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절벽 한가운데서 만난 400년전 형제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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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9.09 16: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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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하회마을 한눈에, 안동 부용대 층길

“이맘때쯤 뱀이 많습니다. 조심하세요.”
겸암정사 앞에서 만난 해설사 박점석씨는 등산화에 양말을 올려신고, 기다란 나무 막대를 손에 들었다. 부용대 ‘층길’에 간다고 했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뱀 얘기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날 만한 좁은 절벽길.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강물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더해 뱀이 나타나면 대체 어디로 피해야 할까까지 생각해야 했다.
안동 부용대 층길은 부용대의 층층 절벽 3부능선을 따라 나있는 높고 험준한 옛길이다. 마치 돌을 쪼아 만들어 놓은 듯 절벽 한가운데로 길이 나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엔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코스는 단출하다. 겸암정사에서 옥연정사까지 층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부용대에 올라 강이 휘감은 하회마을을 바라보고, 다시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들어간다.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높은 데서 낙동강의 고운 모래톱과 하회마을을 감싸고 도는 물길을 바라보고, 땅으로 내려와 마을의 고샅을 살피는 것. 눈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층길은 ‘형제의 길’이라 할 만하다. 옥연정사에 기거하던 조선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바로 겸암정사에 머물던 형, 겸암 류운룡을 만나기 위해서다. 겸암정사가 1567년, 옥연정사가 1586년 지어졌으니 400여년 전의 이야기다. 2008년에 조선 후기 하회마을의 모습을 담은 산수화(‘1828년 하회마을’)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는데 여기에도 층길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겸암정사를 시작점으로 삼고 걷기 시작했다. 겸암정사는 류운룡이 학문을 연구한 곳이자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부용대의 서쪽, 강물이 크게 돌아 굽이치는 절벽 위의 소나무숲 속에 고요히 들어앉아 있다. 정사에서 내려다보면 강 건너 모래밭과 송림,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형태의 ‘겸암정(謙唵亭)’에 걸린 현판은 퇴계의 글씨. 류운룡은 아예 자신의 호로 삼았다. 겸암정사 앞 강에는 크고 작은 두 바위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놓여 있다. 이른바 ‘형제 바위’로 불리는 ‘입암(立巖)’이다.
겸암정사에서 보통은 부용대로 오르는 산길을 택한다. 이 길은 부용대로 올라서 화천서원과 옥연정사 뒤편으로 이어지는, 다소 편한 길. 험준한 층길로 가려면 갈림길에서 오른편 오솔길로 내려서야 한다.
표지판이 따로 없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풀도 많다. “길이 위험스러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는 게 시청 관광과 관계자의 이야기다.
조금 걷다보니 마침내 오른쪽으로 풍경이 트인다. 굽이치는 강, 건너편의 모래톱, 모래톱 주변의 부슬부슬한 나무와 푸른 습지. 왼쪽으론 깎아지른 절벽이 바로 곁에 선 사람을 강쪽으로 밀어낼 듯이 우뚝하다. 무엇보다 발아래 길은 한 폭밖에 안된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몸을 부대끼며 피해야 한다. 천천히 30분이면 다 걸을 수 있다.
해설사 박점석씨는 “류성룡과 류운룡 선생이 이곳에서 담력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줄곧 손에 든 나무 막대로 바닥을 치면서 걷고 있다.
타초경사(打草驚蛇). 어딘가 있을 뱀들에게 알아서 피하라는 신호다. 그의 뒤에 붙어 걸었다. 다리가 조금 떨렸다.
20분쯤 걸었을까 바위를 뚫고 자라난 대추나무들이 낮게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손가락 마디만한 대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해설사는 “이게 600년 된 대추나무”라면서 먹어보라고 권한다. 연한 녹색의 대추를 하나 따 입에 넣었다. 달고 시원하다. 몇 개를 더 따서 한 손에 쥐고 하나씩 먹으면서 나머지 층길을 걸었다. 중간 중간 바위 사이로 오르내리는 험준한 구간도 펼쳐진다. 걸을수록 강 건너 하회마을이 가까이 다가온다.
