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여행 후 인생이 변했다” “모험과 노는 법 알았다” “평화와 행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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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22 14: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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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원활동여행자 3인의 인터뷰

자원활동여행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고 무겁기만 한 일이 아니다.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동을 전한다. 어떤 여행이건 장소와 주제가 다를 뿐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최근 자원활동여행을 다녀온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승연(38·연극무대 디자이너)
“여행 후 인생이 변했다”
 
최씨는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10개월 동안 케냐·모잠비크·보츠와나·라오스·베트남 등 25개국을 다니면서 자원활동을 했다. 여행을 떠날 당시 최씨는 “무대 디자이너로서 능력에 한계를 느꼈고, 인생의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마침 친구인 카밀(32·네덜란드)이 자원활동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결심, 케냐 나이로비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큰 기관을 거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현지의 작은 봉사단체를 찾아다녔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때마다 인터넷 카페에 들러 정보를 찾았다. 딱히 봉사할 곳을 찾지 못한 경우엔 길을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고아원, 학교, 봉사센터 등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레스토랑 직원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묻기도 했다.

최씨는 아동극 무대 디자인을 주로 했기 때문에 대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케냐 북동쪽 키수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로타 마을. 인터넷을 통해 로타 마을이 고향인 윌리스와 필립이라는 두 청년을 만났다. 이들은 마을에 고아원·마을회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최씨 일행은 이들의 꿈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 두 달간 이곳에 머물면서 고아원 겸 마을회관인 ‘레인보 센터’를 함께 만들었다. 최씨의 역할은 건물의 평면도를 디자인하고 벽화를 그리는 일. 루오족의 전통 건축기술로 건물을 짓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단 예산이 부족했고, 아프리카의 여유로운 생활방식 때문에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아 힘든 적도 많았어요. 계획에 맞춰 진행하기보다 그날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 뭘 해도 느렸습니다.(웃음)”

그는 “자원활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꼭 기술이나 지식이 있어야 하거나 대단한 정신무장을 한 사람이어야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며 “많은 책임감이 따르지만 누구나 할 수 있고, 얻는 것은 그에 비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었더니 “결혼 생각이 없던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여행이 인생 전체를 바꾼 거나 다름없다”며 웃었다. 최씨는 10개월의 여행 이후 친구였던 카밀과 결혼했다.

이들은 독립적인 자원활동여행자들과 현지 단체를 곧바로 연결해주는 웹사이트(kindmankind.net)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단체를 통하지 않고 홀로 자원활동여행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는 남편이 된 카밀과 함께 모로코에 가 있다. 그곳에서 서아프리카 지역의 자원활동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목표는 “인형극을 만들어 여행하면서 공연하는 것”이다.

■ 용해주(28·대학원생)

용씨는 휴학 기간 동안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통해 2009년 7월 2주 동안 에스토니아 국제워크캠프에 참여했다.

만남 장소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버스터미널. 세계 각지에서 온 14명의 참가자들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2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시골마을 카네피에 도착했다. 시냇물에서 세면, 빨래를 모두 해결해야 했고 창고·텐트·마구간 등에서 잠을 자야 했다. 캠프의 주제가 ‘어드벤처(모험)’라 다른 캠프와는 사뭇 달랐다. 마을의 에스토니아식 전통 물방앗간을 보수하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듣고 갔는데, 자연환경을 느끼고 여유를 갖는 ‘훈련’을 하는 것이 전체 일정의 주가 됐다.

“처음 갔는데 리더가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이다’라는 거예요. 폐가 수준의 방앗간에 도착해서 3시간 정도 멍하게 있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다 같이 일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잡초도 뽑고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캠프 리더가 갑자기 하다 말고 책을 읽는 거예요. ‘그래도 돼?’ 물었더니 ‘말했잖아. 아무거나 해도 된다고’라고 하더군요.”

용씨는 “자유로운 와중에 공통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해나가는 기쁨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가장 큰 장점은 노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지 호스트인 율로의 생활방식. 숲에서 블루베리를 채집하고, 시냇물에 몸을 씻고, 그 물을 마시며 친환경적인 삶을 체화한 사람이었다. 용씨는 “시냇물에서 합성세제, 샴푸 등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 물을 마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그에게는 돈도 크게 필요없고 많이 쓰지도 않는다. 굳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게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용씨는 이후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달 동안 동유럽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는 “배낭여행 중 유스호스텔에서 이뤄지는 피상적인 만남과 달리, 하나의 주제로 공통된 활동을 하면서 더 깊은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단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다음번엔 6개월~2년 정도 장기여행에 도전할 계획이다.

■ 조수빈(23·대학생)

조씨는 아직도 그때의 경험이 생생한 듯했다. 가끔 눈물을 글썽였고,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난 1월 2주간 인도 쿤다푸르로 국제워크캠프를 다녀왔다. “준비해야 할 것부터 색달랐다”고 말했다. “여행을 떠날 땐 늘 캐리어를 사용했어요. 이번엔 처음으로 빨랫비누, 빨랫줄, 버려도 될 옷들을 챙겼죠. 물론 배낭에 넣었고요. 어마어마한 배낭의 무게가 제 책임의 무게처럼 느껴졌어요.”

조씨는 쿤다푸르의 한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학교 내부시설을 보수하는 일도 도왔다. 미리 교구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갔는데,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벽에 알파벳을 그리고 키재기 자도 그려줬어요. 시각적인 재료들이 많지 않다보니 아이들이 물감이나 펜으로 하는 것에 감동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적인 것 위주로 프로그램을 다 다시 짰어요.”

조씨는 사람과 부대끼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여행은 도시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보는 것뿐이었는데, 지역으로 가서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아이들과 일대일로 마주 보고 가르치면서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깨달았고요.”

반면 혼란스러움도 많이 느꼈다. 그는 “열악한 모습만 상상했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해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더라”며 “괜히 우리가 잠깐 왔다가서 분란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처음에는 내가 이런 걸 가르쳐줌으로써 그 아이들이 얼마나 배우고 성장할까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내가 배운 점이 훨씬 더 많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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