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신작 들고 온 교포 감독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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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3.16 14:18:02
  • 조회: 590

 
한국인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근·현대 이산의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졌다. 재일동포 2세 최양일 감독과 재중동포 3세 장률 감독의 신작이 같은 날 개봉한다. 10년간의 조감독 생활을 거쳐 1980년대 데뷔해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 <피와 뼈> 등의 수작을 남긴 최양일은 일본 상업영화계 주류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일본영화감독협회 회장으로 4번째 연임 중이다.

 

옌볜대 중문학 교수이자 소설가였던 장률은 2004년 <당시>로 데뷔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상찬받은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최양일은 <카무이 외전> 개봉과 ‘와레와레 한·일영화축제’, 장률은 <두만강> 개봉과 ‘장률 감독 특별전’ 참석차 내한해 기자와 만났다. 최양일은 “영화 만들기는 싸움”이라고 말했고, 장률은 “영화 만들기는 항상 불편하다”고 했다. 두 가지 국적과 언어의 경계를 오가며 살아남은 감독들에게 삶, 영화 만들기는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다.

“영화는 불편한 작업… 누구를 찍든”
재중동포 3세 장률 감독

<두만강>은 장률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두만강을 넘어 북한 함경도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옌볜 조선족 마을이 배경이다. 조선족 소년 창호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넘나드는 북한 소년 정진과 우정을 나누지만, 이 우정은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휘말린다.


- 이 영화는 왜 찍었나.
“이런 사건을 보고 들으면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보도하면 관심이 1주일 정도 몰렸다가 차츰 사라진다. 언론은 사건에 관심을 갖지만, 창작자들은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감정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 마을주민 골고루에게 관심을 둔 것 같다.
“두만강이 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 흐름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강 표면은 꽝꽝 얼어붙었지만 그 밑에는 물이 흐른다. 사람들의 표정은 얼어붙었지만 안에는 감정이 흐른다.”


- 탈북자가 자신을 환대해준 소녀 순희를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배신감은 친한 사람에게만 느낀다. 잘 대해준 사람이 내게 피해를 주면 기억하지 않는가. 우리 일상이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하는가. 도움 주면 계산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은 깨진다. (겁탈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은) 순희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 장면을 못 보여주겠다.”


- 단도직입적으로, 북한 체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없다. 내 능력으로는 체제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단, 배만 안고프면 견딜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중국도 1960년대 초 3년 재해가 있어서 많이 굶어죽었다. 그때 10만명이 북으로 넘어갔다. 난 보는 만큼만 진실하게 말할 뿐이다.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내가 하느님 비슷하게 된다. 난 아무 것도 모른다. 얼마나 모르면 영화를 찍겠는가.”


- 조선족 소년 창호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왜 그래야만 했나.
“아이들은 탈출구가 없으면 순정이라도 지키려 한다. 아이들은 계산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탈출구를 주지 않았고, 아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세상이 여기까지 왔다.”
- 당신 영화 중 처음으로 고향에서 찍었다. 편했나.
“전혀 편하지 않다. 영화 작업은 어느 나라 누구를 찍어도 불편하다.”


- 그러면 영화는 왜 만드나. 소설은 더 이상 안쓰나.
“왜 사느냐는 말처럼 들린다.(웃음) 제일 못믿을 놈이 자기다. 어느날 소설을 쓸지, 라면집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영화 만들기는 전쟁… 적은 나 자신”
재일동포 2세 최양일 감독

<카무이 외전>은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17세기 일본에서 천민으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닌자가 됐던 소년 카무이가 닌자 집단에서 탈출한 뒤 추격자들에게 쫓기는 과정을 그렸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최양일에겐 첫 사극이다.


- 이 영화는 왜 찍었나.
“청소년기에 원작 만화를 보며 자랐다. 어렸을 때 참바라 영화(일본식 칼싸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과 뒷산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갈아서 자기만의 칼을 만들기도 했다. 내 기존의 세계관에 이어진 작품 말고 다른 영화를 하자고 프로듀서와 얘기하다가 만화 <카무이 외전> 같은 영화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이번 작품의 출발이다.”


- 영화 속의 영주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미치광이 같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몇 백년의 세월에 걸쳐 쌓인 악(惡)이 문화, 전통이 되고 아름다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들의 만행, 극악무도한 행위들이 후세 문화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 목, 허리가 꺾이고, 팔, 다리가 잘리고, 안구에 바늘이 박히는 등 잔인한 표현이 많다.
“허구지만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하려는 욕구는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욕구가 상영 환경에 따라 금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건 본능이다.”


- 당신은 인터뷰에서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영화 만들기는 전쟁이다. 적은 나 자신이다. 아마 스태프는 나를 적으로 여길 것 같다.(웃음)”
- 현장에서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현장에는 또다른 내가 있다. 현장에만 가면 인격이 바뀌는 것 같다. 모든 스태프들이 이쪽으로 가자고 하면, 나는 반대로 간다. 일본에서는 현장의 팀을 ‘조’라고 하는데, 일본 영화계에서 ‘최양일조’는 독특하다는 말을 듣는다. 한국의 촬영현장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감독, 배우, 스태프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의논을 하는 ‘민주주의적 현장’이 조성됐더라. 난 이 방식이 틀렸다고 본다. 결정하고 판단하는 건 오직 감독의 몫이다. 지옥과 천국을 함께 짊어지는 건 감독이다.”


- 일본 영화가 자국 시장에서 외화를 제치고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박스오피스 상위권 영화는 대체로 드라마의 확장판이거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라고 들었다.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뒤 열린 사회가 돼 미국, 유럽, 아시아영화를 수용하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했다. 지금 관객은 멍청해졌다. 외화가 흥행이 안되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자막 읽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막을 통해 영화를 본다는 건 이중의 이해력이 필요한데, 이걸 귀찮아한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힘을 사회적으로 포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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