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경북 봉화 청량사·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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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5.27 13:45:40
  • 조회: 11789

 

 

유산(遊山). ‘산에서 노닐다.’ 흔히 이야기하는 등산(登山)과는 다른 개념이다. 산을 올라 정복하는 게 아니라, 산 곳곳에서 노니는 것. 퇴계 이황은 청량산에서 유산했다. 13살에 청량산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15살, 25살, 33살, 55살, 64살까지 여섯번 입산했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과 줄곧 마음을 나누었는데,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란 그의 시에서 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독서인설유산사(讀書人說遊山似)/ 금견유산사독서(今見遊山似讀書).’
즉, ‘독서가 유산같다 말하지만, 이제 보니 유산이 독서같다.’ 그는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걸어다니며 글을 지었고, 우리도 지금 그 길을 걸어볼 수 있다. 경북 봉화에 다녀왔다. 1500년대 사람인 퇴계가 걷던 길을 걸어 청량산 품의 청량사에 가고, 650년 된 농암종택에서 잠을 청했다.
■ 청량사
청량산은 선비같다. 아름다운 봉우리가 줄을 이어 늘어섰는데, 그 모양새가 군더더기가 없으며 기품있고 청아하다. 청량사는 ‘선비의 산’ 청량산 품에 폭 안겨있다. 오르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청량사의 얼굴을 보고 곧장 들어가는 짧은 포장길, 다른 하나는 청량사의 옆모습과 전체적인 윤곽을 더듬으며 돌아갈 수 있는 등산로(‘입석’에서 출발)다. 후자를 추천한다. 오르는데 40분 정도 걸리지만, 이곳으로 오르면 응진전, 어풍대, 청량정사(일명 오산당)를 거쳐 갈 수 있다.
과거엔 청량산에 33곳의 크고 작은 암자가 골짜기마다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불경 읽는 소리가 온 산에서 쉼없이 울려퍼졌다. 청량산이 청량사요, 청량사가 곧 청량산인 셈. 응진전은 뒤로 거대한 금탑봉을 두고 있는 작은 암자다. 그 안에는 고려말 노국공주가 모시고 기도정진했다는 16나한상도 익살맞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어풍대가 나온다. 고대 중국의 열어구라는 인물이 바람을 타고 보름 동안 놀다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과연 바람을 타고 떠다니며 노닐고픈 곳이다. 이곳에 서면 청량사 전경도 한눈에 들어와 쉬어가기 좋다.
청량정사는 1832년에 사림들이 퇴계를 기리는 뜻으로 그가 공부하던 곳에 지은 건물이다. 이후 퇴계를 기리는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 와 학문을 했고, 1896년에는 의병투쟁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고. 조금 더 걸으면 청량사가 나온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약사여래가 모셔진 유리보전을 제외하곤 1990~2000년대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가람 배치가 위압적이지도, 소박하지도 않게 잘 정돈돼있어 어느 산사보다 ‘산사’의 느낌이 짙다. ‘산사 음악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꼽는 청량사 풍광의 백미는 5층석탑이다. 유리보전 쪽에서 바라보면 탑이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 사이에 둥둥 떠있는 듯하다.
■ 농암종택
청량사를 뒤로 하고 낙동강변의 농암종택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농암종택은 퇴계의 ‘도산 12곡’과 윤선도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주었다는 ‘어부가’를 지은 조선의 문호, 농암 이현보가 살았던 곳이다. 이 일대는 마치 신선이 ‘지상낙원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면서 슥슥 그려놓고 떠난 곳 같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굽이치는 낙동강변에 옛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택 몇 채가 늘어서 있다. 나는 본채에서 홀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작은 정자집인 ‘명농당’이란 곳에서 잠을 잤다. 이곳은 한양에서 관직을 지내던 농암이 44살이던 1501년 고향을 그리워하며 잠시 돌아와 지은 작은 집이다. 이 집 종손인 이성원씨가 흰 모시저고리 차림으로 마중나와 나를 흘끗 보더니 “저기 작은 정자집이 어떨까요” 라며 골라주었다. 그리고는 “저 쪽 끝의 애일당엔 70대 교수님들 아홉분 정도가 단체로 와 계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애일당 앞에 가보니 ‘농암은 부모를 위해 애일당을 짓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포함한 아홉 노인을 모시고 색동옷을 입은 채 어린애처럼 춤을 추었다’는 글이 써 있다. 명농당에서 잠자는 30대 청년과 애일당에서 지내는 아홉 노인. 죽은 고택이 돌연 살아난다.
■ 그리고 그림 속으로, 퇴계녀던길
퇴계녀던길은 도산서원에서 퇴계종택, 단천교, 학소대, 농암종택을 거쳐 청량산 부근의 월명담, 고산정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퇴계는 공부하러 가기 위해 청량산까지 오십리길을 걸었다고 한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 쪽을 바라보고 줄곧 강을 따라 걷는 길. 퇴계는 이 길을 ‘그림 속’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자신을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농암종택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퇴계가 걷던 방향과 반대로 농암종택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걸었다. 청량산 육육봉, 고고하게 뻗은 학소대 절벽, 옥빛 소를 이룬 미천장담, 강약을 달리해 흐르는 강물, 발 앞의 각종 야생화와 푸른 나무, 강물에서 물고기 낚는 강태공…. 길은 흙이다. 풍경은 줄곧 이어지면서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월명담과 고산정도 빼놓으면 안 된다. 월명담은 강이 급히 꺾이는 곳에 자리한 깊은 소, 고산정은 절벽 아래 아름답게 앉아 있는 정자다. 두 곳 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고요하기 짝이 없다. 농암 17대 종손 이성원씨가 쓴 책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에 보면 퇴계가 청량산 유산에서의 열두 가지 일을 시로 표현한 내용이 나온다. ‘먼저 입산에 해당하는 등산, 바람을 만나는 치풍(値風), 달을 구경하는 완월(翫月), 나그네에 감사하는 사객(謝客), 농부를 위로하는 노농(勞農), 도를 논하는 강론(講論), 사람을 생각하는 회인(懷人), 금강산 유산을 거절한 권유(倦遊), 책을 읽는 수서(修書), 앉아 사색에 잠기는 연좌(宴坐), 그리고 산을 내려오는 하산과 집에 돌아오는 환가(還家)가 그것이다.’ 봉화에 가면 의외로, 노농과 권유를 빼곤 모두 할 수 있다.


