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산양 찾아 40일“이젠 똥 모양만 봐도 알아요”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25 14:30:21
  • 조회: 12280


"삵 똥이다!" 김지혜(21·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1년), 김도현(19·서울대 물리천문학부 1년), 박다예(20·연세대 불어불문학과 1년)씨는 요즘 '동물 똥 박사'가 됐다.
똥 모양만 봐도 어느 동물의 것인지 단번에 알아챈다. 수분기가 있으면서 마디까지 보이면 삵의 똥이고, 흙 굴속에 있으면서 금색 벌레가 모여들면 오소리 똥이다.
이들은 여름방학 40여일간 야생동물탐사단(야탐단)을 조직해 경북 울진·봉화 일대를 누볐다. 눈만 뜨면 찾으러 다닌 것은 천연기념물 217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 야생동물인 산양의 똥자리다. 검은색 땅콩 모양인 산양 똥은 산양의 서식지를 찾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야탐단은 40여일 중 폭우가 쏟아진 5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산에 올랐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이들과 함께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의 야산에 올랐다. 울진의 산은 골이 깊고 험하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산양이 살기엔 안성맞춤이다. 금강소나무 사이 자갈길을 사륜구동차로 20여분간 내달리자 '덜컹덜컹' 소리에 놀란 고라니가 차 앞을 가로질러 내뺐다.
중턱쯤 차에서 내린 학생들은 등산로는커녕 표지판조차 없는 산의 사면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지도와 느낌에만 의지한 채였다. 바위가 나타나면 두 손을 동원해 '네 발'로 기어올랐다. 능선에 올라서자 비로소 산양 똥자리가 나타났다.
"산양은 주변에 바위가 있고 조망이 가능한 곳에서 볼일을 봅니다. 자신의 몸은 살짝 숨기면서 다른 곳은 잘 볼 수 있는 곳이죠. 이 때문에 산양 똥자리를 찾으려면 항상 이렇게 산 정상부까지 올라와야 해요."(김지혜씨)
일행은 곧바로 '야탐단 일기장'을 꺼내 서식지 발견 장소, GPS 위치, 주변 식생환경을 기입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면 차곡차곡 노트북에 담길 자료들이다.
산양은 비무장지대와 울진·봉화·삼척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데, 울진·봉화·삼척 일대에선 서식지가 계속 파괴되고 있다. 지난해 폭설이 내렸을 땐 산양 20여마리가 이 지역에서 아사했다. 그럼에도 산양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문화재청은 서식 실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환경부도 조사에 미온적이었다. 야생동물 계류장을 한 곳 만들었지만 위급한 상황에 필요한 수의사는 아직 배정하지 않은 상태다.
고교 시절 환경캠프나 강의에 참가한 적이 있는 대학생 3명은 이런 얘기를 듣고 야탐단에 지원했다.
위기에 처한 산양을 찾아나선다는 공통 목표가 있어 만나자마자 가까워졌다.
대학에서의 첫 여름방학을 맞아 다른 친구들처럼 배낭여행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산양을 찾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김도현씨는 "산양을 찾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생스럽지만 더 흥분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다예씨는 해외여행 가자는 가족의 제안에도 끝까지 야탐단에 남았다.
학생들은 이번 산양 서식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산양의 서식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들이 만드는 지도는 올해 말 환경부와 녹색연합이 공동 조사하게 될 산양 서식지도의 바탕 자료가 된다.
김지혜씨는 "울진 일대 산양 서식지를 보호지구로 지정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40여일간 산에서 살다 보니 생활도 바뀌었다. 인스턴트 음식을 덜 먹게 됐고 편식도 사라졌다. 하루 이틀 정도는 잘 씻지 못해도 견뎌낸다.
박다예씨는 "야탐단에 참여하기 전에는 화장품을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 등 코스별로 모두 바르고 잤는데 이제는 굳이 바르지 않는다"고 했다. 일행은 박씨의 피부가 더 건강해지고 매끄러워졌다고 했다.
지난 8월 20일 야탐단은 40여일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해단식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2004년 조사 때에 비해 줄어든 산양 서식지 걱정을 했다. 이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기사에 꼭 써달라고 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