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물같이 바람같이 흘러간 ‘나만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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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8.11 15: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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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7번국도를 따라 삼척을 달렸다. 이 길엔 지금 ‘낭만 가도’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어있다. 길 따라 크고 작은 항·포구와 해변들이 빽빽하다. 8월 둘째주 휴가의 절정기인데, 사람들은 전부 해운대나 경포대에만 모여있는 걸까. 자그마한 해변들은 한적했다. 바다 위론 기암괴석 갯바위가, 바위 위론 암석을 뚫은 낮은 소나무가 고고했다. 이 중 고포·신남·갈남·부남 네 곳의 해변을 추천한다. 혹 해변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옛 7번국도로 내달리다 내키는 데로 들어가 좋은 곳에 눌러 앉으면 될 일이다.
시작은 삼척 맨 아래 끄트머리에 매달린 고포해변. 여기부터 삼척항 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포해변은 강원도 삼척 쪽에서 경북 울진 방향으로 달려오는 해안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돌연 나타난다. 크기가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만하다. 해변엔 서너 가족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민박집마다 돌미역을 판다는 팻말을 붙여놨다. 고포 자연산 돌미역은 유명하다. 이 지역은 물이 맑은데다 수심이 얕다. 햇빛이 물 속 깊이까지 닿아 좋은 돌미역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다.
재미있는 건 해변을 품은 고포마을이 두 개의 도(道)로 나뉜다는 사실. 마을의 한 민박집 할머니가 말한다. “저기 골목 있지요. 거기서 이쪽은 삼척이고, 저쪽은 울진이고. 그래도 동네 사람들끼리는 사이좋게 잘 지내지.” 마을의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2리, 남쪽은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6리다. 문패 주소도, 전화 국번도 다르다. 바로 앞집 이웃에게 전화를 걸 때도 시외 전화를 해야 한다. 해변 뒤쪽으론 철조망과 초소가 보인다. 1968년 울진·삼척 지역 무장공비가 상륙했던 곳이다. 동해의 비경을 간직한 해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곳도 군사지역으로 여름철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개방한다. 이 때문에 야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포해변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5분 거리에 월천항과 월천해변이 있다. 달빛이 아름다워 월천(月川)인데, 달빛보다 유명한 것이 솔섬이다. 2007년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가 찍은 사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호산천과 동해가 만나면서 이룬 작은 섬 위에 소나무들이 단정하게 줄지어 서 있는 풍경. 사진의 고즈넉한 풍광과 달리 지금은 거대한 크레인들이 배경을 잠식했다. 한국가스공사 LNG 생산기지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로 위쪽 호산 해변은 아예 없어졌다. 월천 해변 역시 없어진 거나 다름없다. 크레인과 포클레인을 보면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마이클 케냐의 사진 덕분에 솔섬만은 살았다고 하는데, 더 이상 예전의 솔섬이 아니었다. 황량한 미래에 잘못 도착한 장옷을 두른 아낙같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신남항으로 향한다. 신남항엔 외국인들도 종종 찾는 이색 공원이 있다. ‘남근 조각공원’인 해신당공원. 신남항의 한 슈퍼 입구엔 이렇게 쓰여있다.
‘신남의 명물 남근 팝니다.’
대체 무엇을 파는 걸까. 아주머니가 가게 뒤편에서 빨갛고 조그마한 상자를 가져온다. 주름진 손이 비밀의 뚜껑을 연다. 그 안엔 은으로 만든 남근 모양의 작은 열쇠고리가 담겨있다. “기념품으로 많이들 사가요. 이게 복을 상징한다고.”
공원 안엔 크고 작은 남근이 가득하다. 1999년 남근조각대회를 연 모양인데 36명이 만든 18개 작품이 다양한 모습으로 서 있다. 신남마을에는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 민속이 전해져내려온다. 옛날 신남마을에 애랑이라는 처녀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애바위에서 해초를 캐다가 거센 풍랑으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 애랑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이후 고기가 잡히지 않자 나무로 남근 모형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랬다 한다. ‘애바위 전설’이다. 해신당 공원의 절벽 바위 위엔 지금도 매년 제사를 지내는 해신당이 있다.
남근 조각에 정신을 빼앗길 무렵,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난다. 해신당 공원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해변이다. 소나무 숲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고, 그 앞 바다엔 바위산 봉우리들을 축소해놓은 듯한 크고 작은 갯바위들이 솟아있다. 많은 이들이 조각들만 보고 웃으며 돌아간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는 많지 않다. 물놀이는 힘들지만, 바위 사이 숨은 곳에 자리를 잘 잡으면 ‘나만의 해변’을 즐길 수 있다.
신남항 바로 위쪽에 붙은 갈남항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라면 휴가를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 작은 어촌으로 옛 바닷가 마을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마을 끄트머리에 붙은 작은 해변에는 금강산 미니어처를 옮겨놓은 듯한 갯바위들이 모여있다. 아름답고 물놀이 하기도 좋다. 물이 맑아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데, 크고 작은 바위 주변으로 물고기들이 오밀조밀 헤엄친다. 파도도 없고 수심이 얕아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다. 아빠가 물 속에 손을 넣어 성게를 잡고,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더니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까서 먹는다.
“알은 없네요. 근데 맛있어요.”
갈남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바다 속 암석이 그대로 비친다. 삐죽삐죽한 윗부분만 수면 위로 튀어 나와있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갈매기가 사는, 해송으로 뒤덮인 바위섬 ‘월미도’도 보인다. 전망대는 해돋이와 해넘이 풍광이 예뻐 많은 사진쟁이들이 몰리는 곳이다.
마음 속 하이라이트는 부남해변. 부남해변은 일단 들어가는 길이 기대를 증폭시킨다. 7번국도 바로 곁에 붙어있는 다른 해변과 달리 이곳은 마을길을 한참 달려 산길을 넘어야 닿을 수 있다. 예전에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간판도 없는, 말 그대로 ‘숨은’ 해변이었다는데 지금은 도로 변에 새로 만든 ‘부남 해변’ 표지가 세워져있다.
표지를 따라 들어가 마을 논길을 지나 시멘트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 가다보면 ‘부남 해수욕장’이라는 손글씨 간판이 보인다. 산속 작은 오솔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좁은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비로소 해변이 빼꼼히 보인다.
철조망 문을 열고 들어가는 해변은 여전히 ‘숨은 느낌’으로 가득하다. 뒤쪽으로 철조망과 초소가 이어지고, 바닷가 갯바위 위엔 성황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지금도 이곳에서 3월과 10월 초하루 일년에 두 차례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모래는 흰 규사로, 다른 곳에 비해 곱다. 수심이 얕아 물놀이 하기도 좋다. 백사장엔 먹을거리를 팔고 그늘막과 튜브도 빌려주는 천막 하나와 간이 샤워장이 있을 뿐이다. 17가구 남짓한 부남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곳을 지킨다.
“예전엔 인근 마을 사람들이 땀나면 멱 감으러 오는 마을 해변이었죠. 동막 초등학교, 근덕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때마다 소풍 오는 곳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입소문이 나서 외지에서도 많이들 와요.”
곧 퇴근하려고 그날 벌어들인 돈을 세고 있던 한 마을 주민이 말했다. 한적한 해변엔 주민들이 미리 쳐 놓은 그늘막이 즐비했는데 “1시간만 빌려도 1만원, 하루 종일 있어도 1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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