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반공극 선입관 벗고 인간의 본성 감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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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6.10 13: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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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5주기 연극 ‘산불’ 연출 임영웅·주연 강부자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칭송받는 고 차범석(1924~2006)의 <산불>이 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 올랐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남자는 모두 죽거나 떠나고 여자들만 남은 산골 과부마을에 탈영한 인민군 ‘규복’(조민기)이 내려오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애욕을 세밀히 묘사한 작품이다. 규복을 ‘점례’(서은경)가 숨겨주고, 이를 눈치챈 ‘사월이’(장영남)가 규복을 나눠가지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진순 연출로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했으며 이번 공연은 차범석 5주기를 기념해 제작됐다. 8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답게 무대는 수려하고, 메시지는 강렬하다. 특히 바람에 일렁이는 대나무숲, 붉게 타들어가면서 객석까지 번지는 매캐한 연기 등은 극의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임영웅(77)과 점례의 시어머니인 ‘양씨’ 역으로 출연 중인 강부자(70)를 지난 2일 만났다. 임영웅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반공극으로 둔갑했던 <산불>의 진정한 의미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분은 여러모로 <산불>과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1970년 서울에서 제37차 세계작가대회가 열렸어요. 이를 기념해 연극협회는 해외작가들에게 한국 대표 연극으로 <산불>을 보여주기로 했고, 젊은 연출가에게 한번 맡겨보자는 마음에서였는지 차범석 선생이 제게 연출을 요청했어요. 이후 72년, 2005년, 2007년에도 <산불>을 연출했으니 이번까지 모두 5번 인연을 맺었네요. 그 중 제가 강부자씨와 함께 한 건 2005년부터 3번째죠.”(임영웅)
“62년 3월 KBS 공채 탤런트로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어요. 차범석 선생님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산하의 두번째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청기와집> 출연 요청을 받았죠. 그 길로 전 산하 단원이 됐어요. <산불>과 첫 인연을 맺은 건 67년이에요. 처음엔 사월이 엄마인 최씨 역으로 출연했다가 세번째 공연부터 양씨 역을 맡았죠. 제 나이 20대였지만 젊은 점례나 사월이 역은 꿈도 안 꿨어요.(웃음) 이번이 5번째 출연이에요. 전 죽을 때까지 이 작품만은 계속 하고 싶어요.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데다 차 선생님을 추억할 수 있는 무대니까요.”(강부자)
차범석 이야기가 나오자 강부자의 눈이 젖었다. 그리움이 차오르는 듯했다. 그는 “차 선생은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분으로 ‘엘토 같은 목소리’라며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다”고 회상했다.
-60~70년대엔 <산불>이 반공극으로 홍보된 것으로 아는데요.
“61년 5·16으로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이 좌익정권이라는 오해가 있었어요. 당시 주모자들이 ‘반공’을 국시로 내건 것도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죠. 삼엄한 시국에서 이 작품을 올리려니까 당시 국립극장 스태프들이 공연 캐치프레이즈로 반공을 내세운 것 같아요. ‘빨치산의 말로는 죽음이다’ 뭐 이런 식으로 홍보한 거죠. 한데 실제 차 선생 희곡의 의도는 그게 아니잖아요. 전쟁이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말살시키는가와 한국의 여인네들이 어떻게 모진 고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서 오늘날까지 왔는가가 핵심이죠. 이번 공연이 6·25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임영웅)
-연출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뭔가요.
“이 작품이 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교과서인가를 이번에 새삼 깨달았어요. 희곡의 맨 앞부터 끝까지 사실주의 기법이 빼곡히 차있거든요. 차 선생 희곡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무대화한 이유예요. 비극임에도 요소마다 웃음코드가 들어있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에요. 삶이 힘들다 해서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 작품은 울고 웃는 가운데 ‘인생이 그런 것이구나’를 일깨워주죠. 또 이번 공연은 제작자의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으로 무대 메커니즘을 총동원했어요. 대나무밭 조성을 위해 무대 위에 대나무를 600여 그루나 세웠고 눈 내리는 장치도 설치했죠.”(임영웅)
<산불>은 초연 때 국립극장 현관 유리창이 박살났을 정도로 관객이 몰렸다. 당시만 해도 번역극이 주류를 이뤘고, 창작극은 흥행이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는데, 이를 <산불>이 깼다.
임영웅은 “<산불>로 인해 창작극도 잘 쓰고 잘 만들면 관객이 든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실제로 이 작품을 계기로 한국에 본격 창작극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산불>은 이후 김수용 감독에 의해 두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비롯해 오페라, 창극, 뮤지컬 등 다른 장르로도 완성됐다. 이는 <산불>이 지닌 작품성, 대중성을 방증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배우들이 대다수여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 단원들은 6·25를 전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치가 떨리는 일인지 아느냐고 말해주곤 했죠. 이런 연극은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 젊은이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일깨워주고 교훈을 주면 좋겠어요.”(강부자) 26일까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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