■ 아물지 않은 상처

물리적 환경은 포격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배를 타는 남편을 따라 2000년부터 연평도에서 살아온 이모씨(52)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섬에 들어왔다. 지금도 무서워서 밤에 옷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잔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작은 진동음이 들릴 때마다 “지금 저거 포 소리 아니에요?”라고 물으며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대부분 주민들이 공사장 소음, 경운기 소리, 사무실이나 식당의 의자 끄는 소리까지 모든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신일근 연평면 청년회장(41)은 “연평해전 때만 해도 군인들끼리 바다에서 싸우는 거니까 불안하지 않았는데, 한번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고 나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자고 싶을 땐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해 자도 서너 시간이고 그나마도 중간중간 잠이 깬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4월부터 연평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 박찬씨(25)는 “날씨가 추워지고 다시 ‘그날’이 다가오니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불면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항불안제를 처방한다”고 했다.

연평초등학교에 다니는 안지현양(11)은 “예전엔 수업시간에 안내방송 같은 게 나와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이젠 무슨 내용이든 방송만 나오면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지고 선생님도 긴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평도에 한 곳뿐인 어린이집에는 포격을 경험한 아이가 80%나 된다. 박혜원 연평어린이집 원장(46)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포 사격훈련이 있을 때마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공호로 대피한다. 그때마다 깜깜한 곳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곤욕을 치른다”고 했다.

 

■ 떠나는 사람, 희망을 찾는 사람

일부 토박이들은 돈벌이를 찾아 하나둘 섬을 떠나기도 했다. 여건만 되면 섬에서 나가고 싶다는 김현배씨(31)는 “3개월 동안 뭍으로 피란 가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쓴 돈이 많은데, 정부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며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 돈을 벌고 싶지만 복구공사조차 육지에서 큰 업체 따라 들어온 외지 사람들이 다 차지해 섬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일근 청년회장은 “젊은 친구들 중에 일자리를 못 찾아 섬을 떠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조금만 대화가 엇갈려도 서로 싸우는 등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했다.

희망의 단서를 찾아보려는 주민들도 있다. 포격이 있던 날부터 연평도를 지켜온 정창권 연평우체국장(57)은 지난 4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정 국장은 “다시는 반복돼선 안되겠지만 지난 사건을 통해 국민들이 우리 현실을 깨닫는 계기도 되고 전체적으로 보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면사무소 앞에선 포격 1주년을 맞이해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자원봉사를 온 화가 유수원씨(47)는 “아이들과 함께 칸딘스키의 그림을 본떠 물고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밝고 명랑한 섬 아이들을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평화’를 소망했다. 이모씨(52)는 “예전엔 연평도가 돈 없어도 살기 좋고 평화로웠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옛날처럼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초등학교 돌담 위엔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돌멩이 위에 그린 그림과 글귀가 가득했다. “우리 연평도가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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