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신라고분 곁 낡은 골목… 역사와 추억의 마지막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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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3.17 14: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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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둘러싼 옛 동네 황남·사정·인왕동

커다란 무덤 위에 올랐다. 왕의 저주가 두려웠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거대한 무덤 사이로 모여들었다. 운동복 차림의 그들은 팔을 휘두르며 길을 걷거나 무덤 곁에 서서 체조를 했다. 눈을 돌려 경주 시내를 내려다보니 그 일대가 온통 무덤, 무덤이다. 그 곁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낮은 지붕의 집들이 늘어선 동네가 있다. 낡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돌연 신라의 능묘와 마주치고, 조선의 성곽을 만나고, 고려시대 비석과 맞닥뜨린다. 그러다 또 길목을 돌면 길을 따라 늘어선 찻집과 양화점과 목욕탕과 점집들을 만난다. 예전엔 경주에 이런 곳이 많았다.


노서동, 노동동, 교동, 성동동…. 사람과 동네와 조상과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가 아름답게 섞여 있는 곳.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고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신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문화재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주 대릉원과 곁에 붙은 황남동·사정동·인왕동을 걸었다. 이곳은 삶과 역사가 두루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경주의 마지막 올드 타운이다. 이른 아침 대릉원의 출입문은 무심히 열려 있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 소나무숲을 지나 길목을 도니 위압적인 능묘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하늘은 아직 검푸르고, 능묘는 검다. 갑자기 고대에 불시착한 기분. 작은 나는 능묘들이 뿜는 압도적인 기운에 무겁게 짓눌린다.

 

대릉원은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있다. 넓이가 12만6500㎡. 이곳에는 신라 미추왕릉을 비롯해 23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고분 말고도 무덤 자리들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봉분이 있는 것만 공원화해서 이 정도로 남겼다. 신라시대가 두 번 반복됐다간 도시 전체가 빈틈없이 죽은 사람의 무덤으로 덮였을지 모를 일이다. 이 주변에는 대릉원 말고도 고분군이 여럿 있다. 노서·노동 고분군, 황오리 고분군, 황남리 고분군, 내물왕릉, 오릉…. 슬슬 걷다보면 고분들이 나무나 집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타난다.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 않게 그 앞에서 맨손체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한다. 그 풍경은 왠지 모르게 적잖은 감동을 준다. 고분 꼭대기에 가만히 앉아 해돋이를 본다. 황남동·황오동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던 자리는 황색 벌판이 되었고, 지금은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땅을 파헤쳐놓은 흔적들이 보인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쪽박으로 떠먹었던 ‘쪽샘’이 있어 쪽샘마을이라고 부르던 이곳은 지금 발굴·정비 사업의 중심지 ‘쪽샘지구’가 됐다. 이곳엔 일반인들이 발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유적발굴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대릉원을 나와 노서·노동 고분군 사잇길을 지나 문화의 거리로 향한다. 거기서 20분쯤 걸어 해장국거리에서 해장국으로 허기를 채운 다음 다시 인왕동에서 황남동, 사정동까지 걷는다. 인왕동, 황남동 일대는 대부분 유적 발굴·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됐고 남은 건 사정동이다. 이 일대는 오래된 한옥과 50~60년 된 낮은 집들이 많은 곳이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돼 살아남은 옛집과 후락한 골목길들이, 이제는 문화재 발굴을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아이러니다. 역사의 경중은 어떻게 따져야 할까. 오래된 순? 계급이 높은 순? 일제강점기나 1900년대 초반 근현대 건축물은 신라 유적을 위해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경주는 신라에 ‘올인’한 도시다. 김장독 묻으려고 땅을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라 유적이 많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보다 가까운 과거, 현재 삶과의 조화에 대해선 세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대 집들을 모두 없애고 허허벌판과 풀밭과 박물관으로만 이뤄진 유령도시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일대를 돌아보고 싶다면 황남동과 사정동 사이를 가로지르는 포석로를 기점으로 삼아도 좋다. 포석로 양편으로 골목길과 야트막한 동네가 얼기설기 얽혀 있다.


