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두 다리 뻗는 곳이 집이고, 길에서 만난 사람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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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31 14: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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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부부’ 지·다리오

지(30·본명 김지영)와 다리오 산체스(32·스페인)는 얼마 전 홍대 프리마켓에서 만난 청년 이야기를 꺼냈다.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팔고 있는데 한 청년이 한 시간쯤 전부터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요. 가서 물어봤죠.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부자가 돼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당신들을 보면서 차라리 그 구조에서 나가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옵션이 생겼다고 할까요.”
지와 다리오 부부는 외관상 영락없는 ‘집시’였다. 아무렇게나 ‘떡진’ 머리, 자라난 수염, 낡은 옷, 새까만 얼굴…. 지는 말했다. “이건 패션이 아니라 순전히 필요에 의해 이렇게 된 거예요. 세제나 비누를 쓰지 않으면 자연 드레드가 되고요, 이런 머리가 되면 머리를 오래 안 감아도 되거든요.”
지와 다리오 부부는 4년간 세계 각지를 떠돌며 캠핑 생활을 했다. 브라질·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 등 남미 대륙을 걸었고, 영국과 스페인과 일본을 여행했다. 이들이 가진 것은 낡은 텐트와 두 다리뿐이었다. 얼마간 아마존 국립공원에서 원시의 삶을 살았고, 스페인의 섬 이비사에선 동굴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히치하이킹이나 쓰레기를 뒤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들은 “두 다리를 뻗는 곳이 우리 집이었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이었다”고 말한다. 얼마 전엔 4년간의 캠핑 여행기를 묶어 <세계가 우리집이다>를 출간했다. 지난 23일 잠시 한국에 들른 이들을 만났다. 다음날이면 호주로 또다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원초적인 궁금증이 컸다. 먹는 것, 화장실, 더러운 것 등을 어떻게 해결했나.
“더러운 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연에만 있으면 점점 더럽다기보다 자연과 닮아간다고 느낀다. 내 겉모습이 더러워질수록 강물은 덜 오염된다. 남미에선 여전히 물물교환이 가능하다. 내가 만든 팔찌를 시장 아줌마에게 주고, 밥 한 끼를 얻어먹는 식이다. 자연에서 채집하는 경우는 과일 정도,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이 하는 그대로 따랐다. 생수도 안 먹고 동네 사람들이 먹는 물을 마셨다. 우물, 강물, 시냇물, 빗물…(웃음). 여행을 오래 해서 그런지 면역이 돼서 아픈 적은 다행히 없었다.”
-히피처럼 여행한 이유는 뭔가. 원래 히피 문화에 관심이 많았나.
“전혀 아니다. 이유는 하나다. 그들이 하던 방식을 따르면 적은 돈을 가지고도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존 알테도샤오의 ‘사랑의 섬’에서 만난, 8년째 집없이 여행 중인 프레드손 가족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상파울루에서 아마존까지 오는 8년 동안 중간에 아들과 딸도 낳았다.
“가진 거라고는 망가진 텐트와 배낭, 10만원짜리 중고 배가 전부였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자’고 손을 내밀어 줬다. 2개월 후 우리가 다른 데로 갈 때쯤엔 또다른 누군가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이런 삶을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길에서 생활하면,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별로 없었다. 에콰도르에서 한번은 한국 친구들 셋을 만났다. 우리와 함께 만원 버스를 탔다가 내렸는데, 세 명 다 가방이 칼로 찢겨져 강도를 당했다. 우리는? 아무 피해가 없었다. 가진 게 없으니 위험할 일도 별로 없다.”
-여행하면서 많은 히피들을 만났다.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진짜 히피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마존에서 한동안 함께 생활했던 프랑스 여자 베네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이었지만 겁이 없는 친구였다. 서아프리카에서 브라질까지 돛단배를 히치하이킹해서 대서양을 건너왔다. 남미에 오기 전엔 2년간 프랑스 남부의 한 스괏 하우스(빈집 점거 공동체)에서 살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녀의 아버지가 의사이며, 할아버지는 파리에서 아주 큰 화랑을 운영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려 보내면, 어떤 그림도 높은 가격에 팔아준다고 했다. 그게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히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시적인 생활을 하다가 ‘문명국’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남다를 것 같다. 특히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땠나.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다리오가 옆에 앉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옆으로 옮겨 앉는다. 한국에 있으면 100% 내가 될 수 없고, 내 에너지를 남을 의식하는 데 써야 해서 힘들다. 안타깝지만 정착을 한다면 다른 곳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대신 한국도 시골에 가면 좋다. 도시에선 사람들이 쳐다볼 때 이미 판단을 갖고 있다. ‘쟤네들은 생산적이지 않아.’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그게 ‘욕’이 되어 있다. 반면 시골 할머니들이 쳐다보는 데는 어떤 판단이 깔려있지 않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진짜 소비사회에서 벗어나 사는 건 힘든 것 아닌가.
“어떤 걸 해도 돈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늘 서로 말하는 건, 얼마나 최소한만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알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행 초반엔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고 생각했다. 소속이 없다는 것에서 공허함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접하면 ‘잘 됐다’ 생각하지만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여긴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둘러싼 것을 배제하고 진짜 나를 볼 수 있게 된다.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싼 거 먹으러 간다고 하면 ‘나는 집에서 먹고 이후에 함께 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게 궁색한 느낌도 아니고,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앞으로도 직업을 갖거나 정착해서 살 생각은 없나.
“여행은 아직 전혀 지치지 않았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어디에서 자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아, 여기 오기 전에 놀라운 사실을 하나 접했다. 호주 여행을 위해 카우치 서핑(세계 여행자 연결 커뮤니티)을 하다가 몇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우리 집이 비어있으니, 원하면 들어가서 지내도 좋다’면서 집 대문 비밀번호를 가르쳐줬다. 놀라운 일 아닌가.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내줄 수 있다는 건 잃을 게 별로 없다는 거다. 또 누구에게든 그 공간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집이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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