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황허문명 발상지 중국 산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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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6.02 14: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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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황허문명의 발상지이자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진나라의 융성과 함께 중원의 상업을 주도한 진상(晉商)의 본거지였다. 중국 최초의 은행과 상거래가 태동한 곳이었고, 긴긴 세월 천하를 평정하여 대업을 이루려는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신선들이 노닐고 있을 듯한 멘산(綿山), 마오쩌둥 시절 문화대혁명에도 명·청대 건물과 생활양식을 간직한 고성 마을과 왕씨가 가문을 일으킨 구중궁궐과도 같은 집 왕자다위안(王家大原)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수록 더 신비롭고 다가갈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비행기로 두 시간여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그간 한국인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을 더 깊게 알고, 풍경을 넘어서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더 깊은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매 순간 흥미진진한 곳이 또한 산시성이다.
성도 타이위안에서 남서쪽으로 170㎞쯤 달리면 하늘 높이 솟은 기암을 삼림이 뒤덮고 긴긴 협곡을 따라 하늘을 향해 오르는 듯 심산으로 들어가게 되는, 최고봉 2566m인 멘이 나그네들을 품는다. 교통이 발달한 현대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쉽게 오를 수 없는 곳으로, 그 옛날 제나라 개자추가 문공을 옹위하는 대업을 이룬 후 벼슬을 거부하고 은둔하며 지냈던 바로 그곳이다. 개자추를 만나고 싶었던 제 문공 일행은 멘산에 불을 놓았고, 개자추는 나무를 끌어안은 채 불에 타 최후를 맞이했다. 산책로를 따라 해발 1800m에 오르면 개자추의 무덤이 있고 또한 그를 모신 개공사당이 크게 들어서 있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생긴 한식절을 지키는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준다.
또한 2차대전 중 일본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폐허에서 발굴해낸 등신불을 모신 윈펑스(雲奉寺)와 정궈스(正果寺) 등도 둘러볼 만하다. 절벽의 굴 속에, 또 하늘을 향해 가는 길인 천교의 끝에 세워진 산사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도교의 신을 모신 거대한 다뤄궁(大羅宮)을 둘러보며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한다.
멘산 풍경구에서 식사 때마다 나오는 면요리는 이곳이 누들로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왕자다위안은 이곳에 정착한 왕씨 형제가 두부장사로 시작해 큰 돈을 벌어 가문을 일으키며 1796년 완성한 집으로, 총 25만㎡ 중 현재 4만㎡를 개방했다. 집이라기보다 커다란 마을과도 같다. 각 건물채 사이에 임금 왕(王)자로 큰 길이 나 있고, 집안 곳곳의 문양에 걸려있는 부조와 조각은 지혜로운 자녀가 문예에 통달해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하고 또한 효를 잊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소망이 새겨져 있다. 방문객들은 세월을 뛰어넘는 그의 지혜와 교감할 수 있다. 멘산과 타이위안시 사이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핑야오구청(平遙古城)은 명·청대의 건물과 생활양식을 간직한 고성마을. 공자의 제자 72명과 같은 72개 옹성을 두르고 그 정신을 함양한 위용을 과시한다. 밤늦게까지 홍등이 밝혀지고 북적이는 길을 걷다 보면 2500년의 세월을 초월해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청대에 생겨난 중국 최초 근대적 은행 리성창(日昇昌)과 황제가 직접 와서 점을 봤다는 도교 사당 등 그 존재 자체가 박물관인 수많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각종 기념품과 먹을 것을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고, 전통가옥 객잔에서 묵는 밤은 옛 정취와 달빛에 취해 흥겹다.
산시성이 가진 4000년간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기에는 짧은 여행길이 아쉽다. 10월까지 인천~타이위안 직항 전세기가 취항해 산시성에 다가가기가 한결 편해졌다. 산시성의 날씨는 꽤 건조하고 더운 편이라 대비가 필요하다. 멘산 풍경구 내 각 점포는 정찰가를 지키도록 엄격히 관리된다. 멘산과 핑야오의 가무쇼는 놓치기 아쉬운 밤의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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