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영화 ‘줄리아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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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4.01 16:12:32
  • 조회: 582

 

줄리아는 시력이 쇠퇴해가고 있다. 남편 이삭은 줄리아의 눈에서 우주를 보았다고 말한다. 죽은 언니의 의문의 남자친구는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 <줄리아의 눈>은 줄곧 ‘본다는 것’과 그 주변을 사유한다. 영화는 줄리아의 쌍둥이 언니 사라의 희뿌연 눈동자가 터질 듯 허공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렴풋이 향하는 곳은 어둠이다. 스스로가 ‘어둠’ 그 자체인 누군가가 그 안에 있다. 사라는 곧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 선천적 시각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줄리아는 같은 증세로 이미 시력을 상실한 언니 사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줄리아는 언니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수상한 이웃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라의 남자친구,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 진실에 다가갈수록 줄리아의 시력은 악화되어 간다. 스릴러로 시력을 잃었거나 잃어가는 사람들을 소재로 삼은 것은 신선하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의지할 데도 없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은 관객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줄리아의 눈>이 선보이는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의 단선적인 공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는 수시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허물고 비튼다. 그것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척해야 하는 아이러니, 어둠 속에서 플래시가 터질 때만 드러나는 빛, 시력을 되찾았지만 시각장애인인 것으로 위장하고 사는 고통 등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혼란은 터질 듯한 긴장감, 공포의 효과를 줌과 동시에 본다는 것이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명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구나 의문의 남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이다. 시력이 멀쩡한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보지 못하고, 시력을 잃은 사람만이 그를 본다. ‘본다’의 물리적인 의미가 사회적 의미로도 확장된다. 기묘한 공포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감각적 장면도 여럿이다. 시각 장애 여성들의 탈의실 대화를 줄리아가 엿듣는 장면은 흡사 ‘눈먼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어둠 속 살인범과의 대결 상황에서 구식 사진기의 플래시가 규칙적으로 터지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하고 신예 감독 기옘 모랄레스가 연출한 스페인 영화다. 스페인의 유명 여배우 벨렌 루에다가 줄리아와 사라 1인2역으로 열연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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