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게이, 벽장문을 열고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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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5.31 16:20:26
  • 조회: 802

 

 

정한씨(43·애칭 마님)와 재완씨(39·애칭 재경)는 게이 커플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먼 길을 오가며 만나다 4년 전 살림을 합치면서 ‘동반자’가 되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직장인이자 ‘친구사이’의 대표인 재완씨는 퇴근 후 많은 시간을 정한씨와 함께 보낸다.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한 이 커플은 길을 걸을 때면 다정히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다. 주위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무뚝뚝한 정한씨와 애교가 많은 재완씨는 여느 이성의 부부처럼 삶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여서 행복하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면 마냥 행복해할 수도 없는 것이 게이의 현실이다. “동반자에게 어떤 불행이 생길 때 보호자도 될 수 없어요. 이성애자처럼 결혼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혜택과 보호를 전혀 누릴 수가 없습니다.”
법과 제도에서 배제된 성소수자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다. 주말,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 인근은 말 그대로 게이들의 ‘해방구’였다. 어둠이 내리면 남성 동성애자들이 사랑을 찾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몰려든다.
이성애가 보편이고 주류인 사회에서 자신을 숨기며 반쪽인생을 살아가던 이들의 ‘게이라이프’가 펼쳐진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잘 차려입은 남성들이 각자의 연인을 만나 가벼운 포옹을 나눈 뒤 네온사인 불빛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양한 소모임과 동호회 등에 참여한 게이들이 시끌벅적 무리지어 차도를 가로질렀다.
낙원동의 밤, 길과 골목의 주인은 게이들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포장마차와 바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
한잔 술에 사랑을 속삭이고 우정을 나눈다. 고단한 삶을 서로 보듬고 위로하는 가운데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정체성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게이바 ‘ㅍ’에서 만난 한 동성애자는 “왜 하필 동성애냐고 묻지만, 왜 이성애자인가를 고민해 봤는지”를 되물어왔다.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읜 그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결국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위에 계시니 아시겠지요.” 씁쓸히 술잔을 들었다.
국내 유일의 게이 합창단 ‘G_Voice’가 지난 15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을 기념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거리공연을 가졌다. 개방된 장소에서 하는 첫 공연이기에 용기 내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을 대상으로 “나, 게이예요” 하는 커밍아웃인 셈이다.
“…벽장 속에서/절망인 줄 알았네/그러나 용기 내어 문 열었을 때/나는 깨달았네/혼자가 아니란 걸/이제는 당당하게 맞서야 할 때/달라도 같은 세상 만들기 위해/달라서 더 행복한 삶 누리기 위해…”(노래 ‘벽장문을 열어’ 중에서) 팍팍한 현실에서 희망과 행복을 노래했다. 춤을 곁들인 노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긴 박수를 보냈다.
일상에서 게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우리 사회가 이들을 ‘벽장’ 안에 가둔 채 거짓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커밍아웃’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살고 싶다’는 강력한 표현이기도 하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내미는 그 손, 이 사회는 잡아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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