2차선 도로인 포석로에는 세탁소, 목욕탕, 양화점, 점집 등이 정겹게 줄지어 있다. 특히 점집들이 눈에 띈다. 2차선 도로 양편으로 잎이 숭숭 달린 높다란 대나무가 삐죽삐죽 나온 형형색색의 점집이 10여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의 촬영지가 이 근처, 지금은 사라진 황오동 쪽샘마을이다. 영화 속 그들이 왜 갑자기 점집에 점을 보러 가야 했는지 알 것 같다. 포석로뿐 아니라 주택가 곳곳에도 집처럼 점집이 숨어 있는데, 재미있다. 어떻게든 기록해두고 싶어진다.


차가 많지 않은 이곳엔 자전거를 탄 동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이들은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목욕을 가고 미용실에 간다. 황남동 쪽에는 주택가에 붙어 작은 규모의 황남시장이 있고, 그 근처에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가 서 있다.


손시양은 고려 사람인데 부모가 사망하자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킨 효자다. 1182년에 세워졌으니 거기 서 있은 지 800년이 넘었다. 효자비 앞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할머니는 40년 이상 이곳에 살았다고 했다. “여기 무어 볼 게 있다고 오나. 옛날엔 이 동네 사람도 많았고 북적북적했제. 잘사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 앞으로 한 아이가 달려 골목길 속으로 사라진다. 공터가 된 철거지역을 걷는 기분은 묘했다.

 

거기엔 흙먼지와 나무와 이제는 필요없게 된 끊어진 전봇대만 있다. 곳곳에 고분터인 듯한 곳이 있고 주변으로 줄을 둘러 드나들지 못하게 해놨다. 철거 후 집기 등 흔적도 모두 사라진 공터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멀리 소박한 집들이 모인 골목이 아스라하다. 저 안으로 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눈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여자 구두 두 짝이 나타났다. 순간 온몸이 쭈뼛한다. 혹시…. 높은 나무 가지 위를 바라보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다

길잡이


●경주에는 지난해 11월부터 KTX가 서는 신경주역이 생겼다. 서울역에서 2시간 안에 닿을 수 있다. 시내에 있는 기존의 경주역과 달리 신경주역은 시내에서 버스로 15~2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역 앞에서 700번 버스를 타면 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


●대릉원 이용시간은 오전 8시30분~오후 10시. 이른 아침에도 이곳에서 운동하는 이들이 많아 드나들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054)772-6317


●숙소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밀집해 있다. 이카루스 모텔(054-777-3311)은 깔끔하다. 스팀 사우나기도 설치되어 있고 서양식으로 샤워실과 세면대와 화장실이 분리돼 있다. 모든 객실에 컴퓨터와 노트북에 꽂아 쓸 수 있는 랜선도 설치돼 있다. 주중 5만원, 주말 7만원.


●경주는 찰보리빵 가게 천지다. 어디서나 그렇듯 모두가 원조를 부르짖고 있다. 황남빵도 마찬가지. 유명한 곳은 황오동의 경주황남빵(054-749-7000).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개당 700원, 30개짜리 2만1000원. 담백한 것이, 이 주변을 걸으면서 하나씩 꺼내 ○○○어먹기 그만이다. 대릉원 주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황남동의 한정식집 도솔마을(054-748-9232)도 추천한다. 마을의 고택에 자리한 이곳은 기본 메뉴인 수리산 정식이 8000원. 가격 치고 황송한 밥상이 나온다. 첨성대 근처 황남동의 이풍녀구로쌈밥(054-749-0600)은 쌈밥 정식 1만원. 경주역 근처 해장국거리의 해장국은 보통 메밀묵과 콩나물, 모자반이 들어가는데 깔끔하고 맛있다. 5000원.


●여행의 마무리는 경주역 근처 성동시장에서 하면 어떨까. 분식집들이 늘어선 먹거리 골목이 있는데, 맛집이 꽤 있다. 떡볶이나 튀김은 물론이고 맛나분식(054-749-3260)의 호박죽, 성동분식(054-775-0017)의 보리밥도 괜찮다.


●물론 경주까지 갔는데 여기만 돌아보고 올 순 없다.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지, 안압지 등이 가까이에 있다. 특히 경주시내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밤산책을 나가도 좋겠다. 경주시 문화관광과(054-779-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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