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150년 해풍에 굽은 손 펼치며, 그저 쉬어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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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10.11 15:18:05
  • 조회: 11167

 
인천 영흥도 십리포 해변·국사봉 소사나무숲
영흥도는 자유의 해방구다. 평일 낮, 영흥도 십리포 해변에는 중년의 커플들뿐이다. 이들은 모두 소사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거나,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뒤로 기이한 모양의 구불구불한 소사나무 숲이 길게 이어져있다.
“지금은 방파제도 쌓고 철책도 둘러 놓았지만, 옛날에는 숲이 그냥 모래 사장 위에 있었어요. 지금이야 음식점과 유흥업소도 많이 들어서고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지만, 그 때는 마을 사람들만 드나들었어요. 갯벌에서 조개 잡고 나서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영흥면사무소 관계자의 말이다. 인천 옹진군 영흥도 십리포 해변의 소사나무 숲은 국내 유일의 소사나무 군락지다. 3000여평의 모래밭에 300여그루가 빽빽이 자라고 있다. 해풍을 맞아 뒤틀리고 비틀어진 가지들은 구불구불 뱀처럼 뻗어있다. 나무의 생김새 자체가 기이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진가들이 찾는다. 소사나무 숲은 ‘철지난 바닷가’에서 봐야 제맛이다. 인적이 드문 쓸쓸한 바다와 잘 어울린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이곳도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다. 1997년부터 시에서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기 때문에 나무들 주위로 철책을 둘러 놓았는데, 여름철 성수기에는 그늘을 개방한다.
바닷가에 흔치 않은 이 같은 숲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 1990년 출간된 ‘옹진군지’의 ‘영흥면 내리 서어나무 군락지’ 항목을 보자. 소사나무는 서어나무의 한 갈래다.
“150여년 전에 내동 마을에 사는 선조들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던 중 해풍이 심하여 방풍림을 심어 바람막이를 조성하려고 수차례에 걸쳐 여러 가지 나무를 심었으나 현지 토양이 모래·자갈로 이루어져 있어 모두 고사하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강한 서어나무를 구하여 구덩이를 깊이 파고 흙을 넣고 식재한 후 정성껏 자식과 같이 가꾸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후략)”
농업을 위해 심어 ‘자식처럼’ 키운 방풍림은 지금 영흥도 최고의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불안한 자유를 만끽하는 커플들에게 아늑한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부록이다.
바닷물도 서해답지 않게 맑고 파랗다. 숲 그늘에 앉아 있으면 청량한 바람이 쉼없이 불어온다.
많은 이들이 소사나무를 보러 와서 이곳만 둘러보고 떠나지만, 들러야 할 곳이 또 있다. 지척에 작은 소사나무 군락지가 하나 더 있다. 십리포 해변에서 임도를 따라 50분가량 오르면 닿을 수 있는 국사봉 꼭대기다. 국사봉은 해발 123m밖에 안 되지만 영흥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경사가 완만해 트레킹하기 좋다. 산악 자전거를 타기에 적당한 경사와 폭의 길들이 이어져 자전거객들도 많이 찾는다.
중간에 통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 들르지 않고 곧장 국사봉으로 향했다. 길 양옆으로 억새와 들꽃들이 잔뜩 피어 가을 분위기가 가득하다. 통일사 가는 길과 갈라지는 지점부터 본격적인 숲의 그늘로 들어간다. 비포장도로이지만 크게 험하지 않아 자동차로도 이 갈래길까지 들어올 수 있다.
10~15분가량 오르면 꼭대기에 나무로 만들어진 2층짜리 정자가 보인다. 주변으로 유독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보인다. 소사나무다. 영흥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소사나무 보호지역’이라는 간판을 세워놨다.
이곳의 소사나무들 역시 수령 100년 이상의 고목이다. 산 정상에 괴이하게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나무들. 바닷가의 숲과는 또다른 운치가 있다.
정자에 오르면 멀리 송도·용유도·무의도·자월도 등 섬들과 팔미도 등대, 인천항 등이 내려다보인다. 정자에서도 막걸리 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 잔 권하는 것을 거절하고 내려온다.
내려올 때는 고개넘어, 국사봉, 통일사로 나뉜 삼갈래 길에서 ‘고개넘어 1.2㎞’라는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손때 묻지 않은 길이다. 평지에서 내리막이 시작되는 부근부터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들려온다. 걸을수록 소리는 가까워지고 거나한 말소리들도 섞여든다. 논밖에 없는 마을 한복판에 세워진 장애인복지시설(‘해피타운’) 앞마당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조용히 익어가는 벼논 위로 노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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