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신인지, 영혼인지 날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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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12 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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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데뷔 50년 맞은 연극배우 박정자

묵직한 울림이 있는 중성의 목소리,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으로 한국 연극사를 관통해온 박정자(69)가 내년이면 배우인생 50년을 맞는다.
1962년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 동안 그는 13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외길인생을 살아왔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입사했지만, 연극을 놓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지난 8일 서울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참, 이상해. 살면서 남편과 이혼할까 하는 생각은 몇 번이나 했는데(웃음), 연극을 관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거든. 남편보다, 자식보다 좋은 게 내겐 연극”이라고 말했다.
“연극이라도 만날 좋기만 한 건 아니에요. 맛있는 음식도, 좋은 사람도 매일 먹고 만나면 질리잖아요. 그런데 그 어떤 것보다도, 난 연극이 좋아요. 연극이 없다면…. 아마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할 거예요.”
우리 나이로 올해 칠순이지만, 왕성한 활동력은 여느 젊은 배우들을 능가한다. 올 상반기만 해도 국립극단 창단공연 <오이디푸스>(1월)와 <나는 너다>(5월)를 잇따라 소화했고, 하반기에는 <어머니의 노래>(8월), <모래의 정거장>(10월), <오이디푸스> 재공연(11월) 무대에 오른다. 쉼 없는 여정이다.
오는 22~2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어머니의 노래>는 어머니라는 보편적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그린 작품이다. <모래의 정거장>은 김아라가 일본 연출가 오타 쇼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정거장 시리즈 세 번째 작업이다.
그는 “좀 쉬면서 하라고 만류하는 이들이 있지만 쉬면 난 죽는다”며 “설 무대가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일까. 그는 “아직 체력은 문제가 없는데, 대사를 외우는 게 점점 힘들다. 무대에서 실수할까봐, 그게 제일 겁난다”고 했다.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일지 모른다. 그는 2007년 초, 전날 크게 다쳤음에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신의 아그네스> 공연을 강행했다가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렸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에 이렇게 배우인생이 끝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죽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변명도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라이브이고 그게 관객과의 약속이니까. 배우가 아프거나 슬프다고 해서 미룰 순 없는 거지. 난 신도, 로봇도 아닌 인간이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하려 해도 용서가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무대 위에서 살아왔음에도 그는 “지금도 무대에만 서면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대(연기)라는 건 나 아닌 또 다른 존재가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건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어요. 무대 위에서 나를 완전히 잊고 다른 사람이 되어 혼신의 연기를 펼칠 때지.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더니) 그럴 때는 신인지, 어떤 영혼인지 모르지만 날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 것 같아요.”
1966년 극단 ‘자유’ 창립동인인 그는 20·30대 젊은 시절에도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흰 가발을 쓴 채 강인한 어머니나 할머니를 주로 연기했다. 무당과 같은 강한 조역도 그의 차지였다. 곱상하지 않은 얼굴과 톤 낮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초기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1970), <피의 결혼>(1982)에서도 어머니를 연기했다. 주역은 아니지만 배우 박정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작품들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40대 초반까지 노역과 조역으로 점철된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덕분에 배우로서 폭을 더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제 나이를 찾아준 작품은 <위기의 여자>(1986)다. 22년간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여성이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절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극평가그룹상까지 거머쥐었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그는 직접 기획한 <내사랑 히로시마>(1993)와 <11월의 왈츠>(1994), <19 그리고 80>(2003)으로 소원을 풀었다. <11월의 왈츠>는 평범한 중년여성이 20세 연하의 남자와 불같은 밀애를 하는 내용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여든살이 될 때까지 출연하겠노라 공언한 <19 그리고 80>은 80세 노인과 19세 청년의 플라토닉한 로맨스를 그린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그냥 흘러가는 거예요.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지.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사랑은 해야 해요.”
출연작 중 최고의 연기로 그는 <페드라>(1999)를 꼽았다.
“1962년 <페드라>를 할 땐 왕비의 시녀역을 맡았는데 언젠가는 꼭 페드라 왕비를 하겠다는 한이 있었어요. 그걸 37년이나 지나서야 풀었지. 근데 나 참 잘했어요(웃음). 적어도 내 생각엔 ‘이 페드라 연기는 박정자 아니면 아무도 못해’라는 생각이 있지. 이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본 거야.”
‘관객의 갈채’야말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는 박정자. 인터뷰가 끝난 후 <어머니의 노래> 리허설을 하러 간다며 분주히 발길을 옮기는 그에게서는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여배우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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