● 청량사(054-672-1446)=영동고속도로-남원주IC-중앙고속도로-풍기IC-영주 시가지-봉화 방면-봉화 삼거리-좌회전(태백 방향)-오른쪽 제일주유소에서 영양 방향 우회전-봉성 읍내-안동방향-청량산 매표소. ● 농암종택은 청량사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다. 주소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올미재 612. 휘돌아가는 낙동강변에 위치한 가송리는 일대가 수려하다. ● 퇴계녀던길은 도산서원에서 농암종택 부근 고산정까지 전체 18㎞에 달한다. 이 길을 다 걸으려면 힘들다. 추천 코스는 단천교-녀던길 전망대-미천장담-학소대-농암종택. 3㎞, 왕복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 농암종택(054-843-1202)에서 하루 묵기를 추천한다. 강변 풍경이 아름답다. 수세식 화장실도 갖춰져 있다. 원할 경우 식사도 제공(1인 6000원).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근처에 숙박업소가 많다. 황토방민박(054-673-9777), 하늘정원펜션(054-674-2552), 청량산모텔(054-674-2267) 등. ● 먹을거리도 청량산 입구에 많다. 까치소리 식당(054-673-9777)의 간고등어 정식 9000원, 더덕정식 8000원, 오디차 4000원. 나분들식당(054-673-5450), 청량산식당(054-673-2560) 등.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의 봉성돼지숯불구이촌에도 가볼 만하다. 솔잎에 얹어 숯불에 구워 담백한 돼지고기가 다 구워져 나온다. 원조희망정숯불구이(054-672-9046) 돼지숯불구이 7000원. 양은 좀 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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