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30년 만에 신곡 ‘울릉도는 나의 천국’ 내놓은 가수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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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5.17 14:15:25
  • 조회: 774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가수 이장희(64)가 지난해 말 TV 토크쇼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 년 만에 세상에 얼굴을 내민 건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옛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의 근황을 풀어놓는 수준이라면 그저 추억나누기로 흘려버릴 일이겠지만, 그의 재등장은 대중문화 흐름의 물꼬를 바꿔놓는 폭풍을 몰고왔다. 지난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세시봉은 그의 등장을 계기로 폭발력을 발휘했고, 이후 포크음악, 복고흐름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나는 가수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나누는 화제의 중심에 ‘음악’이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아이돌 일색이던 대중문화계가 그의 등장 이후 근 10여 년간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들고 있는 셈이다.

내친김에 그는 최근 신곡을 발표했다. 30년 만에 내놓은 신곡은 그의 거처 울릉도에 사는 기쁨과 울릉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다. 서울에 올 때마다 연습실로 사용하는 마리아칼라스홀에서 만난 그는 “노래 한번 들어봐야죠”라며 즉석에서 기타를 잡고 ‘울릉도는 나의 천국’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등 두 곡을 불렀다. “어제 영남이형 방송(라디오시대)에서 틀어줬다는데 반응이 괜찮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시종 “으하하하”하며 유쾌한 너털웃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 TV토크쇼에서 울릉도에 관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하신 약속을 지킨 거네요.
“주민들이 저를 볼 때마다 ‘노래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어요. 그게 채찍질이 된 거죠. 미국에서부터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울릉도에서 4~5년쯤 살다가 죽어서 양지바른 곳에 묻었거든요. 그 옆에 묻혔으면 하는 생각에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주오’하는 가사가 생각났고, 그게 정해지니까 노래가 금방 만들어졌어요. 김광민씨가 녹음해주고 함춘호씨가 기타연주를 해줬지요.”
- 이웃들 앞에서 들려주셔야 할텐데요. “바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그건 힘들 것 같고 돌아와서 올 10월쯤 TV로 단독 콘서트를 할 예정이에요. 오랜만에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하니 참 좋아요. 행복하고…. 제가 30년간 기타를 안 잡았잖아요. 울릉도에 정착하면서 기타랑 키보드를 샀는데, 처음에 조금 퉁기다 보니 손이 아프더라고요. 열흘 이상을 잡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세시봉 콘서트>에 덜컥 나가게 됐으니 어째요. 피 터지게 연습했죠. 김민기도 학전 20주년 공연한다고 무대에 서 달라고 하고…. 한번 손에 굳은살이 생긴 것도 아깝고 해서 요즘은 매일 기타치고 노래해요. 여행갈 때도 기타를 가지고 다닐까 생각 중이에요.”
- 여행은 어디로 가시나요.
“일단 미국에 갔다가 3개월 일정으로 프랑스와 알래스카를 여행할 거예요. 제가 와인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한 20년 동안 연간 300병씩 마셨으니까. 그런데 미국 와인만 마시다 보니 정작 와인 종주국이라는 프랑스 와인은 잘 몰라요. 이번에 여행할 곳도 부르고뉴, 보르도 지역인데 와인투어를 할 계획이에요.”
- 일찌감치 은퇴해서 하고 싶은 일하고, 여행하며 사는 삶은 누구나 꿈꾸는 부러운 삶인데요.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라거나, 엄청나게 돈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은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발을 떼본다는 거지요. 그게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어요. 문제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라 뭘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생각으로 살 것인지가 중요해요. 지금 악착같이 돈 모아서 쌓아놓은 뒤 나중에 여행하겠다는 사람은 그때가 돼도 역시 못 떠나요. 지금부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다니는 것이 중요해요. 나중을 누가 알겠어요.”
- 2004년 울릉도에 정착하신 뒤에 끊임없이 러브콜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세상에 나서기로 결정한 건가요.
“그전에도 계속 거절을 했죠. 그런데 방송국에서 울릉도까지 찾아와 요청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살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게 마련인데, 이때가 그때구나 싶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작정하고 방송에 나간 뒤 바로 미국엘 갔어요. 그런데 계속 연락이 오더라고요. 설날에 맞춰 세시봉 콘서트를 하는데 나와 달라고. 영남이 형이 그래요. ‘야, 네 친구들 다들 예순이 넘었어. 이번이 마지막 공연일지도 모르는데 축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그게 충격이 됐던 것 같아요.”
- <세시봉 콘서트> 후, 많이 바뀌었죠.
“방송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어요. 그때도 거절했더라면 울릉도에서 농사짓고 여행다니고 똑같았겠죠. 울릉도 이웃들은 제가 예전에 가수였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들 역시 제가 이렇게 유명해진 걸 신기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생활리듬도 깨져서 약간 부대끼긴 하는데, 그래도 이 생활이 좋네요. <세시봉 콘서트> 직전 스튜디오에 들어서는데, 각종 장비며, 악기들을 보니 옛날 기분이 확 살아나더라고요. 설레고, 행복하고, 잃었던 포근한 고향에 돌아온 것 같고…. 청춘을 사로잡았던 음악이 지금 저를 다시 사로잡은 거니까.”
- 음악활동을 재개하시는 걸로 봐도 되나요.
“일단 10월콘서트까지만요. 그 뒤는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어요. 대중이 좋아하는 제 노래는 20, 30대의 이장희가 그 당시의 감성으로 만든 노래잖아요. 그래서 60이 넘은 지금의 제 기분, 인생을 살아오면서 떨쳐지지 않는 지금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노래해 보고 싶어요. 제가 다시 노래를 작곡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인생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하는 거예요.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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