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물에 젖어 “꺅~” 흥에 겨워 “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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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4.21 14:40:07
  • 조회: 853

 

방콕 시내에선 빨간옷을 입은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날은 일명 ‘빨간 셔츠’라 불리는 시위자 수천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인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고 했다. 방콕 쏭크란 축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카오산로드는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다. 쏭크란 축제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 “그게 어디서 하는 거지?” 쏭크란은 ‘전국’에서 열린다. 방콕에서만도 아니고, 카오산로드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주된 행사와 행사가 크게 열리는 주요 도시들은 있다. 방콕을 비롯해 쏭크란이 가장 먼저 시작된 치앙마이, 수코타이, 아유타야, 촌부리(파타야), 푸껫, 넝 카이 등이 대표적 축제 도시다. 그러나 실제로 쏭크란은 관에서 주도하는 축제라기보다, 지역의 일상에 녹아있는 민속행사에 가깝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작은 골목이며 도로, 마을, 광장 등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낮이고 밤이고 시도때도 없다. 그건 생각보다 마음을 흔드는 경험이다. 카오산로드는 막혔지만 축제는 보란 듯이 이곳저곳에 살아 있었다. 도로변에는 각종 도구로 무장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형형색색의 물총, 호스, 바가지, 세숫대야, 거대한 물탱크, 어린이용 미키마우스 물배낭…. 물을 쏘거나 보관할 수 있는 도구란 도구는 모두 거리에 나왔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었고, 국도고 마을 골목길이고 할 것 없었다. 어디에나 물, 사람 그리고 물에 젖은 사람들이 있었다. ‘익명의 타인에게 물을 뿌려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즐거워한다’는 이상한 해방감이 도처에 가득했다.
쏭크란은 태국 사람들의 설날이다. 타이력(曆)으로 정월 초하루인 시기. ‘쏭크란’은 ‘변화’ ‘이동’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는데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양자리로 이동하는 시기다. 원래는 날짜가 매년 바뀌어야 맞는데 지금은 4월13일로 고정돼 있다. 보통 13~15일이 설 연휴이고, 전후로 10일 정도 축제를 즐긴다. 방콕 시내는 한산했다. 우리나라 설 풍경 같다. 도시인들은 고향에 가족을 만나러 가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도시인들이 떠난 자리엔 축제를 즐기려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물을 뿌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이때쯤은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다. 시원한 물을 뿌리기에 좋은 때다. ‘건기’와 ‘우기’는 외국인의 시각이고, 사실 이 시기는 이 지역 사람들에겐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물을 뿌리는 것은, 꽃이 피어나고 자연과 생명체들이 활기를 띠는 때를 맞는 축복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극히 농경사회적인 전통이다.
지금은 ‘축제’의 성격으로 많이 변했지만,집집마다 불상과 불탑을 향수로 씻는 의식에서 출발했다. 젊은 사람들은 가족 중 어른의 손에 향을 뿌린 물을 붓고,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면 어른은 덕담을 건넨다. 마치 세배를 받고 세뱃돈과 덕담을 건네는 것처럼. 그래서 지금도 물을 뿌리는 건 ‘축복’의 의미다. 많은 이들이 물을 뿌리면서 “싸왓디 삐 마이!”라고 말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이다. 물을 한 바가지 얻어맞고는 웃으며 “컵 쿤 캅(고맙습니다)”이라고 말해주었다. 다음날, 방콕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인 왓 포(Wat Pho)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녹아 없어질 것처럼 더웠다. 누가 시원한 물 좀 뿌려줬으면 할 지경이었다. 사원 곳곳에는 태국 전통 춤과 마사지, 음식 등을 선보이는 가판대가 즐비했다. 사람들은 요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일곱개 불상 머리 위에 차례로 꽃잎을 띄운 물을 부었다. 꽃잎 띄운 물은 20바트를 기부하면 받을 수 있다. 곳곳에 장미꽃이 꽂힌 모래탑들이 쌓여 있는 것도 장관이다. 사람들은 쪼그려 앉아 정성스레 모래탑을 쌓고 뭔가를 기원한다. 그동안 사원을 방문하면서 신발 끝에 묻어 무심결에 사원 밖으로 나오게 된 모래를 돌려준다는 의미란다. 그 다음날은 방콕에서 3시간 걸리는 휴양도시 후아힌으로 향했다. 조용하고 한가한 이곳 역시 이때만큼은 쏭크란의 열기로 분주했다. 3시간 내내 차 속에서 도로 양옆에 도열해 쏘아대는 물세례를 받으며, 물탱크와 사람들을 잔뜩 실은 픽업트럭들을 보면서, 열 수 없는 통유리를 원망했다. 각종 물싸움 도구들을 판매하는 행상들이 길 위에 가득했다. 어서 내려서 저것들을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물총을 쏘던 아이는 잠시 후 물세례를 맞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후 2시, 후아힌 야시장 앞 골목은 타는 듯 더웠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물싸움이 한창이다. 물 외에 사람들의 손에 들린 것은 ‘딘소 퐁’이라 부르는 분필가루를 물에 갠 것. 이걸 얼굴과 온몸에 바르고, 지나는 이들에게도 발라준다. 예의 바르게, “발라도 될까요?” 물은 뒤. 이건 ‘물 전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축복이니까. 청초한 젊은 여인들이 서너명씩 탄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길거리에서 춤을 추던 청년들이 물을 뿌려댄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놀아도 된다’는 공식적인 허가를 만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매년 음주단속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교통사고 등으로 평균 300명 이상이 사망한다. 게다가 법률로 지정된 축제 기간인지라 물로 인한 어떤 피해를 당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매년 거리로 나선다. 문득 1년 전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에 축제 참가자들까지 더해 얼마나 이곳이 아수라장이었을지,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는 축제를 한국이라면 어떻게 했을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이곳은 축제의 현장이다. 등허리에 누군가가 기습적으로 물을 뿌리고, 생각은 휘발된다. 도망치기 바쁘다. 옆 사람의 호스를 빼앗아 물을 뿌린다. 멀리서 거대한 픽업트럭이 사람들을 가득 채운 채 둥둥둥 음악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다. 또 한바탕 물줄기들이 태양 아래를 오갔다.

▲ 여행 길잡이 ● 인천국제공항에서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타이항공이 직항 노선을 운행한다. 비행시간은 약 6시간. 시차는 방콕이 서울보다 2시간 느리다. 후아힌행 에어컨 버스가 방콕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4시부터 오후 10시20분까지 40분 간격으로 출발. 소요시간은 3시간가량. 기차도 매일 운행된다. 화폐는 태국바트를 사용한다. 19일 현재 1바트=약 36원. ● 잠잘 곳: 방콕 싸얌센터 근처의 켐핀스키 호텔(Kempinski Hotel, +66 (0)2-162-9000). 후아힌에는 해변을 끼고 대규모 리조트가 많이 들어서 있다. 라파 후아힌 호텔(The Lapa HuaHin, +66 (0)3251-3222). ● 태국에 저렴한 마사지숍은 많다. 럭셔리한 스파를 원한다면 아쏙 사거리와 인접한 디와나 스파(Divana Spa, +66 (0)2-661-6784)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마사지 70분에 950~1350바트. ● 문의 태국관광청 서울사무소(02)779-5417, www.visitthaila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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