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삐딱이들의 외침, 보이는 듯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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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6.03 15:50:35
  • 조회: 12241

 

 

비트 세대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올지 모르겠다. ‘히피’는 어떤가. ‘목적 없는’ 방랑이 저항이었던 이들. 전후 미국 사회를 냉소하고 기성 가치를 거부하며, 의식의 경직에서조차 해방되기 위해 약물을 탐닉했던 이들. 샌프란시스코는 후에 세계적으로 거대한 히피 운동을 이끈 비트 세대가 태어난 곳이다. 이들 때문에 ‘반문화(카운터 컬처)’라는 말이 생겨나야 했고, 이어 ‘하위문화(서브 컬처)’,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가 이어졌다. 비트 세대의 태동을 알린 시인 앨런 긴즈버그, 비트 문화의 경전 <길 위에서>를 쓴 소설가 잭 케루악, 비트닉의 전선에 섰던 <네이키드 런치>의 작가 윌리엄 버로스, 히피 아이콘 재니스 조플린…. 샌프란시스코엔 금문교나 오래된 케이블카 말고도, 이들이 방랑하고 시를 읊고 노래하던 길과 책방과 카페가 있다. 그 길 위에서, ‘목적을 갖고’ 헤매려니 민망한 기분이었다.
비트닉의 사랑방, 시티 라이츠 서점과 베수비오 카페
1955년 10월7일 샌프란시스코 필모어 스트리트 ‘식스 갤러리’. 취기가 오른 앨런 긴즈버그는 연단에 올라 역사적인 시 ‘울부짖음(Howl)’을 읊었다. “최고의 정신을 가진 내 세대가 광기로 파괴되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로 시작되는, 약물과 동성애에 대한 함의로 가득 찬 원초적인 시. 그 자리에 후일 ‘비트 세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잭 케루악과 닐 캐서디가 있었다. 비트 세대가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시티 라이츠 서점은 노스 비치, 차이나 타운과 인접한 곳에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 마을이다. 1953년 그 자신 비트 시인이었던 로렌스 펄링게티가 세웠고, 급진적인 문화 서적을 다루며 비트닉의 거점이 된 곳이다. 특히 56년 앨런 긴즈버그의 시 ‘울부짖음(Howl)’의 출판을 강행하면서 비트 문화의 성지가 됐다. 이 시집은 당시 불온서적이 됐는데, 이 때문에 로렌스 등 많은 서점 관련 인물들이 법정에 서기도 했다. 1층, 2층으로 나뉜 이곳엔 아시아, 히스패닉 등 다양한 문화권의 서적들이 많다. 특히 시가 비트 문학의 중심이 되었던 만큼, 2층은 ‘시의 방’으로 되어 있다. 비트 문학만 모아 놓은 코너도 있다. 서점 곳곳에는 ‘민주주의는 구경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곳은 책을 파는 도서관입니다’ 등의 문구와 당시 작가들의 오래된 사진이 걸려 있다. 그렇다고 한물간 박물관이 돼 있는 건 아니다. 시티 라이츠는 여전히 새로운 형태의 독립출간을 지원하는 출판사이고, 다양한 문화인들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점 바로 옆길에는 ‘잭 케루악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파티스타 벽화가 그려져 있고, 바닥에 잭 케루악의 문구도 새겨져 있다. 옆엔 ‘베수비오 카페’가 있는데, 잭 케루악과 그 친구 비트닉들이 매일같이 모이던 아지트라고. 서점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면 이곳에 앉아 커피나 술 한잔해도 좋겠다. 근처엔 ‘비트 뮤지엄’이 있다. 잭 케루악의 그 유명한 ‘두루마리’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흥분했지만, 박물관은 다소 조악했다. ‘두루마리’란 것은 잭 케루악 <길 위에서>의 원본이다. 타자지를 길게 이어 붙여 만든 40m 길이의 종이. 약물의 힘으로 잠도 안 자고 3주 만에 일필휘지로 완성했다는 비트 세대의 교과서. 잭 케루악이 입었던 체크무늬 재킷과 앨런 긴즈버그의 오르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히피 공동체, 헤이트 애슈베리
헤이트 애슈베리 지역은 후일 ‘히피’로 알려진 이들이 1960~70년대 모여 살던 곳이다. 60년대 초반 젊은 세대의 비트닉들은 노스 비치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후 이들의 운동은 반전·평화 운동 등으로 확대된다. 이때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은 히피 운동으로 넘어왔고, 잭 케루악 등은 뉴욕으로 돌아갔다.
이곳이 유명세를 탄 건 67년 초 골든게이트 파크에서 열린 ‘휴먼-비-인’ 행사 이후. 수만명의 히피들이 꽃을 달고 이곳에 모여들었다. 특히 앨런 긴즈버그가 반문화 인사의 중심으로 언론에 알려졌고 세계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됐다. 몇 달 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려들게 된다. 같은 해 ‘사랑의 여름’ 행사가 열리고, 번성하던 히피 문화는 60년대 말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점점 범죄와 노숙인들이 넘쳐나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 67년 10월 ‘히피의 죽음’이라는 장례식 행사가 열리게 된다. 이후 70년대까지 많은 히피들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선 ‘유사 히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픽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 드레드를 땋고 기타를 연주하는 청년, 개를 끌고 피어싱을 한 무리…. 길을 따라 담배, 타투, 빈티지 옷, 낡은 카페들이 늘어서 있어 구경거리도 많다. 많은 히피들이 모여들었던 헤이트 애슈베리 코너엔 ‘벤 앤 제리스’ 프랜차이즈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이 길을 오가며 연주했다는 그레이드풀 데드(710 Ashbury St.)와 제니스 조플린(112 Lyon St.)의 옛집도 볼 수 있다.
언더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또 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코믹스 익스피리언스’라는 만화가게다.
60년대 이 지역에 건너온 많은 천재 예술가 중 하나였던 로버트 크럼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운동을 일으켰다. 그때 만든 게 ‘잽 코믹스’라는 개인 만화잡지. 머리에 비해 거대한 손발을 가진 ‘빅 풋 스타일’의 그림과 ‘미스터 내추럴’ ‘고양이 프리츠’ 등 캐릭터는 당시 히피 문화의 아이콘이 되다시피했다.
코믹스 익스피리언스는 22년간 이 자리에 있던 유서 깊은 만화가게다. 언더그라운드 소규모 출판물부터 성인물, 일본 망가와 최신 만화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스물한 살 때부터 이곳을 지켰다는 주인 브라이언 힙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훌륭한 만화숍이라고 자부한다”며 여전히 거기 앉아 있었다. 지금 로버트 크럼의 만화는 절판됐고, 임프린트 간행물을 팔고 있다. 미국을 혐오하는 그의 만화는 지금 봐도 여전히 급진적이다.

