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굿거리가 탱고같은 세계적 리듬 못 될 이유 없죠”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26 14:13:49
  • 조회: 12320

타악인 박재천
‘코리안 그립’ 9월 공연

타악인 박재천(50)은 2006년 런던 공연에서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항공사의 실수로 악기의 절반이 공연장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그게 하필 장구·징 등 우리 악기였다. 하는 수 없이 드럼만으로 공연을 마쳤다.
“현지 프로듀서가 굉장히 서운해했어요. 국악적 요소가 그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때 생각했다. ‘국악기 없이, 서양의 악기로도 우리 전통 장단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2008년부터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리듬과 소재만 갖고 음반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드림스 프롬 더 앤세스터(조상이 남긴 꿈들)>(2008)다.
아방가르드 피아노 연주자인 아내 미연과 함께 오채질굿, 자진모리, 굿거리, 칠채 등 전통 장단을 드럼과 피아노로 연주했다. 단순한 물리적 ‘퓨전’이 아니라, 우리의 장단이 재즈와 현대 클래식의 어법과 화학적으로 융합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엔 ‘코리안 그립’이다. 박재천은 미연 등과 함께 오는 9월3·4일 남산국악당에서 ‘한국 장단 드럼 연주법, 박재천의 코리안 그립’이라는 공연을 연다. 그동안의 고민을 담은 연주법을 체계화해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전반부에는 판소리·가야금 병창·살풀이 등을 전통 국악인과 협연한다. 전통 공연을 그대로 하되, 장구를 드럼으로 바꿔 연주하는 방식. 후반부는 다양한 한국 장단을 알리는 데 치중할 생각이다.
“라틴의 전통 리듬인 보사노바·삼바·탱고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아요. 굿거리·자진모리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우리 장단이 ‘월드 스탠더드’로 남기를 바라는 작업의 첫 단계입니다.”
박재천은 드럼과 장구를 30년 이상 동시에 다뤄왔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전위적인 타악 연주자로 통한다. 1991년 록과 판소리를 접목한 ‘사주팔자’, 1993년 재즈록그룹 몰이모리 등을 이끌며 일찍이 크로스오버에 발을 담갔다. 이후 프리재즈의 길로 들어서 강태환·미연 등과 함께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더 큰 유명세를 탔다. 2007년에는 재즈와 사물놀이를 접목시킨 음반 <예산족>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연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리안 그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는 직접 드럼 스틱과 장구채를 가져와 테이블을 치면서 설명했다.
“우리 장단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대표적으로 ‘기덕’과 ‘드르닥’입니다. 그 작은 임프로비제이션(즉흥)이 빈번히 나타나는데, 아주 과학적이죠. 연주자의 호흡을 밀고 당기기도 하고요.”
‘기덕’은 ‘덩 기덕 쿵 더러러러’와 같은 우리 장단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 번을 치는 것으로 들리지만 순식간에 두 번, 혹은 세 번의 음이 첫 박에 나타난다.
‘드르닥’ 역시 앞소리는 떨어뜨리고 뒷소리는 잡아주는, 한국 장단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서양 연주자들의 관점에선 박자를 계산하기 어려운, 독특한 장단인 셈.
이 같은 장단을 드럼에서 연주하려면 스틱을 잡는 방법부터 달라진다. 일반적인 그립과 달리 검지가 위로 올라온다. 예를 들어 ‘기’, ‘드르’는 음가를 놓고, ‘덕’과 ‘닥’에서는 음가가 닫히는데, 검지가 음가를 닫고 여는 기능을 한다.
“기존의 드럼 연주법에 저먼 그립, 프렌치 그립이 있잖아요. 그래서 검지가 올라오는 형태의 스틱 잡는 법을 ‘코리안 그립’이라고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자신감을 얻은 것은 지난해 동료 드럼 연주자들에게 처음 이 같은 연주법을 선보이는 자리에서였다.
“흥미로운 건 그들도 모두 이 고민을 해봤다고 고백해왔다는 거예요. 문화원에 가서 장구를 배워보기도 하고 명인에게 묻기도 하고. 그런데 국악인의 어법이 바로 서양식으로 옮겨지긴 힘들었던 거죠. 소통이 힘들어서 다들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랫동안 드럼과 장구를 동시에 다뤄온 박재천은 그런 의미에서 적임자였다. 그가 설명을 하니, 동료들이 ‘아, 이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치더라는 것이다.
그때 무릎을 쳤던 드럼 연주자들 중 몇몇은 지금 험난한 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 중 재즈 드러머 서덕원, 이도헌, 김책과 함께 사물음악의 백미인 설장고를 연주하는 ‘드럼 설장고’ 순서가 있다.
“국악인과 협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20년 이상 저와 함께 공연을 하셨던 분들이라. 문제는 오히려 드럼 연주자들입니다. 삽시간에 손의 모습을, 그들의 언어 자체를 바꿔야 하니까요. 아주 미치려고들 하고 있어요(웃음).”
그는 장기적으로 외국 연주자들을 불러 워크숍과 콘서트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가칭 ‘코리안 그립 드럼 페스티벌’이다.
“외국 연주자들에게 한국 장단을 가르쳐주고 함께 연주하는 것이죠. ‘스티브 겟의 굿거리 솔로 프로젝트 1’ ‘인도 셀바 가네시의 칠채 버전 볼륨 2’ 하는 식으로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