층길의 끝, 언덕에 노송이 하나 서있다. 하회마을 만송정 솔숲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 널따란 모래톱이 소박하게 펼쳐지고, 기다란 모래톱 끝엔 나룻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서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면 이제 하회마을이다. 만남을 유예할수록 설렘은 커진다. 일단 옥연정사로 들어선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이 노년에 머물기 위해 지은 정사다. 옥연정사 아래 깨끗하고 맑은 깊게 소용돌이치는 소(沼)가 있다. 그래서 이름도 ‘옥연(玉淵)’이라고 지었다. 서애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 머물면서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제132호)을 썼다고 전해진다. 정사 마당에는 450년 수령의 노송이 서있다.
서애가 제자들과 함께 심었다고 한다. 노송이 퍼뜨린 씨앗 때문인지 부용대 주변에는 소나무가 유독 많다. 나룻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부용대에 오른다. 옥연정사 앞에 부용대로 가는 가파른 길이 있다. 부용대에서 보면 하회마을의 수려한 풍수지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과 강이 ‘S’자 모양으로 어우러져 태극 모양을 이루는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연꽃이 물에 떠있는 듯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모습. 아까 보았던 모래톱 끝 나룻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훨씬 작아져 점이 되어 있다.
내려와 그 모래톱 위에 선다. 올려다보니 옥연정사 아래 바위에 투박하게 이름이 새겨져 있다. 능허대(凌虛臺), 보허대(步虛臺). 서애는 이곳을 오가면서 직접 바위에 이름도 붙였다. 그러고 보니 겸암정사 곁에는 강물이 물결쳐도 이르지 못한다는 능파대(凌波臺)가 있었고, 오솔길에는 달관대(達觀臺)와 운송대(雲松臺)가 있었다.
바위에 이름을 붙여 불렀던 400년 전 대학자와 하회마을의 그림을 떠올리며, 뱃삯 3000원짜리 모터 나룻배에 오른다. 그도 나룻배를 타고 이 강을 오갔을 것이다. 뱀 얘기는 벌써 잊은 지 오래다.


■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안동IC로 나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면 하회마을권역으로 가는 길. 이정표가 잘돼 있다.
■ 소개한 코스는 원점 회귀형이 아니다. 승용차로 갈 경우 겸암정사 앞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해 층길을 걸어 하회마을을 돌아본 뒤, 다시 걸어 겸암정사로 돌아와야 한다.
■ 하회마을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부용대에서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면 입장료를 안 내도 된다. 단, 나룻배 삯은 3000원(왕복). 문의 하회마을관광안내소(054-852-3588), 마을관리사무소(054-854-3669)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30일부터 10월9일까지 안동 시내와 탈춤공원, 하회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국내외 다양한 탈춤공연과 전시, 문화 프로그램 등 10개 무대에서 700여개의 행사가 진행된다. 이 시기에 가서 안동 여행을 겸하는 것도 좋은 방법. 문의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054-841-6397~8)
■ 하회마을의 자랑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상설 공연한다. 3~12월 수·토·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내 탈춤전수관. 관람료는 무료.
■ 안동에는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지례예술촌(054-852-1913)은 1663년 조선 현종 4년에 건립된 고택(사진)이다. 처음으로 고택을 체험시설로 개방한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들어가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고택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 임청각(054-853-3455)은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조선 중기 전통가옥. 근처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탑도 서 있다. 바로 곁에 기찻길이 있어서 시끄럽다는 게 단점이다. 하회마을 안에도 민박집이 많다.
■ 월영교 맞은편에 위치한 까치구멍집(054-855-1056)은 헛제삿밥과 안동식혜로 이름나 있다. 헛제삿밥은 제상에 올렸던 나물과 탕채를 간장에 비벼먹는 음식. 양반상 1만3000원. 하회마을 근처 옥류정(054-854-8844)의 간고등어 정식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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