● 샌프란시스코는 여름에 쌀쌀하다. 요즘은 이상기온으로 더 춥다고 한다. 한동안 샌프란시스코에 살았던 마크 트웨인이 “내가 경험한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
여름에도 긴팔 외투를 꼭 준비하자. 비바람이 치면 우산도 소용없으니 모자 달린 바람막이 점퍼도 있으면 유용하다. ● 시티라이츠 서점(City Lights Bookstore)=노스 비치 지역, 차이나타운에 인접해 있다. 주소는 261 Columbus Avenue. 바로 옆에 베수비오 카페가, 비트 뮤지엄(입장료 5달러)은 서점 대각선 맞은편에 있다. 찾기 쉽다.
● 헤이트-애슈베리(Haight-Ashbury)=시티라이츠 서점에서 컬럼버스 애비뉴를 따라 마켓 스트리트까지 내려오면 헤이트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헤이트 스트리트와 애슈베리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을 ‘헤이트-애슈베리 코너’라고 부른다.
슬슬 걸어서 근처 부에나비스타 파크, 코로나 하이츠(Corona Heights)에도 가보면 좋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원시림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나무와 새와 꽃들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 코믹스 익스피리언스(Comix-Experience)=주소는 305 Divisadero St. 헤이트 애슈베리에서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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