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의학] 막걸리에 항암물질이 있다는데… ‘막 걸러’ 듣지 말고 ‘잘 걸러’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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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5.19 15:38:50
  • 조회: 1123

 

 

다시 막걸리가 난리다. 막걸리 인기가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최근 막걸리에서 항암물질(?)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방송인 손석희씨도 그 뉴스가 나온 날 막걸리를 마셨단다. 이런 뉴스가 전통주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막걸리는 좋은 술이다. 그런데 ‘좋은 술’이라는 말은 형용모순 아닌가? 음주는 매우 많은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1급 발암물질(발암요인) 리스트에도 당당히 들어있다. 알코올 대사로 만들어지는 아세트알데히드도 2급(2B) 발암(가능)물질이다. 그러므로 술은 단언컨대 나쁘다. 어디에? 건강에.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반론도 있지만 상당히 과장된 이야기다. 술도 좋은 점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무게추는 나쁜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나쁜 술을 사람들은 즐기고 있다. 술을 금해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덜 나쁜 술은 상대적으로 좋은 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막걸리가 좋은 술이라는 건 이 정도의 이야기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하지만 많이 마시면 그게 그거) 밥 안 먹고 술부터 마시는 사람에겐 그나마 다른 영양분이 있으니 좋고(하지만 밥 많이 먹고 마시면 살찌기 좋고) 확실하진 않지만 유산균이나 효모가 살아 있어 약간의 정장작용을 해줄지 모른다는 것(하지만 유산균의 양은 아무도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정도다.
막걸리는 독특한 술이다. 발효용 효모를 없애지 않고 그냥 먹는 술은 막걸리가 거의 유일하다. 최근 늘어난 자가(自家) 양조 맥주집의 맥주도 효모를 거르지 않고 먹는 경우가 있지만 제품으로 팔진 않는다. 막걸리는 효모까지 먹다 보니 그 속에 영양성분과 비타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견되었다는 파네졸(방향제 성분)도 주로 효모가 만드는 물질이다. 하지만 그 양은 150~500ppb 정도에 불과하다. ppm(백만분의 1)이 아니라 ppb(10억분의 1)라는 것에 유념하시라.
물론 와인의 항암물질(?)로 알려진 레스베라트롤에 맞서기 위해 막걸리에 파네졸이라는 세일즈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은 레스베라트롤이나 파네졸이나 항암물질이라고 부르기엔 갈 길이 구만리이며 그 양도 너무 적다는 것이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단순당을 효모가 발효만 하는 과정(단발효)을 거쳐 만든다. 반면 막걸리는 곡류 속의 다당류를 곰팡이 효소를 이용해 당화시키고 효모로 발효까지 하는 복발효 과정이다. 그리고 이 당화와 발효를 한 방에 해치워야 하는 병행복발효주이다. 그만큼 복잡하다.
국내 최초로 하우스 맥주집을 열었던 한 후배는 맥주 양조공학 석사(브로이마스터) 학위를 따는데 독일에서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그냥 아무나 만들어 파는 술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발표된 와인 관련 논문은 무려 1000편에 이른다. 막걸리에 대한 논문은? 단군이래 지금까지 나온 논문을 다 털어봐야 150편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막걸리 업체가 700곳이 넘는다는데 전문적인 연구원이 1명이라도 있는 업체가 몇 군데나 될까? 식품의 마케팅 포인트가 꼭 건강일 필요는 없다.
막걸리는 그 자체로 독특한 술이고 전통 음료다.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일본의 사케와 같이 ‘한국의 막걸리’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차라리 막걸리의 독특성, 우리 전통, 관련 문화 쪽을 풍부히 하는 편이 더 정직한 접근일지 모른다. 건강과 관련된 뉴스는 아직 먼 이야기이므로 ‘막 걸러’ 듣지 말고 ‘잘 걸러’ 듣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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