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사람 손에 사라지는 금모래·은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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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31 14: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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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남한강변

남한강은 처참했다. 오래된 콘도의 엘리베이터에도, 1년도 안된 관광 안내책자에도 남아 있는 남한강의 푸르고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거기에 없다.
이맘때쯤 푸른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던 강변은 황량한 물사막으로 변했다. 금·은모래 강변의 소박한 돌밭은 대형 유원지로 변모 중이었고, 남한강변의 소담한 자연을 한몸에 품고 있던 신륵사에선 종소리 대신 포클레인 소리가 울려퍼졌다. 원래 비어 있던 고달사지만이 변하지 않고 남아, 표정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 여주에 다녀왔다. 강변의 절(신륵사)과 절터(고달사지)를 보고 절밥(목련정사)을 먹었다. 해질 녘 금·은모래 강변에서 돌을 줍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10월 말 완공식을 갖는 4대강 공사는 마무리를 앞두고 한창이었다.
한강 줄기인 남한강을 여주 사람들은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예부터 경관이 빼어나 강 주변에 많은 누정이 세워졌고, 시인묵객들이 읊은 시들이 전해 내려온다. 그중에서도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물게 강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절이다. 예전에는 구룡루 앞 강변을 통해서 배로 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신륵사 앞 강변에는 조선시대 4대 나루의 하나인 조포나루가 있다.
신륵사는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유명해진 것은 고려 우왕 2년(1376년)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부터다. 나옹선사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로 시작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를 지은 고려시대의 스님. 이 시는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如水如風) 살다가 가라하네’로 끝난다.
여강가 바위 언덕에 지어진 강월헌(江月軒)에 서면 ‘여수여풍’이란 시구가 저절로 떠오른다.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를 따 지었다. 정자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면 마치 흐르는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된다. 다만 시 뒤로 흐르는 정서는 그리움 혹은 슬픔이다. 건너편 강변에선 줄곧 주황색 포클레인이 오간다. 신륵사 경내 역시 ‘한강 살리기 공사’와 함께 정비가 한창이다. 입구는 공원 조성 공사, 경내는 극락보전 해체 복원 공사 중이다.
강월헌 곁에는 아담한 삼층석탑과 다층전탑이 여강을 굽어보고 있다. 다층전탑은 남한강을 오르내리던 뱃사공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곳은 지난해 드라마 <추노>에도 등장할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인데, 해질 녘이나 달 밝은 밤에 오면 더 좋다. ‘강월헌’이란 이름답게 달이 밝게 차올랐을 때 달빛에 물든 강과 건너편 은빛 백사장이 한 폭의 그림을 이뤘다고 한다. 맞은편 황량한 인공구조물 사이, 홀로 독야청청 푸른 기운을 품고 있는 바위 절벽 위로 달을 맞는 정자, 영월루(迎月樓)도 보인다. 신륵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 뒤편으로 올라 봉미산 소나무 숲길을 걷는 것도 좋다.
신륵사에서 고달사지까지는 강을 따라 달렸다. 지금 여주에서 강변을 따라 달리는 것은 계속해서 4대강 사업 공사의 현장을 보는 일이다. 강변뿐 아니라 일대의 많은 야산들이 참혹하게 깎여 공사에 필요한 모래 더미로 변하고 있다.
수많은 골프장 안내판을 지났다. 오히려 여주의 자랑이었던 강변에서 멀어질수록 본래 이 고장이 지닌 오래된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동기부터 한반도의 쌀농사가 시작된 녹색 평야의 땅 여주. 그렇게 다다른 고달사지에선 텅 빈 초록의 자연 위에 백로 십여 마리가 노니는 장관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다가가니 놀란 새들은 차례로 날아올라 군무를 펼친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처음 세워진 절이다. 고달사지에는 섬세한 석조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가족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 혼을 바쳤다고 한다.
고달사지에서 볼 수 있는 석조 문화재는 크게 네 가지다. 절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보물 8호인 고달사지 석조대좌다. 불상을 안치했던 고려시대의 ‘불좌’다. 인상적인 것은 원종대사탑비의 귀부와 이수. 1915년 봄에 넘어져 8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돼 있고, 비신을 받치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혀 있던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의 거북은 커다란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힘찬 기운을 내뿜고 있다. 고달사지 뒤편 산으로 오르면 국보 4호인 고달사지 승탑과 보물 7호인 원종대사탑도 볼 수 있다. 정교하고 우아하다.
한참을 폐사지 주변을 거닐다 다리를 쉴 겸 산 기슭의 고달사에 들렀다. ‘해탈’과 ‘보리’라는, 깨달음의 뜻을 품은 이름의 개 두 마리가 이방인을 반긴다. 도윤 스님이 “차 한잔하고 가라”고 권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참혹한 감상을 전했지만, 스님은 말을 아꼈다.
“사람들이 초하룻날이면 은모래 백사장에 일출을 보러 몰려들곤 했습니다. 참 아름다웠거든요. 불과 일 년 사이 그 경관이 모두 사라졌어요. 백로들이 이곳으로 날아든 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지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불교의 교리를 들려준다. 업을 갖고 돌고 도는 6계와 업을 벗어난 수행자의 4계에 대해, 욕심을 끊어낸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사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스러지는 여강의 풍광과 수많은 포클레인을 지나 이런 천 년 묵은 절터에서 “사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절 뒤쪽으로 혜목산 등산로가 있다. 지혜 혜, 눈 목 자를 써서 지혜로운 눈을 지닌 산이다. 고달사지 부도를 보러 가기 위해 산길을 지나는데, 고라니의 놀란 눈과 마주쳤다. 이 산짐승은 한동안 내게서 눈을 떼지 않더니 숲 속으로 재빠르게 몸을 감추었다. 곁에 숨어 있던 꿩도 놀라 날개를 푸드덕대며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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