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전남 화순 안양산 철쭉동산&운주사 ‘천불천탑’ 언덕 위, 분홍 꿈이 몽글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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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5.13 15:22:09
  • 조회: 11668

 

 

꿈속에 전남 화순엘 다녀왔다. 무등산 자락 안양산의 철쭉동산은 안갯속에 보일 듯 말 듯했고, 비 갠 운주사에선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말을 걸어왔다. 안양산 철쭉 군락지 애초의 목표는 철쭉이었다. 무등산 자락 안양산(해발 853m)이란 곳에 지리산 바래봉이나 합천 황매산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철쭉이 어여쁜 군락지가 있다더라. 게다가 산 중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출발지는 안양산 중턱 해발 450m에 자리잡은 화순읍 수만리 3구 들국화마을. 이곳은 주변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 고산지대다.
민박집 마당에서 멀리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차들이 한눈에 다 보인다. 마을에만 며칠 묵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 길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 표시가 있다. 아침부터 이슬비가 부슬부슬했다. 아래서 올려다본 산봉우리는 흰 안개비구름에 휩싸여 있다. 숲에 들어서자 비를 머금은 여린 봄풀들. 짙고 선명한 연둣빛의 향연이다. 등산로는 나무 계단 등이 잘돼 있지만 꽤 가파르다. 게다가 이슬과 안개비가 내려 조금 미끄러웠다. 민박집 할머니는 “올라가는 사람들 많응께 따라 가면 된다”고 했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말인데도 인적이 없다. 중턱쯤 올랐을까. 숲은 두꺼운 안갯속이다. 초록빛 풀, 구불구불한 나무의 실루엣, 축축한 흙, 그리고 안개. 줄곧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영화 <안티 크라이스트>의 초현실적인 에덴동산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사슴이나 여우가 슬며시 걸어나올 것 같다. 키 작은 야생화 위로 소리 없이 나비가 난다.
1시간 반쯤 걸려 철쭉 군락지가 펼쳐진 정상에 도착했다.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곳은 또 다른 꿈속일까. 정상에 다다르니 시야기 닫힌 숲에서와 달리 사방이 탁 트였는데, 사위가 온통 부옇다. 안개 덩어리가 바람에 빠르게 움직이는 게 눈에 다 보인다. 사람 키 높이의 철쭉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피려다 봉오리를 닫았다. 반은 피고, 반은 닫혀 있다. 그 분홍과 연두의 철쭉 덩어리들, 그리고 그 사이로 가끔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안갯속에 아련하다. 뒤돌아 내려오는 길,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여럿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 “꽃 많이 피었어요?” “꽃 예뻐요?”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천불천탑 운주사 오후, 운주사로 들어가는 길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색색의 연등이 걸려있다. 운주사 앞에는 ‘천불천탑’이란 수식이 붙는다.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었던 사찰. 정확한 창건 시대나 조성 배경 등은 모두 미궁 속인 채, 전설과 신화만이 남아 있다. 1481년 펴낸 <동국여지승람>엔 이런 기록이 있다.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 뜻풀이를 해 보면,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는 것. 지금은 석탑 21기와 석불 100여기만이 남아 있지만,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천개의 불상과 탑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많은 불상과 탑들은 어디로 갔을까? 산속에 널린 게 돌이니,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져다 집을 짓거나 담을 쌓을 때 사용했다. 그 긴 세월을 견디고 남은 것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운주사의 돌들이다. 절 안에 들어서면 전설의 기운이 가득하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본다면 배의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해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만들었다는 것. 굳이 알지 않아도 느껴진다.
절을 모두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물론 그냥 돌아봤을 때다. 수없이 많은 불상의 얼굴들을 뜯어보고, 바위에 앉아 산세를 즐기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코스는 일주문으로 들어서 대웅전까지 죽 걸으면서 양쪽으로 놓인 탑과 불상들을 보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올라 불사바위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와 대웅전 왼쪽 길로 올라 와불과 석탑들을 보면 된다.
이곳의 석불들이 인상적인 건 야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바위너설(바위가 삐죽빼죽 나온 곳) 아래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다. 머리만 있기도, 몸통만 있기도 하며, 안 그래도 평면적인 얼굴은 지워지고 부서지고, 몸통은 불균형하다. 불상이라기보다 민간의 토속적인 벅수에 가깝다. 더구나 이 돌부처들은 위압적이거나 거룩하지 않다. 이웃의 얼굴인 듯도, 우리의 얼굴인 듯도 하다.
중성불의 개념도 지웠다. 예컨대 가장 먼저 만나는 석불군(석불군 ‘가’)의 불상들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부처로 불린다. 산꼭대기 불사바위에 오르면 운주사 일원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마지막으로 반대편 꼭대기에 있는 와불을 보러갔다. 길이 12m, 너비 10m의 불상이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데, 둘이다. 하나는 앉아 있는 모양새로 조금 더 크고, 다른 하나는 서 있는데 그보다 작다. ‘부부 와불’이라 부른단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이 와불을 일으키려다 새벽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믿음. 와불은 편안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다. 설화 속에서라도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세상 사람들의 바람엔 아랑곳없이, 누워 있는 것이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타는 햇볕 사이로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 일으켜 세울 생각일랑 말고 당신들 마음 다스림이나 잘하시게. 마음은 모든 여래를 만든다네.”

● 안양산뿐 아니라 무등산을 오를 경우에도 수만리 3구 들국화마을을 기점으로 삼는 게 좋다. 광주광역시에서 20여분 걸린다. 광주~너릿태터널~화순읍내~시가지 통과~아파트단지 사거리~만연폭포 방향으로 좌회전~수만리로 향하는 큰재~수만리 3구. 들국화마을에서 운주사까지는 약 1시간 거리.
● 버스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오전 9시30분, 오후 3시40분) 화순행 버스가 있다. 광주에선 화순에 들어가는 버스가 많다. 강남터미널에서 광주까지는 버스가 5~10분에 한 대꼴로 있다.
●4수만리 3구 들국화마을(www.sumanri .com)엔 잠잘 곳이 몇 있다. 한옥집인 소요당(011-612-0362)은 마당에 있는 왕벚나무가 아름답다. 해뜨는 언덕(061-374-4568), 만수회관(061-373-2193). 주소는 전남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 3구. ● 두부 요리가 유명하다. 한식, 콩 두부요리 전문 식당 달맞이흑두부(061-372-8465)가 이름난 집. 가마솥흑두부 5000원, 흑두부보쌈 3만원. 색동두부(061-375-5066)에선 검은콩, 푸른콩, 노란콩으로 만든 오색두부를 판다. 색동두부 한모 5000원, 두부전골 1만8000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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