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뉴스] [청년백수 탈출기]참가자 2명의 요즘 - 김태용씨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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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10.28 13: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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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공채가 막바지에 이른 요즘, ‘청년백수 탈출기’ 참가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취업시장 한복판에서 서류심사-면접으로 이어지는 제2·제3의 관문을 뚫으려 안간힘 쓰는 사람도 있고, ‘스펙’의 문턱이 높은 기업 공채에서 과감히 벗어나 해외취업을 모색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조희문씨(26)는 27일 한 유통업체의 면접을 앞두고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란 상황이다. 매일 3시간짜리 취업스터디 2개, 취업학원의 수업 3~4시간을 듣고 집에 오면 밤 11시다. 다른 기업에 낼 입사지원서를 쓰다가 지쳐 잠이 든다. 보건복지부 인턴으로 일하던 조씨는 인턴십이 끝난 뒤 8월 중순부터 취업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매달 80만원씩, 적잖은 부담이다. 학원에 다닐 것을 대비해 인턴 월급을 떼어 모아둔 비상금 200만원을 과감히 투자했다. 조씨는 이렇게 ‘살인적인’ 취업준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도움을 받는 것도 많지만, 나 스스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만족하고 누군가에게 묻고 조언을 구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김태용씨(24)는 내년 봄 외국으로 떠날 계획이다. 지난 여름 인도네시아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한 달간 인턴을 한 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상반기에 ‘스펙’의 문턱을 넘지 못해 서류심사에서 계속 낙방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하반기 들어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는 쏟아지지만 일정한 점수로 측정되는 ‘스펙’이 없으면 기업의 면접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여전하다.

김씨는 토익점수에 매달리는 것보다 외국에 나가 ‘경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을 배우면서 해외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

 

ㆍ‘묻지마 지원’ 멈추고 재충전 “더 넓은 세계 경험해볼 계획”

채용공고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지난 5월, 매일같이 날아드는 불합격 소식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청년백수 탈출기’ 참가자들을 도와주는 오규덕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아 자기소개서부터 탄탄히 준비했던 이랜드 외식사업부에 떨어져 며칠 밤을 잠 못 이뤘다. 머지않아 대학 마지막 학기가 끝난다는 사실 때문에 더 힘들었다. 소속이 없어진다는 것은 유치원에 들어간 4살 이후 처음이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그런 생각은 나를 더 침체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학교에서 운영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떠날 기회가 생겼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수차례 드나들며 직접 영문 자기소개서를 써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받은 일은 나에겐 작은 ‘성취’였다.

7월 말 출국을 했다. 1년 내내 여름인 인도네시아의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일반 기업에서 대학생들이 하는 인턴보다 인도네시아에서 훨씬 좋은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플라스틱 가공품 제조공장이었다. 자재를 들여오는 일부터 마지막으로 품질을 점검하는 일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또 이 업체에서 일하는 회계사에게 중소기업에 필요한 사업계획, 견적, 현금의 흐름 등을 일대일로 배울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졸업을 했지만, 다음날부터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치열하게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였다.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나에게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전반기 취업시장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후로 기업 공채에 지원하는 일은 자신이 없어졌다. 원서를 쓸 의욕도, 어느 회사의 어떤 분야에 취업을 하겠다는 의지도 잃었다. 객관적으로 봐서, 나에겐 ‘스펙’이랄 것이 없었다. 가진 것은 4년제 대학졸업장과 시덥잖은 학점, 고만고만한 토익점수가 전부. 더 이상의 무모한 ‘묻지마 지원’은 피하고 싶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남들의 ‘스펙’을 이길 수 있는 입사지원서를 쓸 수 있어야 했다. 한국 안에서만 생각하니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 다녀오고 나니, 다른 나라에서 취업하고 정착하는 일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페이스북으로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만이 ‘글로벌’의 전부는 아니다.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더 이상 한국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어나 외우던 영어실력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외국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일하기 위해 난 어학연수를 계획했다. 내년 봄 어학연수를 떠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난 지금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단 1000만원을 손에 쥐는 게 목표다. 패션업계 취업을 염두에 두고 아르바이트도 의류 체인점으로 선택했다. “무엇이든 배울 테니 알바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르쳐 달라”는 말도 해뒀다.

병장 말년휴가를 나와 복학할 정도로 빡빡하게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해 아직 나에겐 시간이 좀 있다. 누구나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 따위, 정작 대학시절엔 계획도 없었다. 이제 좀 더 넒은 세계를 보고 눈을 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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