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거친 남자 중학생 목소리, 처음엔 걱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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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11.08 15: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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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애니 ‘돼지의 왕’에서 상식 깬 목소리 연기 김혜나·박희본·김꽃비

 

애니메이션에서 여자 성우가 소년 목소리를 맡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세 여배우가 돼지같이 굴욕적이고 개처럼 폭력적인 남자 중학생의 목소리를 연기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서 목소리 연기한 배우 김혜나(31), 박희본(28), 김꽃비(25)를 만났다. 김혜나는 악바리 같은 성격으로 교실 내의 혁명을 주도하는 김철, 박희본은 중산층의 나약한 황경민, 김꽃비는 가난하고 과묵한 정종석 역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은 변성기 전의 중학생 목소리 연기를 애초부터 전문 성우가 아닌 여배우에게 맡길 생각을 하고, 이들에게 대본을 보냈다고 한다.

 

“대본을 받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무리 봐도 여자 역할이 없는 거예요. 알고보니 철이 역할을 맡아달라는 거였어요. 하고는 싶은데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어요.”(김혜나)

“전 여자 배역이 없기에 아예 극중 고양이 대사를 미리 연습했어요.”(박희본)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연기를 해온 이들이었지만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는 쉽지 않았다. 김혜나는 “우습게 보고 녹음하러 갔다가 큰 코 다쳤다. 녹음을 하는데 식은 땀이 다 났다”고 말했다. 박희본은 “미리 그려진 그림에 입을 맞추면서 너무 꾸며진 것처럼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극중 인물들은 모멸, 폭력, 비굴, 배신, 가난, 살육으로 점철된 중학 시절을 보낸다. 이 거칠고 속된 남자 아이들의 이야기에 여배우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까. 김꽃비는 “구체적인 폭력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계급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들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남녀공학 중학교를 나온 김혜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본드 해봤냐’고 물었고, 결국 한 남자 선배로부터 ‘내 친구의 경험’이라는 전제 아래 30분간에 걸쳐 그 느낌을 생생히 들은 뒤 목소리 연기에 참조했다고 한다.
<돼지의 왕>의 종반부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과 파국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영화는 ‘아스팔트보다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김혜나는 “우리 모두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아닌 척 하고 살고 있지 않나”고 말했고, 박희본은 “연예계에서 서열이나 선후배 관계를 따지는 것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꽃비는 “누가 ‘돼지의 왕’이 되길 꿈꾸기보다 스스로 ‘돼지의 왕’이 된다면 개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나는 ‘독립영화의 퀸’이라 불릴 정도로 독립영화에서 특히 사랑받아온 배우다. 이달 중 창작 뮤지컬 <파라다이스 티켓>을 올리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아이돌 그룹 밀크 출신의 박희본은 ‘하필이면’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데뷔해 주목받지 못한 채 대형기획사에서 ‘잉여 시절’을 보낸 뒤, 기획사를 나와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는 “밀크에서 머리 양쪽으로 묶었던 걔”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웠지만, 윤성호 감독의 독립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연기폭을 넓히고 있다. 김꽃비는 화제의 독립영화 <똥파리>의 히로인으로 일약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가 함께 녹음한 시간은 단 이틀. 그러나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 이야기하는 셋의 모습에선 풍문으로 전해지는 여배우들의 ‘자존심 싸움’ 대신, 좋은 영화에 출연한 기쁨만이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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